<합평>

 

서정주의

'담배 속의 추억'

 

 

일시: 2007년 4월 21일

장소: 수필문우회 회의실

참석인원: 18명

사회: 김영만

정리: 이경은

 

<본문>

 

담배 속의 추억

 

아홉 살 먹은 내가 어느 바닷가 작은 마을의 소 외양간 옆의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 있다. ‘단풍’이라는 이름을 가진 담배 한 갑을 5전을 주고 어른들 몰래 사서 그 맛이 어떤가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내 호기심에 동감하는 옆집 열 살짜리하고 같이 소 여물솥이 걸려 있는 머슴 사랑 부엌에 숨어든 것인데, 어른들한테 발각될까봐 간덩이는 바짝 죄어 콩알만 하다.

노오란 피봉을 뜯고 한 개를 꺼내어 아궁이의 타는 불에 붙여 어른들이 하던 것같이 한 모금을 무작정 빨아들여 본다. 맵고 쓰고도 얼떨떨하고 어지러운 맛과 그 현기에 머릿속이 아찔해지며 기침이 연거푸 쏟아져 나오고 눈물이 두 눈에 팽 돌아 어린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반쯤 자빠져버린다. 그런데도 옆에 있는 열 살짜리 녀석은 그게 뭔가 그게 알고 싶어 내게서 담뱃갑을 뺏어 가지곤 저도 한 개를 꺼내 불 붙여 빨아본다. 그리고는 나나 마찬가지로 기침을 하고 눈물이 핑 돌아 아궁이 앞에 쓰러져 버린다.

언제 무슨 일에나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 의견만으로 사는 소란 놈만이 옆에서 물끄러미 쳐다보며 목에 단 방울을 달랑거리고 있다.

열아홉 살 먹은 나는 인제 어떤 절간의 별당 마루에 앉아 ≪화엄경華嚴經≫이란 이름을 가진 책의 뜻을 생각해 보고 있다. 역시 ‘마코오’던가 그런 이름의 담배를 한 개 비스듬히 입에 물고 앉았으나, 이제는 그 연기 때문에는 기침도 눈물도 내지 않게 되어 있다.

“허허이! 저 사람 저 큰일났군! 공부하는 사람한테서 저렇게 굴뚝 연기가 나고서야 어떻게 공부를 하나! 이 사람아, 그것 바로 끊어버리게. 육당 최남선이는 서른까지 피우던 담배도 다 끊고 공부해내지 않던가? 그렇게 굴뚝이 되어 가지곤 보일 것이 잘 안 보일 걸세!”

우리 불교의 오랜 왕이신 노스님은 법당 뒷마루에 나오셨다가 소년 학사 나의 담배삼매를 발견하고 걱정을 하신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이 담배 굴뚝 때문에 보일 것이 제대로 다 보이지 않으리라는 것은 꿈에도 자각을 못하고 있다. 그래, 마음속으로는 담배쯤은 공부에 괜찮은 것이다 생각하며, 이건 우리 스님 몰래 피워야겠다고 작정한다.

스물여덟 살짜리의 나는 일본인이 만든 어떤 경찰서의 유치장 속에 갇히어 있다. “답답하고 우울해서 정말 못 살겠다.”고 신진시인 내가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며 가끔 말했을 때, 내 마음에 동의했던 나보다 몇 살 모자라는 청년들이 일본을 적대시하는 무슨 연극을 꾸며 상연했다는 것이다. “답답하고 우울해 못 살겠다고 말한 것쯤 가지고 이런 데 집어넣기도 하는 것이냐?”고 반대해 봐도 소용없는 때에 나는 와서 있었다.

나는 이 속에서 순사의 눈을 피해 몇 모금씩 돌려가며 아주 들이마셔 버리는 그 담배도 물론 계속해 피웠다. 오줌을 누는 척하고 구부리고 앉아서, 들키면 두들겨 맞아야 하는 담배 연기 머리 훨씬 위의 쇠창살 틈으로 길게 뿜어내 보내는 그 담배도 물론 계속해 피웠다.

≪신약성서≫에 보이는 바리새인들의 점잔빼는 힐난, ‘죄인과 왜 같이 먹고 마시는가?’ 하는 점잖은 것 같은 이 유치장 속의 누구에게도 고려되지 않는 것처럼, 내게도 마침내는 고려할 것이 되지 못했다. 그래, 나는 절도범이 먼저 빨고 물려주는 담배도 숨어 빨아 삼켰고 상피 나서 애기 죽인 자가 넘겨주는 것도 받아 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지금 나는 인제 50이 넘어 이 ‘담배 신문’이 졸라대는 이 잡문을 쓰기로 작정하고 앉으니, 결국은 또 한 번 내 열아홉 살 때의 그 왕스님과 스물여덟 살 때의 유치장 속의 죄인 친구들 사이의 한 중간점에 놓이게 되었다.

“아무리 적은 꽃냄새도 가로 세로 퍼져서 구만 리는 가느니라.”

하셨던 석가의 그 술도 담배도 고추 마늘까지도 다 안 자시고 얻었던 지각과 감각의 황홀경으로도 내 향수는 가면서, 우리 왕스님의 충고도 맞다고 생각되며, 그러나 또 나는 여전히 죄인과 같이 빨아 피우는 담배를 스스로 금할 생각도 없다. 나는 대성大聖들의 세계에는 가끔가끔 얼마큼 걱정을 시켜드리며, 또 한쪽으론 저 시궁창 가에 우는 죄인들하고도 역시 담배 술쯤 같이 나누려고 생겨나서 있는 모양이다. 빗줄기가 측은히 내리는 날, 더구나 담배를 붙여 물고 앉았으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사회 : 안녕하십니까? ≪계간수필≫ 제 49호, 2007년 가을 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합평 작품은 서정주의 <담배 속의 추억>입니다. 오늘 합평회의 지정토론자로는 정부영, 김형진, 강호형 선생님 세 분을 모셨습니다. 선생은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산문에도 상당한 작품들을 남겼고, 많이 읽혔던 분입니다. ≪미당 산문집≫과 자전적 에세이≪노자 없는 나그네 길≫이란 산문집이 있습니다. 오늘 합평작품인 <담배 속의 추억>은 여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우선 정 부영 선생께서 서정주 선생의 연보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 주시지요.

정부영 : 서정주시인은 1915년 전북 고창군 부안면 질마재 마을에서 출생하였으며, 선생의 호 未堂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질마재에서 9세까지 살았으며,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합니다. 이후 사회주의 사상을 버리고 방황하다가, 이 글에 나오는 박한영이란 대종사를 만나 중앙불교 전문학교(동국대 전신)에 입학하면서 ‘불교와 문학’이란 평생 반려를 만납니다. 1935년 시 <자화상>을,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으로 당선한 후 김광균, 김동리, 오장환 등과 시 전문동인지인 ≪시인부락≫을 펴내면서 본격적인 시작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60년 가까이 시를 쓰면서 1천 편에 가까운 시를 다산多産하였으며, 늘 새로운 시의 밭을 개간하는 정열을 보여주셨습니다.

그의 작품은 연도별로 새로운 양상과 특징을 보이는데, 1941년 처녀시집 ≪화사집≫에서는 원초적이고 정열적이며 관능적인 생명의식을 나타냅니다.

시 <자화상> <문둥이> <화사>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1948년 이후에 발간된 ≪귀촉도≫ <서정주 시선>에서는 국민적 애송시인 <국화 옆에서>와 <꽃> 등에서 동양적인 내면과 토착적 정서로 변화된 면을 볼 수 있으며, 화해를 시적인 주제로 삼았습니다. 이후 중기인 ≪신라초≫ ≪동천≫에서는 불교와 동양사상을 나타내고 신화적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후기인 ≪질마재 신화≫로 들어가면, 우리 고유의 전통을 발굴, 토속적인 언어로 우리의 삶을 끌어올려 감동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서정주 시인은 인간의 생명의 본질을 추구한 생명파로서 영생주의를 지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후 세계 여행의 체험과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늙은 떠돌이의 시> <산시> <80소년 떠돌이의 시>에 이르기까지 정열적으로 새로운 시 세계를 펼쳐 대표 한국 시인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시의 학교’ ‘시인 중의 시인’ ‘한국이라는 부족 언어의 주술사’ ‘시선’으로 불릴 경지를 일궜다는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10편 가량의 시가 수록되어 국민의 보편적 정서에도 깊숙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선생의 새로운 시도는 작품세계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78세의 나이에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기도 했으며, 기억력 감퇴를 막기 위해 세계의 산 이름 1625개를 매일 아침마다 외웠다는 얘기는 유명합니다. 1977년에는 경향신문에 ‘미당 세계 방랑기’를 137회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일제 말 10여 편의 친일작품을 썼던 일과 정치 참여로 80년대 군부 정권에 협력한 일이 흠집으로 남습니다. 그러나 30년 동안 동국대 교수로,≪현대문학≫, 일간지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활약하면서 ‘미당 사단’으로 불릴 만큼 수많은 시인을 양성해 냈습니다. 그의 시는 우리 삶을 아름다운 삶과 말로 바꾸어 놓았으며, 한국어가 아름다워질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노벨문학상 후보에 5번이나 추천되었으며, 2000년 12월 24일에 타계하셨습니다. 시집이 14권, ≪서정주 문학전집≫(전 5권), ≪서정주 시선집≫(전 2권), 산문집 ≪서쪽으로 가는 달처럼≫이 있습니다. 한국문인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대한민국예술상을 수상했습니다.

사회 : 그러면 이번에는 김 형진 선생께서 미당의 작품세계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김형진 : 몇 년 전 줄포면에서 나온 인물들을 소개하는 글을 쓰느라 조사하던 중 알게 된 사실인데요. 서정주 선생께서 줄포소학교를 졸업(13회)을 하셨는데, 제가 48회니까 아주 대선배시더라고요. 이 분이 ≪내 마음의 편력≫을 세계일보에 연재를 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 보면 줄포라는 항이 있더군요. 10세 때 줄포에 있는 김성수씨 댁으로 이사하여 초등학교에 다녔다 합니다. 그 집은 아직 줄포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줄포에서 살던 때의 일들이 이 분의 문학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미당 선생이 쓴 글 중에 ‘내 문학의 온상들’이라는 글이 있는데, 우선 첫 번째로는 고향인 ‘질마재’를 들고 있습니다. 질마재에서는 세 가지 것을 특징으로 들 수 있는데, 서당 훈장님과 책도 별로 읽지 않은 노장적 무위자연(농사를 짓거나 바닷가에서 그물질을 하는 사람들을 주로 가리킴), 무당식의 심미주의적 멋쟁이들이 당신의 문학에 영향을 주었다고 얘기합니다.

두 번째로 들고 있는 것이 줄포이야기입니다. 소학교 3학년 때 요시무라 아야꼬란 일본 여선생을 만났는데, 이 여선생이 서정주 선생을 예뻐했던 모양이에요. 2학년 때 성적이 5등까지 떨어졌다가 3학년 때 이 선생이 오면서 전교에서 1등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 분에게서 시 쓰는 법, 산문 쓰는 법을 배웠다고 해요. 어렸을 때 이 분에게서 처음으로 문학의 세계를 접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분을 평생 못 잊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내 영원은> 같은 작품이 이 여선생에 대해 쓴 시로 보입니다. 다른 데로 전근을 갈 때에는 울면서 학생들과 길을 막았다고도 해요.

세 번째가 장티푸스(염병)에 걸린 거라고 합니다. 서울 중앙고보 2학년 때 광주학생사건이 났는데, 그때 선생도 중앙고에서 전교생들과 함께 학생 시위를 하다가 투옥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빈민층(인력거꾼, 거지, 실업자들)의 사람들에게 강한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

당시 서정주 부친이 김성수씨 집에서 서사 노릇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때 재산을 많이 모아 동네에서는 상당히 여유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서울의 부자 동네인 계동에서 하숙을 했었는데, 어려운 사람들과 같이하기 위해서 아현동으로 이사하여 더럽고 불결하고 값싼 하숙집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거기에서 장티푸스에 걸렸다고 해요. 그래서 고향으로 내려가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납니다.

그 뒤 ‘미사’라는 분의 소개로 박한영(석전 스님)씨의 부름을 받고 그 밑에서 불경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불교와 인연을 맺고 ‘입산거사’가 되어 불교만 공부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서정주 선생님은 성격이 진득한 분이 아니었던 모양이에요. 가만있질 못하고 뛰쳐나가고, 변화하고 해체적이었나 봅니다. 사실 그 분의 시세계나 문학세계도 그렇거든요. 계속 해체하고, 지금까지 쌓아놓은 것 다 부셔버리고 하는데……. 이 분이 원래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공부를 하다가 19세 때 만행을 하고 머리도 삭발했으나, 석전스님이 중이 되기는 틀렸으니 글을 쓰라고 권유했다고 해요. 중앙 불교 전문학교(동국대 전신) 교장이었던 석전스님의 권유로 입학하였으나 결국은 졸업을 못하고 중퇴합니다. 이렇게 대충 다섯가지가 이 분 문학의 온상이 된 것으로 보여 집니다.

사회 : 전주에서 올라와 발표를 해주신 김형진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강호형 선생님께서 작품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강호형 : 저는 우연히 서정주 선생님을 알게 되어 참 많은 말씀을 들었어요. 교실에서 강의를 들은 것이 아니라 사석에서 술도 마시면서 듣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이 분이 장난기가 굉장히 많고 성품이 천진하다는 겁니다. 미당 선생님은 우선 손님이 오면 술상을 봅니다. 아예 맥주 상자를 옆에 놓고 마시는데, 취흥이 도도해지면 얘기가 무궁무진해지고 아주 재미가 있습니다.

한번은 도자기에다가 아까 언급된 <내 영원은>이란 시를 쓸 기회가 있었는데, 제가 “선생님께서는 영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여쭈니까, “수미산을 떡가루처럼 빻아가지고 일 겁에 그 한 알씩을 날려 보내어 수미산을 다 없애버려도, 시간은 여전히 그대로이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영겁의 시간 속에서 보면 군사정권이니 뭐니 하는 사건 같은 것은 찰나적인 것이다. 그 찰나는 어차피 지나가게 되어 있고, 지나가면 없어지게 마련이다. 그런 맥락에서 선생님에 관한 친일이니 군사정권이니 하는 이야기들도 이해해 보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원주의, 영생주의를 깊이 신봉하므로, 무한대의 시간 속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고 보는 거죠. 오늘의 합평 작품 <담배 속의 추억> 중에서 “나는 인제 50이 넘어…… 내 열아홉 살 때의 그 왕스님과 스물여덟 살 때의 유치장 속의 죄인 친구들 사이의 한 중간점에 놓이게 되었다.” 바로 이런 부분도 이런 현상 속에 처한 당신의 존재를 얘기하려고 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이 작품을 읽다보면 세련된 문장이 아니고, 만연체로 길고, 구어체이기도 해요. 그런데 묘하게 다 읽고 나면 전체적 분위기가 뭔가 오는 게 있어요. 마치 하나하나 글 자체보다는 전체를 모아서 볼 때 마음에 뭔가를 확 느끼게 하는, 추사의 글자를 대하는 기분마저 들었어요. 시나 산문이나 할 것 없이 용어가 토속적이고 육자배기 가락이에요. 하나하나는 세련된 것 같지 않으면서 전체적으로는 분위기를 살려낸단 말이죠. 그래서 ‘언어의 마술사’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 : 감사합니다. 강호형 선생님께서 아주 생생한 느낌을 가지고 미당의 산문 세계를 짚어주셨습니다. 지금 말씀이 나온 미당의 문체에 대해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1947년 미당은 경무대로부터 위촉을 받아 ‘우남 이승만전’을 씁니다. 매주 두 번 이승만의 구술을 직접 받아 쓴 이 전기는 당자가 말한 당자의 생애라는데 이후의 여러 전기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더욱이 대시인의 안목에 잡힌 거인의 초상이라는 데 일반의 주목과 평가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출간하자마자 바로 이승만 자신에 의해 배포금지를 당합니다. 이승만은 당시 경무대에 근무하던 시인 김광섭을 불러, 그 사람 제집 어른도 못 모셔본 상놈 글쟁이 같다면서 그 말투, 그 문체가 뭐냐 했다고 합니다. 미당은 그때도 이 글처럼 일체의 존칭을 생략하고 걸쭉한 어조로 꼭 저만치 서서 바라보듯 써나갔는데 그것이 이승만의 심기를 상하게 한 것입니다. 문체의 문제로 배포가 금지된 유일한 전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전체 토론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겠습니다. 고봉진 선생님께서 먼저 말씀을 해 주시겠습니까?

고봉진 : 유머가 많고 보통 사람들이 흉내 낼 수 없는 문장을 쓰셨습니다. 옛날에 산문시로 ‘신라 이야기’를 연재할 때도 늘 아침에 그것부터 읽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아까 강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문장이 육자배기에다 토속적 냄새가 나며 가슴에 전달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작품 역시 그렇습니다. 저도 선생님의 시를 좋아해서 외우는 것이 많습니다.

김병권 : 저도 고 선생님 생각과 대동소이합니다. 이 글은 독자에게 메시지보다는 쉬어가는 시간을 제공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또 시하고 대비시켜보면 시는 그렇게 깔끔하고 무엇인가 감동이 있는 반면, 수필로서는 그렇게 큰 감동은 주지 못하는 글이라고 봅니다. 육자배기 가락을 듣는 이상의 별다른 감동은 없어서 아쉽습니다.

김진식 : 이 수필은 자기 존재를 시간의 흐름에 대입해서 쓴 것으로 선생님의 천진한 성격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최병호 : 담배 인생의 기승전결을 한 편의 글로 읽었습니다. 아홉 살에서 열아홉 살, 스물여덟 살, 영어의 몸에서의 담배의 세계를 경험하고, 50대의 성숙성을 스스로 평가를 하고, “나는 대성들의 세계에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는 기승전결의 과정을 보면 시의 이미지가 축약된 성장과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글의 구성이 미당 선생만의 가락진 문장과 함께 좋았습니다. 창작기법은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구양근 : 담배에 대한 자신의 역대기―이런 형식은 한번쯤 흉내 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하나의 내용물을 가지고 쓴 독특한 형식입니다. 제일 백미라고 한다면 아홉 살짜리가 담배 피는 모습을, 소란 놈이 옆에서 말똥말똥 쳐다보는 모습으로 그린 것은 아주 일품이었습니다. 또 유머러스한 부분은 “상피 나서 애기 죽인 자가 넘겨주는 것도 받아 빨아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라는 구절로서 유머의 최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고임순 : 저는 이 글을 읽고 ‘수필과 시와의 관계’를 연구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수필이 내용 쪽으로는 시에 가깝고, 형식은 산문이니까 소설에 가깝고 한데요. 이것을 한번 읽고 나서 굉장히 리듬이 있고, 머리에 훤하게 남는 것이 좋았습니다. 바로 그것은 문체가 간결해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느낀 것은 9세, 19세, 28세, 50세까지를 통틀어서 현재형으로 다 썼는데 어색하지 않습니다. 제가 머리에 훤하게 남는 것이 바로 이런 점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가 만약에 대시인 서정주라는 이름을 빼고 봤다면, 어떻게 감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문학에서 수필이라는 장르를 서자 취급해서 우리가 때로 분개하는데요, 여기서도 서정주 선생이 ‘담배신문’이 졸라대서 쓰는 잡문이라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너무 가볍게 잡문으로 취급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재 문인협회에 등록된 수필가들이 이천여 명이 넘고, 수필에 대해 깊은 연구를 여러 가지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필은 고뇌와 진통으로 엮은 진실을 고백하는 인간학이다.”라며 연구를 하고 있는데, 이 글에서 과연 어떤 고뇌라든지 진통을 느낄 수 있는가. 그래서 이 작품은 본인이 쓴 대로 담배신문에서 청탁이 와서 가볍게 쓴 것이므로, 저희들도 가볍게 잡문으로 읽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진실을 고백하는 인간학은 없다고 봤습니다. 역시 시인이라 시 쪽에 정열을 다 쏟고, 산문 쪽은 더 가볍게 쓴 것 같습니다.

김명규 : 담배에 얽힌 추억담을, 과거의 이야기를 마치 현재 다정한 친구에게 들려주는 듯한 시인 특유의 구수한 말씨로 쓴, 문체가 돋보이는 명수필이었습니다. 또 필자는 오십이 넘어 이 글을 쓰면서 노스님의 금연 충고도 듣지만, 속된 세상의 인간들과 더불어 살며 담배 피우는 것을 굳이 끊지 않겠다는 생각이 담겨져 있습니다.

담배에 얽힌 이야기는 제가 7세 때이던가 할아버지가 담배를 하도 맛나게 피우시는 것을 보고, 먹을 것이 궁한 시절이라 얼마나 맛있어서 저렇게 맛나게 태우시나 하고, 할아버지 담배를 한 개비 몰래 훔쳐 피웠다가 죽을 뻔한 아찔한 기억이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이 났습니다. (웃음)

홍혜랑 : 맨 처음 강호형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문장 하나하나를 보면 문법이 안 맞고, 시인의 수필을 수필가가 읽으면서 시 쪽으로 읽어줘야 하는, 수필가 입장에서는 썩 반가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나 전체에서 자리 잡고 있는 작가의 생각은 진솔하게 드러나 있다는 장점은 있습니다.

변해명 :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활 속에서 부정적인 시각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담배 피우는 것과 술 마시는 것. 이것은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된 뒤까지도 계속 됩니다.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그것의 시작은 유혹으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에 몰래 피우는 담배에 대한 유혹이 얼마나 큰 것인가. 그것이 감옥에까지 가서 그렇게 달고 맛있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유혹에 빠진 삶이라고 하더라도 내 몸같이 되어버린 삶에 있어서의 달관은 결국 삶의 흐름일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신 분이 아니겠습니까. 워낙 불교의 선적인 요소를 많이 지니고 계신 분이라서 담배조차도 삶에 있어서 넉넉하고 여유롭게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경은 : 저는 서정주 선생님이 자기가 타고난 본성이 너무 인간적이고 인간의 삶에 매료를 느끼는 부분이 많아, 고매하게 불교의 세계에 들어가서 종교가가 되기에는 좀 모자란다고 생각하며 갈등하는 부분에 공감을 느꼈습니다. 누구나 그런 갈등은 자기 내면에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어느 길을 선택해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 갈등이 이 작품의 맨 마지막 문단에서 왕스님의 충고도 맞으면서, 죄인과 같이 상피 나서 애기 죽인 자의 담배도 받아 빠는, 미당 선생님의 내면에 존재하는 ‘세속과 초월’이라는 두 개의 세계가 솔직한 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된 점이 무엇보다 좋았습니다. 대성들의 세계도 가끔 걱정을 시켜드리고, 저 시궁창에서 우는 죄인들과도 담배와 술을 나눌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분의 넉넉한 여유와 초월적인 유머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게 서정주 선생의 작품이 아니라하더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감동이 분명 들어있다고 보았습니다.

허세욱 : 그의 글은 끊어질 듯하다가 다시 이어지는 만연체입니다. 꼭 앉아서 말을 하는 그러한 문체. 서정주 개성이 그대로 살아있는 문장이에요. 주제는 흡연의 역사를 4단계로 회고를 했어요. 미혹과 금단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생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성과 시궁창의 죄인, 둘 사이에서 담배를 빠는, 그러나 시인은 윤리적으로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선임을 결연하게 갈라놓지 않고 있어요.

이응백 : 저도 7세 때 아버지가 맛있게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고 피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버지의 담배 ‘희연’을 살짝 훔쳐서 신문지에 말아서 부엌 뒷꽁무니에서 피우는데, 어찌나 쓴지 그 길로 끊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담배를 안 피웁니다. (웃음) 그리고 이 글을 보면 아주 솔직해요. 체면이고 뭐고 관계없이 솔직하게 쓴 게 대단하다 생각됩니다.

단지 여기에서 표현이 두 가지가 걸렸는데, “소가 쳐다봤다”로 했는데 소의 위치가 더 위거든요. 그러니까 쳐다본 게 아니라 “내려다봤다”로, 또 소가 ‘의견’을 가졌다 했는데 ‘의식’이 낫지 않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김태길 : 저는 이 작품을 수작으로 봅니다. 서정주 시인이라는 이름을 빼고 봐도 역시 그렇습니다. 그 이유의 하나는 첫째, 고봉진 선생의 말처럼 해학이 풍부합니다. 특히 해학이 의도적이지 않고 작위적이지도 않고 자연스럽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고임순 선생의 말처럼 시제 부문인데, 현재형이 좋았다는 데 동의합니다. 한 가지 의문이 나는 것은 시제를 현재로 한 것이 서정주 시인 자신의 경우에는 매우 딱 어울리는데, 자신이 아닌 경우 제3자의 경우에는 예를 들어서 “소란 놈만이 옆에서 물끄러미 쳐다보며 목에 단 방울을 달랑거리고 있다.”라는 부분은 좀 덜 맞는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게 왜 그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일제와 군사시대에 권력 아부는 강호형 선생의 의견과는 달리 재주 있는 사람의 변명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공감이 안 갑니다. 문인이라면 사상가인데 문인이 어용을 하면 상당히 큰 마이너스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 오늘 합평회는 상당히 생생하게 그 분의 인간적인 면을 직접 가까이 들을 수 있었고, 또 작품세계에서도 상당히 깊이 얘기가 나온 것 같습니다. 또 그분의 문학적인 기초, 문학적인 기틀에 대해서도 잘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오늘 수필문우회의 합평회를 들으면서, 합평 모음집 ≪도마 위의 수필≫이 수필 강좌를 하는 분들께나 수필계의 역사에 기여하는 업적을 남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귀중한 합평회였습니다.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