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아카데미강좌 제15회 강좌요지>

 

한중록閑中錄

 

 

                                                                                     김태길

내가 읽은 ≪한중록≫은 성음사省音社에서 1970년에 간행한 ≪한국고전문학전집韓國古典文學全集≫의 여섯째 권卷으로 편집된 㰡”궁중비화소설㰡• 가운데 실린 그것이다. 1980년대에 나는 ‘소설에 나타난 한국인의 가치관’이라는 제목의 연구에 매달린 바 있었고, 우선 조선조 시대의 소설부터 읽기 시작했다. 㰡”한중록㰡•도 소설의 일종으로 분류되어 그 전집에 실렸기에 자연히 일독하게 된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것을 소설로 인정하기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다.

㰡”한중록㰡•의 해설을 맡은 장덕순張德順 교수는 ‘그 표현 양식이 다분히 소설적이고, 또 그 소재를 역사에서 구했다는 점으로 역사소설로 다루어도 그다지 큰 문제는 없으리라고 생각한다.’라고 적고 있으나, 그 표현 양식이 시나 문학평론에서 먼 것은 사실이다.

㰡”한중록㰡•의 내용에는 허구가 하나도 없고 정직한 회고록으로 일관했으므로, 장편수필의 하나로 보는 것이 마땅할 것이라고 당시에 보았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널리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㰡”한중록㰡•의 저자는 혜경궁惠慶宮 홍씨다. 그리고 홍씨가 이 회고록을 쓰게 된 동기는 그의 백질伯姪 수영守榮의 권고를 받아들여서 그가 겪은 바와 느낀 바를 기록하여 남겨두는 것이 후일을 위하여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혜경궁 홍씨가 살았던 영조英祖와 정조正祖의 시대는 여류사회에 신사임당, 허난설헌, 황진이 등 여류 명성名聲이 다수 출현한 후기였으며, 㰡”한중록㰡•도 그러한 문운文運의 큰 흐름을 타고난 명저名著의 하나로서, 우리나라 한글 수필의 기념비적 존재라고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㰡”한중록㰡•을 우리나라 한글 수필의 뛰어난 저술이라고 평가하는 까닭을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한다면, 첫째로 그 문장이 딱딱한 한문 단어를 많이 사용한 그것이 아니라 우아한 궁중宮中 문체임을 들 수 있을 것이며, 둘째로는 㰡”한중록㰡•의 독자들은 그 저자 혜경궁 홍씨의 인품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㰡”한중록㰡•을 읽으면서 특별히 아쉽게 느낀 것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이란 이름으로 한글을 발표한 것은 세종 28년, 즉 1446년이었으나,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文字로 평가되는 이 한글을 당시의 선비들이 저술에 활용하지 않고, ‘언문諺文’이라고 과소평가하여, 아녀자와 상민常民들만을 위한 문자로 대접했다는 사실이다.

일본에서는 ‘가나’라는 명칭의 그들 고유의 문자 50자를 만든 뒤에 바로 그것을 저술에 활용하여 㰡”겐지 모노가타리㰡• 같은 소설도 쓰고, 㰡”쓰레쓰레구사㰡• 같은 수필도 쓴 결과로서, 우리나라보다 문학의 발달이 크게 앞섰다는 사실과 비교할 때, 옛적부터 우리나라 문화의 근간 구실을 했던 모화사상慕華思想의 해독이 끔찍하다는 것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한글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우리나라는 비단 문장어文章語에서만 뒤떨어지게 된 데 그치지 않고, 일상日常에서 사용하는 구두어口頭語에서도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예컨대 우리나라 말과 남의 나라 말을 무질서하게 마구 섞어서 사용함으로써 국어의 정체성正體性을 잃고 있으며, 컴퓨터의 무질서한 사용으로 인하여 말의 품위品位가 온데간데없게 되었다. 국어의 바른 사용을 위하여 모범을 보여야 할 방송인들조차도,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종사하면서 틀린 말을 서슴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된다. 언어는 그 자체가 나라의 중요한 문화재일 뿐 아니라 다른 문화를 전달하는 도구의 구실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의 고유한 언어를 깨끗하게 지키는 동시에 더욱 우수한 것이 되도록 가꾸어 나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우리 한국인이 우리 한국어를 파괴하는 경우가 많다. 국제 교류가 빈번한 풍조의 영향을 받고 우리말과 남의 말을 함부로 섞어서 쓰는 것은 그 대표적인 경우다.

컴퓨터니 라디오니 하는 외래어 명사를 그대로 쓰는 것은 무방할 것이나, “우리나라 것과 남의 나라 것을 컴비네이션 하여, 보다 업그레이드한 단계로 올라갈 필요가 있다.” 하는 따위는 언어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수한 경우에는 우리나라 말과 남의 나라 말을 혼합해서 쓰는 편이 바람직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되도록 여러 나라 말의 혼용으로 인하여 우리나라 말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말에는 본래 장음과 단음의 구별이 있다. 대개 한자어漢字語에서 온 말에 그 구별이 있고, 그 구별을 무시하면 말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기 어렵다. 예컨대 편지를 뜻하는 書信은 ‘서신’이라고 짧게 말해야 하고, 머리말을 뜻하는 한자어 序言은 ‘서:언’이라고 길게 말해야 하는데, 이 구별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음악가 ‘슈우베르트’를 짧게 ‘슈베르트’라고 발음하는 아침 방송을 자주 들을 기회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는 욕설을 입에 담는 경우가 많은데, 그 욕설이 너무 다양하고 너무 지독하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는 ‘바가야로’가 가장 많이 쓰이는 욕인데, ‘바보, 숙맥’ 정도의 욕설이다.

현재 우리 한국에 수필가 또는 수필인으로 알려진 사람들과 앞으로 수필에 뜻을 둔 사람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적은 숫자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수필이 수필답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조건의 하나는 품위品位라고 나는 믿고 있다. 우리나라 수필인들이 품위 있는 언어를 구사하도록 함께 노력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수필계가 우리나라 문화를 위해서 크게 기여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