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얼굴, 다시 읽는 글⑤]

 

정봉구 편

 

 

                                                                                   김시헌

≪계간수필≫에서 정봉구 선생의 수필 두 편을 선정해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옛날 읽지 않았던 수필집 중에서 몇 편을 읽다가 수필 속에 끌려 들어가 정 선생을 만난 마음이 되어 선정에 혼란을 일으켰다.

정서적인 충동에서 쓰여졌다고 생각되는 것은, <가을소리>, <세느 강과 청계천>, <진달래산을 뛰다>, <여름과 어머니 생각>, <종이배를 접으며>, <꼬박꼬박>, <한번 추어보고 싶은 춤>, <시한부 인생살이>, <서리 온 아침> 등이었다.

불문학을 전공한 정 선생은 외국문학을 중심한 문학론이 상당수 있었다. 그 제목을 열거해 보면,

<삶의 고삐가 된 독서>, <죠르쥬상드의 사랑>, <플로베르의 편지와 모파상의 편지>, <기게스의 반지>, <악우와 실낙원>, <아름답고 슬픈 ‘어린 왕자’의 우화>, <구조주의와 문학의 과학>, <냉정하고 비정적인 모파상의 소설구성>,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의미와 사상>, <스탕달의 연애감정과 그 소설의 에피그라프>, <발자크 소설과 그 사상세계의 폭> 등이었다. 위의 글들은 논리적인 해설 형식이 아니고 수필형식으로 쓰여진 주관적인 글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철학적인 사색을 통한 주제 중심의 글이 상당수 있었다. 이런 글에서 정 선생의 주체의식이 오히려 잘 드러나고 있었다.

<나는 생각한다>, <문학사상 이론의 덫>, <연애와 사랑>, <번뇌가 묻은 장갑>, <개똥철학>, <관성>, <세느 강의 정서와 강변의 산책>, <꿈과 생>, <회의와 고독>, <즉자와 대자>, <둥지의 관념>, <모방과 창조>, <글의 기상>, <우정에 관하여> 등이었다.

이렇게 여러 편의 제목을 거론한 이유는, 제목만 보아도 그가 어떤 것에 관심을 가졌는가를 알 수 있다. 제목을 통해서 내용까지 추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정봉구 선생의 박사학위 논문은 <알랭의 행복발견과 정념사상 고찰>이었다. 그는 알랭에 경도하여 알랭의 저서를 많이 번역했다.

정봉구 선생의 아호는 남사南沙이고 경기도 화성이 고향이다. 수필문학진흥회의 부회장직과 수필문우회의 편집위원 일을 오래도록 담당하였고 정년 후에는 도서관 대학수필반 창작지도에 기여한 바가 크다. 그는 때로 다방에서 만나면 “지금이 갈 때야.” 하는 말을 했다. 즐겁고 보람 있을 때 인생을 마쳐야 한다는 사생관을 가지고 있었다.

작품 중에서 다음 두 편을 선정해 본다. <번뇌가 묻은 장갑>, <서리 온 날 아침에>

 

 

번뇌가 묻은 장갑

 

 

아침에 사냥을 나가던 포수가, 도중에 나뭇가지에서 우는 어떤 종류의 새를 보고서, 또는 사냥개가 취하는 어떤 종류의 행동을 보고서 그 날의 사냥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 포수는 그와 같은 종류의 표징標徵에서 하나의 불길한 조짐兆朕을 예견하기 때문에 그날의 계획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원시적인 이야기지만,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에 있어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은 흔히 있다.

아침에 구두를 신다가 구두주걱이 부러졌다. 길에서도 차간에서도 그 일이 도무지 잊혀지지 않은 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어쩐지 미리부터 불안하기만 하던 그 날의 일이 실패로 돌아갔다. 자기의 글을 책으로 내주마고 하던 출판업자가 갑자기 대수롭잖은 트집을 내걸고 출판 계약을 연기한 것이다.

버스를 타고 불과 한 정거장도 못 갔는데 고장이 나서 더 이상 못 간다고 내리라 한다. 언짢은 기분을 누르고 차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약속 장소에 갔으나 담배를 거푸 다섯 가치나 피우고 커피까지 먼저 시켜 마셔도 약속한 사람은 안 온다.

이와 같은 경우를 당하고 본다면 누구고 다 차라리 오지 말았을 것을 하고 생각하며 구두주걱 부러진 일과 버스의 고장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구두주걱이 만약에 철제였더라면 결코 부러지지 않았을 것이며, 버스 역시 낡은 차가 아니었더라면 고장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보는 표징標徵들이란 대개 이런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사로잡히고 있는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심지어는 생각하는 그 함정 속에 빠져드는 일이 더 많다.

먼 길을 떠나는 사람, 특히 배를 타는 사람이라든지 갱 속에 들어가는 사람들 중에는 이와 같은 표징에 대하여 지나치게 예민하고 병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가 지니는 이와 같은 마음의 허점을 충분히 통찰하고, 헛된 과민으로 피로를 자초하지 말 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근간 한 일년 가까이 집을 나설 때마다 으레히 마루를 내려서며 오른쪽 구두를 먼저 신는 일에 주의하고 있다. 스스로도 그렇게 하는 자기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그러지 말리라 생각하지만 생각하는 일에 아랑곳없이 발이 그렇게 동작하니 웃지 못할 일이다. 아니 그렇게 하지 말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고교입시 공부를 하던 아들의 영어책을 옆에서 보아주다가 나는 서양 사람들의 풍속 습관이 된 미신 이야기들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속에 이런 것이 있었다.

“아침에 집을 나갈 때 오른쪽 구두를 먼저 신으면 그날의 운수가 좋다.”

그것을 읽는 당시는 하찮은 이야기로 읽어 넘겼는데 이상하게도 그 생각이 내 머리 속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동양 사람들의 것도 아닌 서양 미신인데 무얼? 하고 부정하면서도 여전히 오른발을 먼저 구두에 꿰었다. 그리고는 그것이 별로 힘드는 일도 아닌 바에야 그날 운수가 좋다는데 못할 것이 무엇이냐고 자기 자신에게 변명을 붙였다.

그러나 잘 생각하고 보면, 이것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다. 왼발이 먼저 나와야 자연스러울 때 오른발을 앞서 내놓으려고 하면 무리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왼발을 먼저 구두 속에 꿰인 날이 문제다. 이것 실수했구나 내 어쩌다 이 일을 잊었을까 하는 생각이 번져가자 마음의 평화가 흔들린다.

생각하고 보니 나는 이런 종류의 금기禁忌나 관념에 대하여 상당히 약한 것 같다. 그런 종류의 타부(Taboo)들을 꽤 많이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라면서 들은 것만 해도 상당수에 달한다. 초상집의 문턱을 넘어서는 방법이며, 남의 집 음식이나 야외에서의 음식을 먹을 때의 예방이며, 밤길을 걸으며 요귀를 쫓는 주문呪文이며, 심지어는 귀신바람으로 생각되는 회오리바람을 향해서 하는 예방인 왼발 구르기와 침을 뱉는 방법 등등.

그런데 이와 같은 금기에는 그것을 신봉하건 안하건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마력魔力이 있다. 그리고 이 마력은 그것을 부정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대해서 한결 강하게 작용한다. 자기 마음속에 한 가지 표징標徵을 설정하고서 그것으로 예감을 만들어내는 것인데, 아니라고 강조하는 일이 강할수록 예감의 형상이 커가게 마련이다.

결국 이와 같은 표징은 과학의 고도화와 상관없이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하나의 관념이며, 꿈과 별자리로 신탁을 물어 보던 옛사람이 아닐지라도 완전히 그것을 씻어 내지는 못하는 것이려니 생각한다.

중요한 일은 이와 같은 표징들을 마음속에서 자라나지 못하도록 자리 잡아주지 말 일이다.

역시 어렸을 때 들은 이야기이다. 집의 아버지께서 새벽 일찍이 먼 길을 떠나시는데 마침 논둑 위 방죽길에 도달하시자 새 한 마리가 머리 위로 날아가며 새똥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 새똥이 마침 장갑을 끼신 아버지 손등에 떨어졌다.

거기서 아버지는 서슴없이 그 장갑 한 짝을 벗어 버리고 길을 계속하셨다는 것이다. 어려서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비싼 장갑을 벗어 버리고 길을 계속하신 아버지를 의아해 보였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볼 때, 마음속에 불안을 씻어 버리고 길을 계속하신 아버지의 처사를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어떤 계시啓示를 주는 것은 결코 표징이 아니며 오히려 내 의지意志의 작용이려니 믿는다. 그리고 이 표징들은 비단 형상화形象化된 사상事象에서 뿐만이 아니라 나를 괴롭히는 자질구레한 번뇌들 속에 더 많이 존재하려니 생각한다.

가슴을 조이며 ‘델포이’의 신탁神託을 묻던 고대 그리스인들이 신전神殿 앞에 새겨 논 “너 자신을 알라”고 한 글귀를 마음 깊이 지니려 한다. 번뇌가 묻은 장갑을 벗어버리자. 비록 그것이 값진 장갑이라 할지라도.

(1974. 3.)

 

 

서리 온 날 아침에

 

 

겨울날 아침 창가에 서면 지금도 나는 곧잘 신비스럽던 어린 날의 등교길을 생각한다.

햇살이 퍼지기 전 서리가 눈같이 하얗게 내린 밭둑길로 바삭바삭 소리를 밟으며 달려갈라치면 어딘지도 모를 미지의 세계로 이끌려 가는 듯싶은 환각幻覺에 사로잡히던 일, 그것은 눈길을 걷는 것하고는 완전히 달랐다.

더구나 지름길을 가느라고 밭두렁 위로 걸어갈 때면 부풀은 밭이랑 서리 덮인 흙이 서걱서걱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렇게 밟히는 감촉이 말할 수 없는 신선감으로 사지를 튀어오르게 했다.

그것은 내가 아직 동화童話를 읽기 전 일이었지만, 나는 동화보다도 동시童詩보다도 더 큰 것을 그 자연 속에서 느꼈다.

이른 아침에 책보를 둘러메고 가는 마을길, 서리를 밟고 가다가 때로는 걸음을 늦추기도 하였다. 잎이 떨어진 가지뿐인 감나무에 꽂이에 꿰어놓은 것처럼 매달린 불그스레한 감, 그것들은 홍시紅柿를 안치기 위하여 서리를 맞히려고 따지 않고 둔 감들이었다. 개중에는 벌써 주홍색으로 물들은 것도 있었다.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우리 집 울타리 뒤 밭둑과 논둑길 위에 연해 서 있는 그림 같은 감나무들, 고목처럼 검은 가지에 붉은 감이 매달린 광경, 더구나 그 밑에 헝클어진 가시덤불이며 엉성한 풀섶에 내린 무서리, 마을을 품어 안고 있는 듯싶은 매봉산도 그런 날 아침이면 내 어린 눈에 한결 우람하였고 그 일대가 모두 선경仙境만 같았다.

평소에 소박하기만 하던 마을 경치가 서리 온 아침이면 그렇게도 신비스러울 수야. 동시에 동화도 읽기 전 나였지만 분명히 나는 요정妖精의 세계처럼 아름답던 서리 온 날의 아침을 환각으로 회상한다. 거기엔 상징으로 엮어진 수많은 형상들이 눈을 반짝이며 합창하고 있었다.

눈이 오던 날도 좋았고, 비가 오던 날도 잊혀지지 않긴 하지만 내 고향의 산천은 서리 온 날의 아침이 가장 아름다웠던 것 같다. 그것은 햇살이 완전히 퍼지기 전 잠깐 동안 맛볼 수 있는 경치였고, 가장 청명하고 바람 없이 산뜻한 매운 아침에만 맛볼 수 있는 경치였다. 그 자연의 보석들은 내가 걸어가는 발밑에서 또 내 눈길이 닿는 시선 앞에서 아침을 장식했다.

나는 지금도 이른 아침 창가에 서면 서리 온 날의 시골 산야를 생각한다. 그리고 아침 산책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이 몸에 묻혀가지고 오는 저 아침의 청신성을 부럽게 생각하며 창을 연다. 특히 서리 온 날 아침의 그 상큼한 맑은 기운을 가진 24시, 365일 항상 지니고 살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사람의 기상氣象을 기후조건으로 비교해 말한다면, 서리 온 날의 아침은 준엄한 긴장상태의 기분이라고나 할까. 나태와 방심을 제어制御하는 맑은 심기心氣며, 사필귀정事必歸正을 심판하는 칼날 같은 예리한 이성理性이라 하겠다.

추상 같은 호령은 권세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정의가 내재한 위엄이 있어야만 그 호령에 숙연해지며 부정과 부패가 고개를 숙인다. 서릿발 같은 기상은 외형에서 오지 않고 마음 속에 지니는 차고 빈틈없는 냉철한 이성에서 풍기며 정결한 양심으로서 인정받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서리는, 맑고 바람 없는 밤에 기온이 빙점 아래로 내려올 때 공기 중의 수증기가 지표에 접촉해서 얼어붙은 흰 가루 모양의 얼음이라고 한다. 사람의 마음도 물욕에 흐리지 않은 청정상태에서만 서릿발 같은 심판의 눈이 뜰 것이고, 또 서리 내린 아침같이 상큼한 기분이라야 파사현정破邪顯正하는 신통력이 싹틀 것이다.

그러나 서릿발 같은 신판은 타자他者를 향하여 쏟는 비난이 되지 말고, 맑고 바람 없는 숙고熟考의 긴 밤을 지새운 추운 새벽에 스스로를 반성하는 자아비판이 되어야 하리라고 믿는다.

자연을 통해 본 서리는 첫째로 신비며, 둘째로 용서 없는 칼날 같은 숙연성이다. 그러나 서리가 뜻하는 많은 비유 중에는 무진 고난과 역경이 있으니 우리는 그것들을 이겨 나가는 강인성과 절개 역시 지녀야 할 줄 안다.

가령, 동양식으로 말하자면 세한삼우歲寒三友로 꼽는 송죽매松竹梅의 기상이며, 사군자로 치는 죽매난국竹梅蘭菊의 절개다. 이것들은 난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서리 속에서 푸르름을 지탱하고 꽃을 자랑한다. 말하자면 시들지 않는 기개氣槪에 물들지 않은 고절高節을 상징키 위해서 이것들을 화제畵題로 삼았다. 서리 온 날 아침, 창 앞에 서서 그리는 생각, 그것은 영혼을 정화하는 내 동시童詩의 세계며 나에게 현실을 높은 긍지로 살아가라 일깨워 주는 청향淸香이다.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