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평┃

 

파격 2제

━ ≪계간수필≫ 2007년 여름호를 읽고

 

 

                                                                                       강 호 형

수필은 정해진 형식 없이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는 인식이 우리 수필계를 지배해 왔다. ‘무형식이 형식’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시, 소설, 미술, 음악을 비롯한 다른 분야의 예술처럼 인류의 생활양식이나 사조의 흐름에 따라 그 표현 양식도 변해 왔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다른 분야의 예술이 끊임없이 변모를 거듭해오는 동안에도 요지부동으로 옛 모습을 고집하고 있다. ‘형식 없음’이 오히려 부동의 형식으로 굳어온 셈이다.

변화 없는 발전은 없다. 한국의 시인, 소설가들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요즘까지도, 수필가들은 문인협회에 등록된 인원만도 삼천 명이 넘는 인해전술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조차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자업자득이다. 이런 중에도 ≪계간수필≫ 2007년 여름호에는 변화의 미풍이 일고 있어 반가웠다.

<헌넛! 뚜얼! 써이! 너잇!> (이난호) ; 군대 경험이 없는 독자라면 도깨비 셈법 같은 이 제목에서부터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그때 삼촌 떼들은 싱싱했다.

이렇게 시작되는 이야기 속의 ‘삼촌 떼’ 도 낯설지만 그 전개 방식 또한 범상치 않다. ‘꼬맹이’(화자)의 눈에 비친 ‘삼촌 떼’ 들의 질곡의 현대사 건너기인데, 흑백영화처럼 그로테스크하게 전개되는 시대극 속에는 변사도 없고, 이야기 전달자인 꼬맹이조차 장막 뒤에 숨어서 화면만 조종할 뿐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날 정오 갓 초등학생이 된 꼬맹이는 학교에서 오다가 삼촌 떼들이 묘벌에 새까맣게 몰려 있는 걸 본다. 낯선 이들도 섞여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일어나 딱딱딱 박수를 치고 어깨를 걸고 “으이샤 으이샤” 발맞춰 읍내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깊은 저녁 삐이꺽, 삼촌이 대문을 빠져나가자마자 누군가가 탕탕탕 대문을 쳐댔다. 아버지가 활짝 대문을 열어 제치고, 순경 앞에서 연신 손을 비벼대며 머리를 조아리는 할머니를 홱 밀쳐냈다. 꼬맹이는 아버지와 경찰이 주고받는 말 속에서 ‘동맹휴학’과 ‘사상’이란 말을 건진다.

육이오가 터졌다. 인민군들이 큰 마당 중앙을 차지하고 두 팔을 모아 좌우로 삐치며 떠그덕 떠그덕 행진했다. 팔뚝에 붉은 완장을 두른 삼촌 떼들은 총을 든 양 빈 오른손을 꼽쳐 옆꾸리에 대고 턱을 잔뜩 당겨 넣고 마당가를 돌았다. “헌넛! 뚜얼! 써이! 너잇!” 꼬맹이는 그들이 다른 나라 말로 구령을 붙이는 줄 알았다.

이처럼 광복 직후에서 인민군 점령시기까지 삼촌 떼들의 동향을 보여주고 나서 화면이 바뀐다. 밀려갔던 국군이 돌아온 것이다.

햇살이 눈부신 날, 먼 신작로 끝으로부터 구루마가 줄지어 내려왔다. 구루마엔 고개를 푹 숙인 어른들이 가득 가득 실려 있었다. “뽈갱이 년놈덜 꼴 좋다!” 길가에 늘어섰던 어른들이 비웃었다. 꼬맹이 어머니는 한밤중 고구마를 쪄가지고 자치대 임시초소로 갔다. 신작로 옆에 지은 우스꽝스런 세모꼴 초소에 가까워지면 “누구엿! 섯!” 초소를 지키던 이가 소리쳤다. “아무개 에미유.” 어머니는 대답하며 고구마를 내밀었다. 고구마를 받아든 이가 도망친 삼촌 이름을 들먹였지만 어머니는 못 들은 척, 자치대에서 동네를 지켜준 덕에 편한 잠을 자는 게 영 미안하다고 엉뚱한 대꾸를 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삼촌은 ‘연극에선 정경부인 맞춤이었던’ 여인을 아내로 삼아 서울에 가서 정착을 하고 꼬맹이를 데려다가 중학교에 넣어주기도 하지만 ‘삼촌 떼’들과의 우정을 지키느라 ‘꾸준히 회사를 세웠다가 주저앉히곤’ 한다. 그럴 때마다 삼촌댁은 ‘말없이 삼촌의 난관을 뚫어주고는 가만히 물러나 앉곤’ 한다. 그다지도 싱싱하던 삼촌 떼들도 풀기가 가신 것이다. ‘그런 삼촌댁을 곁눈질한 덕으로 꼬맹이도 가끔 옛 아낙 태깔로 내숭은 떨만하게’ 된다. 그렇게 오십대에 접어든 꼬맹이는 이렇게 독백하면서 무성 영화의 막을 내린다.

삼촌댁이 홀연 타계했다. 삼촌은 희끗한 머리를, 그게 누구든 문상객의 가슴에 마구 문지르며 울었다. 영정 속에서 삼촌댁은 보일 듯 말 듯 미소했다. 이제 쉰다섯의 꼬맹이는 듣고 있었다. “헌넛, 뚜얼, 써이, 너잇!” 그 소리 뒤로 물너울지는 “저녁 먹어라-” 꼬맹이는 잠깐 어지럽다

독백만 있을 뿐 끝내 꼬맹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질곡의 현대사를 영상처럼 선연하게 보여주면서도, 감정도 분식도 철저하게 배제했다. 보여주는 대로 보고 나서 울든 웃든 마음대로 하라는 태도다. 대단한 뚝심이다. 기발한 파격이다.

<……(6)> (이고운); 제목의 격을 깨기로는 <헌넛, 뚜얼 --->보다 한술 더 떴다. 이게 무슨 암호인가 했더니 중국 천하 제일교 근처 명태 덕장이 있는 정자에서 ‘연심 열쇠’를 산 이야기였다. 자물통에 사랑하는 두 남녀의 이름을 새겨 줄에 걸어 잠그고, 쇳대를 던져버리면 그 열쇠를 찾지 못하는 한 영원히 헤어질 수 없게 되는 열쇠라고 한다.

남편이 쪼르르 달려가더니 자물통을 사들고 왔다. 자기 이름에 내 이름을 새긴 자물통을 쇠줄에 달고 채웠다. (열쇠를) 힘껏 던진다. 팽그르르---약을 올리며 저 아래 골짜기로 열쇠는 숨어버렸다. 아뿔사, 그것은 저승에서도 함께한다는 진저리가 아닌가. 자유를 구금하는 영원한 상실인 것을. 나는 벼랑 위에 서서 진실이 은폐된 흔적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남편의 의도와는 동떨어진 생각을 하며 덕장에 걸린 명태들에게 연민의 눈길을 보낸다.

운명이 절망에 빠지던 날, 굵은 쇠꼬챙이가 관자놀이를 관통하고 말았다. 내장을 강탈당하고 엷은 껍데기가 소금기를 물고 대롱거려야 하는 공포와 두려움이 된 바람을 울음 울고 바람에 흔들리며 거뭇거뭇 녹이 슬었다. 허옇게 말라버린 눈을 번뜩여도 험준한 이 오지에 유폐된 자신일 뿐이다. (중략) 사는 것들이 베를 짜듯 더 촘촘한 줄에 걸리는 안달인지도 모른다. 탯줄을 자르는 순간에 생긴 딸이라는 이름, 소소한 인연줄은 그냥 두고라도 아내, 엄마, 며느리 이 땅의 여인이라는 이름이 어디론가 끌려가는 ‘유예’의 행렬에 끼여 가는 밤길이다. 두 눈 멀쩡히 뜨고도 매달려야 하는 까닭을 못 보는 동태 눈알을 굴리면서, 껍데기마저 벗겨지고 어녹으며 삭는다. 그러나 그 쇠줄은 삭지 않는다. 더 질겨질 뿐이다.

이처럼 거침없이 쏟아내는 격정이 더러는 요령부득이고, ‘탄설한다’ ‘어리서리’ ‘텁지인다’ 따위 정체불명의 어휘를 구사하는 등 문장도 거칠지만 ‘격식’에 식상한 독자에게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파격’이라고 해서 약속된 문법까지 깨뜨릴 수는 없다.

≪계간수필≫은 전통을 존중하는 잡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위에 소개한 두 작가는 물론, 형편상 언급하지 못한 <비계, 마중물, 바닥짐 고考>(서숙), <아버지>(박장원), <장편掌篇들>(박태선)이 모두 이곳 출신이었다. 의미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