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민주주의

 

 

                                                                                    김병권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국의 수상 처칠경이 한 말이 생각난다.

“자유민주주의 정치라는 것이 지고지상의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까지 이 지구상에 등장한 그 어떤 정치제도보다 낫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지향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 앞으로 이보다 더 좋은 정치제도가 출현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것을 택해야 할 것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선진민주주의 국가의 재상답게 확고한 소신과 겸허한 자세가 돋보이는 말이라 하겠다. 이것은 당시 양극화의 냉전체제 속에서, ‘공산주의 체제는 과학적 사회주의이기 때문에 한 점의 오류도 없는 완벽한 정치제도’라고 입버릇처럼 자랑을 늘어놓던 ‘스탈린’에 대한 핀잔조의 말이었다.

사실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자유민주주의만큼 허점과 단점이 많은 정치제도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하려 해도 비판과 반대에 부딪치기 일쑤이다 보니 자질구레한 일까지도 의사합의 과정이 너무 어려워, 갑론을박하다가 용두사미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어떤 기성품 옷을 사 입듯이 아무렇게나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 제도는 아니다. 더구나 전혀 정치훈련이 되어 있지 않는 후진국 국민에게는 쉽사리 받아들여질 수 없음은 뻔한 노릇이다. 그래서 의욕에 찬 정치지도자들은 단시일 내에 눈부신 성과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독재체재에 대한 매력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몇 해 전의 일이다. 내 고향 출신 모 정치인은 남다른 경로사상의 소유자로서 자기 지역에다 노인 복지를 위한 이상적인 ‘노인촌’을 계획한 일이 있었다. 시의時宜에 알맞은 좋은 사회사업임은 물론, 윤리 도덕적인 측면에서도 그 뜻이 훌륭하다고 하여 각계각층으로부터 많은 찬사와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몇 달 뒤 부근 땅값 하락을 이유로 주민들의 반발을 사게 됨으로써 끝내 낙선의 고배까지 마시고 무산된 일이 있었다.

독재체제 하에서는 1년 만에 해치울 일이 수십 년이나 걸릴 수 있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약점이다. 언젠가 싱가포르의 이광요 전 수상은, 당시 우리 대통령이 “나는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루겠다.”고 언명한 말을 받아 “내가 하버드 대학 정치학과 출신인데 어찌 자유민주주의를 모르겠는가.”라고 말한 것을 지상에서 본 적이 있다. 엄격한 규율과 통제의 나라, 사실상 독재체제나 다름없었던 싱가포르를 세계일류국가로 만든 이광요 전 수상을 두고 독재자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러한 경우를 두고 선의의 독재라고 했던가.

우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치적을 두고 아직도 찬반 이견이 분분하지만 가난의 대명사인 보릿고개를 추방하고 이 땅에다 경제대국의 토대를 이룩했다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아무 일이나 희생의 댓가 없이 공짜로 얻어지는 성과는 없는 법이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경제적 풍요도 개발독재에 의한 희생의 댓가로 얻어진 결과물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최근 경제적 불황 속에서 생활고에 허덕이는 사람들 중에 ‘차라리 그때가 좋았는데’ 하고 한숨쉬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볼 적에는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 정치제도에서 강조되는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것도 그렇다. ‘처칠’경의 말을 빌리자면 다수결이라는 제도도 절대적인 정답이기 때문에 택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상 다른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할 뿐이다. 문제의 정답 도출 면에서만 본다면 ‘소크라테스’나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 한 사람의 의견을 보통사람 수십 명이 어찌 당할 수 있겠는가? 만약 다수결이란 미명하에 ‘맹자가 공자의 스승’이라고 가결해도 따라가야 하겠는가.

일찍이 우리 동양의 역사 속에는,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없었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민주주의 못지않게 차원 높은 왕도정치란 것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전제군주제이긴 해도 정치의 근본을 백성에 둔다는 민본사상과 덕으로서 나라를 다스린다는 덕치주의를 성군이 지향하는 이상 정치로 여겼던 것이다.

옛날 중국의 요순이나 조선조 세종대왕 같은 성군들의 정치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옛날 부국강병책을 도모하여 진의 천하통일 토대를 닦았다고 할 만한 상앙이란 자도 처음에는 진효공에게 왕도정치를 주청하였다. 하지만 그 왕도정치의 이상이 너무 원대하고 실천과정이 어렵다 보니 그는 태도를 바꾸어 힘으로 밀어붙이는 패도정치를 건의하여 그 놀라운 발전을 도모했다는 고사는 깊이 음미해 볼만 한 일이다.

상앙이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다가 결국 자기가 만든 법망에 스스로 걸려 죽을 정도로 비참한 최후를 마쳤지만 부국강병의 획기적인 업적을 남긴 것만은 오늘날까지 역사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실례를 보더라도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가 그 얼마나 어렵고 비능률적인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꽃은 자유선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자유선거 역시 허점과 맹점이 많기로는 더할 나위가 없다. 온갖 비리와 중상모략이 난무하여 마땅히 당선되어야 할 인물이 무명의 풋내기에게 지는가 하면, 자타가 공인할 만큼 실력과 덕망을 갖춘 사람이 어느 호스티스에게 패배하는 진풍경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사방에서 망국풍조라고 개탄하는 소리도 듣는다. 오늘날 우리의 선거 풍조만큼 사회적인 비난을 받는 것도 드문 일이다.

이때까지 설익은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겪는 혼란과 허점 약점 등을 피상적으로나마 살펴보았다. 그러면 이렇듯 허점투성인 자유민주주의를 우리는 왜 그토록 갈망하는 것인가.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자유민주주의의 최고 이념이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이나 인간존엄성 구현은 그 자체가 목적적 가치이며, 그 어떤 다른 가치로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재체제 하에서의 장점이 아무리 많다 해도 그것은 수단가치에 불과할 뿐 그것으로서 주객을 전도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란 말은 하나의 정치이념이라기보다는 한 차원 높은 국민의 생활철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연말에 있을 대선을 앞두고 치열한 선거전에 돌입한 느낌이다. 날마다 상대의 약점을 폭로 비방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뜻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맛살을 찌푸리며 나라의 내일을 걱정한다.

하지만 이런 자유선거가 비록 비리와 부조리로 얼룩진다 하더라도, 정적이나 반대자를 납치 암살하는 테러 행위보다는 낫지 않는가. 또 선택의 여지없이 단일후보를 내세워 찬반 투표만 하는, 전체주의 체제보다는 낫지 않는가.

처칠경의 말처럼 자유민주주의가 지고지상이라서 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그 어딘가에 숨어있는 지고의 정치제도가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이 차선次善의 정치제도를 끝없이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홍역을 앓으면서 성장하는 과정과도 같은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