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만나기

 

 

                                                                                       김수봉

고요함, 그 평화로운 적요寂寥를 맛보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대체로 사람들은 한적한 두메나 깊은 산사를 먼저 떠올리겠지요. 또 어느 때가 가장 고요할까요? 하면, 깊은 밤 시간대가 우선 생각날 겁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웬만한 도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어느 곳에도 고요한 심야가 있을 것 같지 않군요.

문명은 소음을 생산해내는 거대 프로덕션이 아닐지요. 밤이라고 해서 호롱불 끄고 모든 활동 멈추고, 사람도 만물도 잠이 드는 저 옛날은 이제 없어졌어요. 도시의 빌딩마다 불은 대낮처럼 밝혀졌고 시골의 가로등도 눈 부릅뜨고 있대요. 공장의 기계들은 쉼 없이 돌아가고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사람들은 언제나 분주히 오갑니다. 거리의 자동차도 밤이라고 해서 한가롭지만은 않고요.

세상이 이렇게 변해가다 보니 사람들은 더욱더 고요한 곳, 고요한 시간을 갈망하게 되고요. 그러나 삶에 쫓기고 있으니 그런 시간을 갖기란 좀체 어렵지요. 하루하루 미루어가다 보면 자신이 시대의 홍수에 떠밀려가고 있는 모습을 보는 거지요.

하루라도 함께 흐르지 않으면 뒤처지고 생계에 위협을 받을 것 같은 불안이 덮씌워 오지요.

아파트에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어 봐도 드르륵거리는 굉음들과 웅웅대는 소리는 끝나지 않더군요.

밤도 마찬가지예요. 내 의식이 말똥말똥할수록 소음은 더 파고들지요.

문득 다 떨치고 고요를 찾아 인적 하나 없는 어느 곳으로 가고 싶지만 이 나라가 온통 도시화로 발전(?)해가고 있는 지금은 선뜻 찾아갈 곳이 없답니다. 산사의 승려들을 부러워도 해보지만 조금만 이름 있는 절은 사람들의 발길이 여느 도시 찜쪄먹을 정도니까요.

‘여기는 묵언수도하는 도량이오니 정숙,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문구가 웬만한 절이면 다 붙어 있는 것만 봐도 짐작이 가지요.

시끄러운 것들로부터 전혀 방해를 받지 않는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에게 집중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는 일이고요. 분주히 살아가는 삶, 욕망을 향한 집착은 삶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리게 하지요.

우리는 사색하고, 자신과 이웃을 돌볼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훤히 알고 있으면서도 실행하지 못하고, 실행 못한 그것을 또 괴로워하거든요.

행복한 사람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니까요. 고요한 시간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것은 한생을 살아가면서 가끔씩 삶을 추스르는 일이지요. 그래야 노후의 회한도 줄어들 겁니다.

나는 안답니다. 남이야 웃겠지만 ‘천하의 낚시꾼임’을 자부하는 나는 고요의 참맛을 안답니다.

전라북도 순창군 산골에 있는 이름도 없는 아주 작은 저수지, 그곳이 나를 고요 속에 자연과 하나가 되게 하는 자리랍니다. 찻길에서도 오리 가까이 걸어야만 당도하는 곳이어서 자동차 소리는 말할 것 없고 인기척도 없답니다. 휴대전화는 아예 가청 장소가 아니고요. 간혹 장끼들이 큰 소리로 정적을 깰 뿐, 새소리 씨르래기 노래가 생명들의 안존을 알려주지요. 호젓해서 으스스한 느낌은 처음 얼마간 뿐이었습니다.

나는 일주일 혹은 두 주 만에 한 번씩은 이곳에 간답니다. 일부러 라기보다는 그곳이 나를 잡아끄는 어떤 기운이 있어서입니다.

물론 낚시를 던져 넣고 낚시찌를 바라보며 물속의 생명들과도 소통을 한답니다. 그러면 어느새 나는 산과 물의 풍경 속에 하나의 점일 뿐, 문명의 때에 찌든 인간이 아닙니다.

나는 이런 때 절대 고독, 완전 평화, 홀가분한 자유를 누립니다.

고요 속에 있는 동안은 푸른 숲을 호흡하고 푸른 숲과 대화하는 시간이지요. 인간은 숲과 멀어지면서 온갖 질병을 키워왔다고 하지 않던가요.

나는 먼 곳 여행하기를 버거워하는 사람이어서 차로 한두 시간 거리의 물가에 가는 것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곳은 물론 유명한 곳이 아닌 오지奧地)수준이라야 합니다. 갈대숲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졸고 있는 수로水路가 제격이죠.

낚시터이긴 하지만 고기가 낚이지 않기로 소문난 곳이면 더욱 좋지요. 갈대숲은 바람을 막아주기도 하고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거든요. 숲엔 아주 작은 새 개개비들의 재잘거림이 나를 웃음 짓게 해주는 것 말고는 고요만 흐르는 시간들이지요.

고요는 바깥 환경이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진정한 고요는 자기 내면에서 생기지요.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고요를 이룰 수 있지요.

이제 나는 산골과 물가에 앉았다 오기를 거듭하면서 이 마음 다스리기를 배워오려 합니다. 먼저 마음의 귀, 마음의 눈을 닫는 것부터 훈련하렵니다.

‘기차 소리 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 자’는 그런 아기가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