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나무 골에 가다

 

 

                                                                                    이정하

거기 가면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목장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창고와 공장이 즐비한 곳으로 가는 넓고 평평한 길이다.

그 밤나무 골에 갈 적마다 나는 갈래 길에서 서성이다 돌아오곤 했다. 기껏 간다는 것이, 길이 갈라지는 어금에서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조그만 개울에 앉아 강으로 걸어가는 여린 물그림자를 보았다. 사람의 마음에도 그림자가 있다면 저 물그림자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나뭇가지마다 비어있는 밤나무 골, 오늘은 야트막한 산허리를 돌아 중턱을 넘는다. 넓게 트인 목초지가 구리 빛으로 노을을 받고 있었다. 대지는 초록의 전언을 기다리는 듯 아득한 하늘 끝으로 길게 목을 늘이고, 능선을 넘나드는 새의 날개가 휘휘한 동작으로 무늬를 그리며 날아간다.

철조망을 넘어 목초지로 들어섰다. 푸석한 흙들이 겨울서리에 곤두서있다. 말라버린 풀들이 뿌리를 내어 놓은 채 바람에 떨고 있다. 몸과 영혼이 소진되어 생명력을 잃어버린 슬픔이 묻어 나온다. 뿌리의 하반신을 흙 속에 밀어 넣으며 꼭꼭 밟는다.

막사가 가까워지면서 목장 특유의 냄새가 났다. 산더미 같은 목초와 각종 사료들이 쌓인 창고를 지날 때, 검은 물체가 일렁거렸다. 젖소 무리였다. 후우욱- 내뱉는 소들의 입김, 귀에 단 번호표가 생경했다. 한가롭게 저녁을 기다던 무리들이 뜻밖의 방문객에게 커다란 검은 눈을 껌벅거린다. 머리를 주억거리며 몇 발짝 걸어오다 무심하게 돌아간다. 몇은 내게로 와서는 낮은 담 너머로 얼굴을 내민다. 환영이라도 하는 듯한 순한 눈, 그 순한 눈빛을 보면서, 저들만큼이나 순한 눈을 가진 한 남자를 생각한다.

계절마다 눈빛이 달라지던 남자가 있었다. 그는 한 번도 농사꾼이었던 적이 없었고, 산속에 살아본 적도 없었다. 그런 그가 목부로 자청해 목장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그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며, 우사에 딸린 작은 방에서 몇 번의 계절을 났다. 그의 표정은 소를 닮아가고 목소리에서는 숲 냄새가 났다. 송아지를 낳은 어미에게 미역국을 끓여서 먹이고 젖을 짤 때는 유연한 클래식 음악을, 풀을 뜯고 운동을 하는 시간에는 경쾌한 음악을 거르지 않았다.

어쩌다 그의 방을 들여다보면 책들이 벽을 기대고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앉은뱅이책상에는 갈겨쓴 글씨들이 뭉치뭉치 뒹굴고 있었다. 그것들이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비 개갠 오후, 낮은 안개가 산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러 오라며 내게 성화를 부렸다. 아침 일찍 풀잎 끝에 반짝이는 이슬의 전령을 듣지 못한다면 평생을 후회할 거라며 전화기 너머로 협박하곤 했다.

그는 대지에 발을 디디며 온갖 생명들과 만나고 얘기하며 자연에로 순화하고 있었다. 그러는 그를 보면서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나는 점점 자연과 이질화되는 느낌이었다.

물은 직선으로만 흐르지는 않는다. 때로는 굽이도 틀고 소용돌이도 돈다. 바람이 불던 날, 오토바이를 타고 산을 내려오다 오토바이가 사고를 냈다. 그는 어깨가 골절되고 허리가 심한 부상을 입어 오랫동안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처음에는 육체적 고통에서, 정신적 고통에로 고통전이를 겪으면서 더 깊은 괴로움의 수렁으로 빠져 들었다. 그의 내면을 지켜줄 버팀목이 어디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탈진해 가던 날이 얼마였을까. 소진된 그의 가슴 밑에서 실낱같은 향수 냄새가 살아나던 것이다.

같은 병실에서 아버지의 병을 간호하던 참한 처녀와, 언제 마음에 교감이 다녀갔는지 잿빛 같던 얼굴에 홍조를 띠며 남자는 달라져가고 있었다. 퇴원을 했어도 힘든 일을 할 수 없는 그는 산을 내려와 회사원이 되었다. 즐겨 낚시를 가고, 신춘문예에 원고뭉치를 보내고, 충혈 된 눈으로 출근을 한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글을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간다며 내게 투덜댄다.

그들은 언젠가 산으로 돌아가 목부가 되고 목부의 아내가 될 거란다. 그의 아내는 소젖을 짜고, 남자는 두엄을 썩혀 포도밭을 일구어 갈 것이다. 그리고 든든한 아내의 후원 아래, 신문의 한 해 첫날을 여는 환희도 불꽃을 놓으려는지. 그러면 겨울 밤나무골을 찾아오는 나도 외롭지 않겠다.

낯선 이의 출현에 소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던지 목장의 주인이 나타났다. 밤나무골 교회의 장로님이시다. 웬일이냐며 환하게 웃는다. 작은 체구에 얼굴이 까맣다. 그래선지 치아가 유난히 희다

목장 주인은 70년대 유신개헌을 반대하다 학교에서 제적당하고 발붙일 곳이 없어졌을 때 여기로 들어왔다고 했다. 그런 뒤로는 한 번도 밖을 나가지 않았다. 소 값 파동으로 파산을 맞을 때도 땅만 지키며 살아왔다. 소를 키우며 자연과 함께 살아서일까? 더 평화롭고 따뜻해 보인다. 살아가면서 저런 모습을 가진 사람을 몇이나 만날 수 있을까.

밤나무골, 고요하고 밝은 저녁이다. 내려다보이는 마을에서 아이를 찾는 엄마의 목소리가 아득히 전설처럼 들려온다.

 

 

<<계간수필>>(2003년) 등단

진주문협 회원. 개천문학상 수상(20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