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질항아리 Ⅱ

 

 

                                                                                     전용희

모처럼 시간을 내서 용산 국립 박물관에 갔다. 동선을 따라 먼저 들어간 곳이 선사시대 전시관이었다. 나는 전시관 입구 안쪽에 세워진 그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엉킨 철사타래 같은 머리카락과 거칫하고 두터운 피부, 옹이처럼 단단한 맨발의 사람들이 커다란 사각의 프레임 안에 둥글게 모여 서 있는 그림이었다. 나는 풀로 아랫도리만 겨우 가리고 무심한 표정으로 서 있는 선사시대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사냥도구가 진열된 곳으로 걸어갔다. 돌을 깨뜨려 만든 것인지, 들이나 산에서 그런 돌을 고른 것인지, 뭉툭한 느낌의 돌칼과 주먹 도끼 등을 바라보면서 지나온 그림을 생각하며 돌칼이나 주먹도끼를 움켜지고 짐승을 쫓아 달리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허기가 가시고 나면 무얼 했을까, 본능적인 욕구충족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아닐까. 그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하지만 토기가 진열되어 있는 쪽으로 몸을 옮겨 좌우 대칭이 맞지 않는, 기술이나 기교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토기들을 보면서 생각을 바꾸어야 했다.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문명의 시원始原에 해당하는 시기에 그들은 마음의 물레를 돌려 질박한 모습의 토기들을 만들었던 것을 보게 되어서이다. 그 중 빗살무늬 토기를 보았을 때 현대의 문명이라는 것을 후광처럼 등에 업고 선사시대 사람들보다는 우월하다는 자의식과 조금은 오만한 시선으로 그들을 보았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나를 느낄 수 있었다.

마른땅 위에 세심하게 비질을 한 듯 촘촘하게 쳐있는 빗금, 빗금들 위에 새의 발자국이 그려져 있다……. 그려져 있다고 해도 될까 라고 나는 망설인다. 발자국을 보았을 때 새가 방금 토기 위를 사뿐히 날아오른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가녀린 날개의 떨림을, 미세하게 흔들리는 공기의 파장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토기 위에 빗금을 긋고 그 위에 새의 발자국을 새긴 사람. 그, 혹은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무엇일까. 황홀하게 이우는 노을과, 노을 속을 유유히 날아가는 아름다운 새의 모습이었을까. 끝없이 날개를 퍼덕이며 먹이를 찾아 해매는 새의 지난한 일상이었을까.

언제가 자신의 손안에 들었던 새의 따뜻한 체온이었을까. 팔딱팔딱 뛰는 심장의 고동이었을까. 차디차게 식은 주검이었을까.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의 몸짓과 운명이었을까. 자신의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을 발길이 닿지 않은 먼 땅, 먼 지평으로 이어놓은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발자국 하나로 응축된 듯한 선사시대 사람의 마음을 망연하게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걸음을 옮겼다.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도 전에 겉으로 드러나 모습에 눈이 팔려 선사시대 사람들을 우리보다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 잘못과 그에 따른 그릇된 상상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아름다운 토기 한 점, 새의 발자국까지 그려 넣을 수 있는 여유와 높은 예술의 혼이 문명을 입고 사는 우리보다 더 섬세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했음을 보게 된 나는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빗금 하나하나의 일상이 기다림과 그리움일 수도 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삶에 쉼표를 새의 발자국으로 찍어보는 여유도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임을 드러내어 보이는 과정이기도 했으리라.

나의 일상에는 새의 발자국을 찍을 만한 여유도 공간도 없다며 쫓기듯 살아가고 있는 스스로를 돌이켜 보았다. 게다가 글이라니,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별것도 아닌 생각일망정 제대로 표현해 본 적이 있던가. 토기 한 점에도 저처럼 아름다운 여백을 생각했거늘 내 글에서는 그런 마음이 담기는 공간도 없지 않은가. 나는 무참해진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박물관 건물을 나서고 말았다.

그 날 이후 나는 내 삶의 질항아리에 빗금을 하나씩 긋는 연습을 한다.

어느 날은 기쁨의 줄을 긋고 어느 날은 슬픔의 줄을 그었다. 또 다른 날은 희망의 줄이 그어졌다. 교만의 줄이 그어진 날도 있었을 것이고 사랑의 줄이 그어진 날도 있었을 것이다. 허영의 줄이 그어진 날은 없었을까. 마음에 들지 않는 줄을 슬쩍 지우려다가 그만 둔 날도 있었다. 그것 또한 내 모습이기에.

그 빗금들 위에 내 영혼의 발자국 하나 선명하게 찍히는 날이 있을까. 비록 나의 눈에만 보이는 자국일망정.

 

 

<<계간수필>>로 등단(2006년).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창과 과정 수강 중. <<계수회>> 회원.

<<수필과 비평>> 작가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