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발표 유고수필|

 

나무 울타리

 

 

                                                                    유 경 환

나무울타리.

이것이 그렇게 부드럽게 보일 수가 없다. 보이는 것이 나무울타리일 뿐이어서 그럴까, 아니면 좀 이국적異國的인 구조여서일까. 바람이 통과되도록 판자를 3층으로 붙인 울타리, 판자는 일정한 규격 판자이다.

한눈에 드는 넓이, 그 너른 넓이를 품어 안고 그림처럼 둘러쳐 있는 나무울타리에 눈길이 잡힌 것은, 자라면서 보아온 나무울타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나무울타리 하면, 으레 자라는 생나무를 잘라다 엮듯 그렇게 세워 놓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찾아온 곳에 보이는 것은, 이 나무울타리와 두 채의 나무창고와 그리고 양들의 축사가 전부이다. 이것들 곁에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는 하늘과 구름과 그리고 소나무들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는 한없이 부드럽게만 보이는 목초지. 아니, 더 있다. 바람. 대관령바람. 흑 흑 하고 흐느낄 만큼 가슴에 안겼다가 빠져나가는 바람. 마치 김 자루 같은 그런 모양을 가진 바람이다.

그 많은 산과 언덕과 나무를 두고 하필 이곳에 조용히 하늘이 내려와 노는 하늘운동장에다 목장을 차린 까닭은 무엇일까. 하늘운동장을 그대로 양들에게 빌려주는 그런 배려에서 이곳에다 나무울타리를 둘렀을까?

그런 뜻에서라면 나무울타리는 울타리가 아닌 표지판이겠다. 주욱 이어진 표지판. 이곳이 너희들 삶터의 경계라는 알림판. 기껏해야 양들의 키 높이. 그러니 사람에겐 무릎높이에 불과하다. 밖으로 나가면 안된다는 경고판이나 다름없다. 이런 나무울타리가 언덕을 따라 춤추듯 늘어서 있다.

검은 색과 흰색이 아주 잘 어우러지는 곳이다. 봄이 오기 전, 아니 오고 있으되 미처 다 오기 전 검은 색의 언덕을 잇고 있는 곡선의 고원지다. 짙게 검지 않고 거므스레 먹물 같은 배색이, 군데 군데 흰 색에게 먹힌 그런 계절의 풍경화, 그늘 진 곳의 잔설이 풍경화를 돋보이게 한다.

그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소나무들은 소나무 특유의 색깔을 자랑스럽게 뿜고 있다. 소나무를 제외한 나머지는 바람색이라는 말을 새로 만들어 쓰면 어떨까 싶은, 그런 색으로 틈없이 채워진 풍치를 지니고 있다.

이곳에선 바람에도 색깔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언덕을 열심히 칠 하고 있는 바람. 이 바람색은 연초록이다. 아주 엷은 연초록 기운. 색깔 있는 바람이 연초록 기운을 실어 나르고 있다. 그러면서 색깔 있는 바람은, 검은 색과 흰색 사이를 조용히 확장하고 있다. 마치 현명한 점령군처럼.

황계 나들목에서 대관령 옛길로 빠져나와 한참 오르다 보면 언덕배기에 ‘양떼목장 가는 길’이라는 나무쪽을 볼 수 있다. 어디쯤인지 미리 알고 있으면 쉽게 눈에 들어올 그런 크기의 표지판.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미리 짐작한 일은 어렵지 않게 만나는데, 미리 짐작지 못한 일은 그냥 지나치거나 놓치기 일쑤다. 미리 짐작한다는 것이, 삶에서는 경험이거나 지혜일 수 있다.

양떼목장 찾아오는 것이 무슨 큰 일이겠느냐만은, 못 찾고 지나다 보면 다른 일까지 미루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 크지 않은 나무쪽도 그런 몫의 기능은 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것들과의 만남 또한 크거나 요란한 것이 아니건만, 때때로 그것들은 삶의 방향을 틀거나 바꿔놓기도 한다. 나의 생生에서 내가 만난 사람이 나의 길에 함께 가는 사람이 된 것처럼. 가끔 내가 우리 집사람을 말없이 바라보는 이유도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

대관령 산천이 짙푸르게 피어나는 한여름보다는, 오히려 겨울 한 철 은백의 세계로 양떼목장이 눈부신 그런 하루를 골라, 우리 집사람을 여기에 데려오고 싶다. 긴 자루 모양의 대관령바람 앞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서로 엉겨 버리며 서보고 싶은 것이다.

이 때 우리 집사람 표정에 눈웃음이 보인다면, 그렇다면 함께 온 보람이 있다고 혼자 속으로 여길 일이다. 더 이상 나가면 안된다는 알림판 나무울타리. 그것이 넘어지지 않게 비스듬히 걸터앉히고, 우리 집사람이 지을 눈웃음을 사진에다 소박하게 담아보고 싶다.

이런 눈웃음은 힘들여 기어 올라온 것처럼 그렇게 살아온 우리의 생에, 결국 조용한 해답이 되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보이지 않게 내가 그어놓은 울타리 안에서 맴돌아온 우리 집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