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여름

 

 

                                                                                      변해명

빗소리를 지우려고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듣는다. 어제도 듣고 오늘도 듣는다. 천둥소리가 더 크게 음악소리를 삼킨다. 오늘따라 아침부터 빗소리가 요란하다. 밖을 내다보니 시야가 어둡다. <눈물만 참을 수 있다면> 유경환님의 시구가 입에서 맴돌아 눈물을 삼킨다.

눈물만 참을 수 있다면

눈물만 참을 수 있다면

소박한 목소리로

주님과 말씀을 나눌 수 있으련만……

울음만 참을 수 있다면

울음만 참을 수 있다면

작은 가슴으로라도 품을

그분의 목소리 들을 수 있으련만

기도는 거룩한 대화

하늘에 이르는 길

울음만 참을 수 있다면

울음만 참을 수 있다면

- 눈물만 참을 수 있다면-

빈소 영정 옆에 놓여 있는, 떠나는 시인의 마음이 담긴 유작 시다. 선생님이 구술하는 것을 가족이 받아 쓴 마지막 시가 내 마음을 흔든다. 평소 소년 같은 동안에 미소를 머금던 모습이 다가온다. 선생님이 눈물을 참을 수 있다면 울음을 참을 수 있다면 하늘나라에 들며 하느님을 의지할 수 있을 터인데, 가족 곁을 떠남에 참아 눈물을 참을 수가 없고 울음을 참을 수가 없어 눈물이 되고, 울음이 되는 아픔을, 그 마지막 안타까움을 토해내는 목소리가 이명으로 맴돈다.

돌아가시기 20일 전에 병원으로 문병을 갔을 때 맑고 투명한 목소리로 당신의 작품을 말씀하셨는데……. 그 모습, 그 목소리 다시는 대할 수 없게 되었다.

선생님의 영결미사는 당신이 평소 작사하고 성당에서 불리던 성가로 진행되었다.

……그 뒷모습 혼자이나 / 어디에나 계시고 / 그 목소리 아득하나 / 바람처럼 아득해 / 간절하게 울린 기도로 / 만나 뵈온 이 기쁨 / 나 이젠 다시 헤어지지 않으리 / 바람 속의 내 주여//

― <바람 속의 주>

그리고 마지막 떠나보내는 인사로 <제비꽃이 핀 언덕에> 를 함께 불렀다.

제비꽃이 핀 언덕에 햇볕 따스이 모일 때 / 제비꽃 맑은 이슬에 어머니 눈물이 맴도네 / 제비꽃이 핀 언덕에 바람 얌전히 고울 때 / 제비꽃 가는 손목에 어머니 목소리 감기네 / 다소곳 크지 않은 무덤 비켜간 세월도 누워/하늘도 바치는 제비꽃…

시인의 마음으로 세상을 접고 하느님 품에 안겼다.

무엇이 그리 급하시어 총총히 서둘러 떠나셨을까?

유경환 선생님이 타계하시고 이틀 뒤에 공덕룡 선생님이 뒤따르셨다. 그러나 발인은 같은 날 같은 시각이었다. 유경환 클레맨스, 공덕룡 베드로. 두 분 다 천주교인으로 함께 하늘나라에 드셨다.

갑작스레 떠난 두 분의 소식을 차마 동인들과 목소리를 마주하며 전하기가 힘겨워, 유경환 선생님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그 다음날 공덕룡 선생님의 작별 소식을 핸드폰 문자에 담아 동인들에게 알려야 했을 때, 그때처럼 시린 가슴이 되어 그 소식을 전하기가 힘들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우리 회원인 편집간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지금 제가 ≪계간수필≫에 원고를 보내주셨나 확인하느라 공덕룡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사모님이 받으시며… 공 선생님이 새벽에 돌아가셨다고 하시네요…….”

나는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를 내다보다 믿기지 않아 병원 영안실로 전화를 걸어보고서야 비로소 공 선생님이 돌아가셨음을 받아들였다. 어제는 유경환 선생님의 소식을 오늘은 공덕룡 선생님의 세상 뜨신 소식을, 어느 회원에게는 두 분의 타계소식을 같이 묶어 알리는 황당한 심사. 무엇이 바빠 이리 서두르시며 빗길도 마다않고 길을 떠나셨는지.

나는 공 선생님 생각에 이태리의 가수 파바로티의 <오 쏠레미오> 를 튼다. 노래 소리가 공 선생님의 노래 소리로 들려온다. 이태리 가곡 <오 쏠레미 오>를 언제나 즐겨 부르셨다.

“내 노래는 이태리 사투리로 부르는 칸초네입니다.”

문우회 망년회나 신년 모임이나 특별한 행사로 노래를 부르게 분위기가 되면 익살스러운 말씀과 함께 노래를 시작하셨다. <오 쏠레미오> <돌아오라 쏠렌토로> 그렇게 시작된 노래는 플라시도 도밍고의 <그대에게 내 말 전해주게>로 이어지곤 했다. 그렇게 열창을 하고 나면 정봉구 선생님(작고)의 <축배의 노래>가 따랐다. 여기저기서 앙코르가 나오고 그러면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춤 잘 추시고, 노래 잘하시고, 농담 잘하시고, 마이크를 잡으면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어 놓으시던 분. 공자님의 후손이라며 공자님 말씀을 즐겨 하시던 어른이셨는데…

지난 가을 쯤으로 기억된다. 문우회 합평 때였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전철역으로 가시는 길에 다리가 아프다며 몹시 힘들어하셔서 짧은 거리지만 택시로 모셨다. 그때, 어느 비 오는 날 유두영 선생님(작고)이 걷기 힘들어 하셔서 내가 택시로 모신 일이 생각이 나서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그 모습이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이야.

빗소리 속으로 다가오는 목소리들을 붙잡고 다투어 떠난 두 동인의 음성을 빗소리처럼 듣는다. 27년을 함께한 소리다.

유경환 선생님은 1981년 수필문우회 창단 멤버로, 공덕룡 선생님은 그 다음해에 회원으로 들어오시어 3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수필을 이야기하며 동인활동을 했다. 특히 유 선생님은 ‘계간수필’ 편집위원으로 각별한 애정을 기울이셨다. 언제나 앞 선 생각, 좋은 의견으로 잡지를 새롭게 하고자 하셨다.

공덕룡 선생님은 수필 ‘분뇨담糞尿譚’으로 시작하시어 수필집으로 ‘수필이 뭐길래,’ ‘호주머니 속의 행복’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 외 여러 권의 수필집을, 또 유경환 선생님은 수필집으로‘길에서 주운 생각들’, ‘나무호미’, ‘염소그리기’ 등을 세상에 남기셨다.

이 여름에 수필문우회의 소중한 가족을 잃었다. 이제는 어디서고 만나 뵐 수 없는 두 분. 두 개의 촛불을 밝혀 두 분의 명복을 빌어본다.

천국에 가셔도 글을 쓰시리. 당신들의 모습은 작품으로 남아 후대에 문학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보석이 되어 그들 가슴에 간직되리.

<유경환 71세. 공덕룡 83세. 아름다운 영혼 이승의 옷을 벗고 천국에 드시다.> 우리와의 인연을 이렇게 남기고 강을 건넌 두 분을 떠나보내는 마음 너무 애석해 비 내리는 날 빗소리처럼 옛 소리들을 찾는다.

하늘을 본다. 여전히 어둡다. 금년 여름은 우울한, 장맛비 소리를 지울 수 없는 여름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