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울음

 

 

                                                                                        정부영

휴대폰 속에서 아기 울음이 들려왔다. 옆에서 들을 때처럼 우렁차지는 않았지만 아침을 알리는 첫닭의 울음처럼 맑고 또렷했다.

‘어머, 우리 손자’ 가슴 속으로 밀물이 몰려들어왔다. 꽃봉오리의 꽃잎이 확 벌어지는 순간을 고속렌즈로 찍었을 때의 꽃의 환희가 가슴 속으로 퍼져나갔다.

“우리 아기가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구나, 첫 발을 떼었구나.”

내 눈으로 아기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아들이 타국에서 전화로 이목구비가 잘 갖춰진 건강한 아기를 순산했다는 말에 안도의 숨을 쉬었다.

‘건강하게 태어나주어 정말 고맙구나.’

은근히 기다려왔던 손자. 할머니가 된 기쁨.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왔다.

잉태되기도 쉽지 않았고 자궁에서 자리 잡기도 쉽지 않아 몇 번 어려운 고비를 넘겼던 아기, 제 아빠 엄마를 마음 졸이게 했던 생명이 웅지를 틀고 무사히 태어났다. 그간에 어려웠던 기억들이 아기 얼굴을 보는 순간, 터지는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눈 녹듯 사라져버렸으리라.

아기의 얼굴 모습이 빨리 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멀리 미국까지 단숨에 달려갈 수는 없고 ‘인터넷 가족 카페’에 사진을 올리라고 재촉했다. 신생아의 모습이 올라왔다.

우리 아기 모습! 꼭 감은 눈, 낮지 않은 코, 조그만 입, 제법 많은 까만 머리카락. 비교적 순탄하게 태어나서 얼굴이 편안하고 단아하구나. 가만히 화면을 더듬었다. 보고 또 보았다. 찡하며 눈물이 고여 왔다.

새순이 움트고 있을 때 우리 아기도 푸른 정기를 받고 축복으로 우리에게 왔다. 자고 일어나면 뭔가 새롭고 즐거운 새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까운 친척이나 지인들에게 소식을 알린다. 말소리에 웃음이 묻어나온다. 소식을 받는 사람들도 웃음으로 반긴다. 이러다가 팔푼이 소릴 듣지 않을까 하여 남에게는 감정을 조금 억제해본다. 그렇지만 내 안에선 맑은 샘물이 고이고 영롱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친구들이 손자 얘기를 할 때, 왜 그렇게까지 눈이 반짝이는지, 말이 빨라지는지 무덤덤하게 듣곤 했었지. 막상 그 자리에 서보니 이렇게 다른 것을. 젊음을 강제로 뺏기는 듯한 할머니라는 이름이 섭섭하기는커녕 좋기만 하다. 조그만 입으로 ‘할미’라고 부를 날도 머지않았다.

언젠가 불란서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리라 기대도 안한 뚱뚱한 여인이 깊게 사랑에 빠진 후, 그때의 열정과 환희를 가눌 길 없어 독백을 하다가 주위 아무한테나, 나무와 꽃에게까지 복받치는 감정을 주저리주저리 얘기하는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 여주인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살아가면서 아주 기쁘고 감격스러운 순간이 있는데 처음 손자를 본 순간이 그 중 하나일 게다.

수시로 인터넷을 열어본다. 가족카페를 열어보는 일이 하루의 즐거움이 되었다. 조금씩 얼굴 표정이 달라져간다. 자기만하고 울기만 했다가 이제는 눈도 뜨고 웃기도 하고 옹알이도 하고 발로 차기도 한다. 꼬리말에다 ‘제 아빠를 꼭 닮았구나, 이마는 엄마를 닮아 훤하네.’ ‘목욕해서 시원하시겠어.’ 등 글을 올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인터넷이 이렇게 편리하고 고마울 수가 있다니…….

화상전화를 하며 움직이는 영상으로 처음 아기를 본 날, 제 아빠가 어르니까 방긋 웃고 이내 졸리운지 스르르 눈을 감는다. 내 눈에 또 이슬이 고인다. “삶이 나를 사랑하는구나.” 가슴이 벅차며 무언가 의욕이 솟아난다.

박지원의 글 <도강록渡江錄> 중에 <통곡할 만한 자리>가 있다. 천하의 장관인 넓은 광야를 본 감회, 넓은 세상을 만난 기쁨과 착잡함으로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고 하는데 내 심정이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다만 안다는 것이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칠정 중에서 ‘슬픈 감정<哀>’만이 울음을 자아내는 줄 알았지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은 모릅니다. 기쁨<喜>이 극에 달하면 울게 되고, 노여움<怒>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즐거움<樂>이 극에 달하면 울게 되고, 사랑<愛>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미움<惡>이 극에 달하면 울게 되고, 욕심<欲>이 사무치면 울게 되니, <중략> 복받쳐 나오는 감정이 이치에 맞아 터지는 것이 웃음과 뭐 다르리요.”

그 칠정 중에 나의 눈물은 喜, 樂, 愛가 틀림없다. 고이는 눈물이라도 통곡하는 눈물과 깊이나 강도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귀에 선연히 남아 있는 아기의 탄생 후 첫울음은 어떤 울음일까. 아마 칠정 중의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묻어있지 않을까.

“갓난아이에게 물어보게나. 아이가 처음 배 밖으로 나오며 느끼는 ‘정’이란 무엇이오? 처음에는 광명을 볼 것이요, 다음에는 부모 친척들이 눈앞에 가득 차 있음을 보리니 기쁘고 즐겁지 않을 수 없을 것이요, 이 같은 기쁨과 즐거움은 늙을 때까지 두 번 다시없을 일인데 슬프고 성이 날 까닭이 있으랴? 그 ‘정’인즉 응당 즐겁고 웃을 정이련만, <중략> 아이가 어미 태속에 자리 잡고 있을 때는 어둡고 갑갑하고 얽매이고 비좁게 지내다가 하루아침에 탁 트인 넓은 곳으로 빠져나오자 팔을 펴고 다리를 뻗어 정신이 시원하게 될 터이니, 어찌 한번 감정이 다하도록 참된 소리를 질러보지 않을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갓난아이의 울음소리에는 거짓이 없다는 것을 마땅히 본받아야 하리이다.”

아기는 이제 세상의 문을 열고 나왔다. 그 ‘칠정’을 느끼고 반복해가며 한 인간으로 성장해 가리라. 이는 축복임에 틀림없다. 몸도 정신도 건강하고 아름답게 커나가길 기원해본다. 이름도 ‘신의 은총, 신의 축복’의 뜻을 가진 이름자로 지었다.

아기의 탄생은 자연의 법칙을 따라간다. 한 세대가 또 한 세대로 대물림하는 자연 현상, 아기는 제 아빠를 많이 닮았다. 그 순환의 법칙에 한 몫을 한 셈이다. 아들 집에는 돼지가 세 마리 있다. 아빠돼지, 엄마돼지, 그리고 황금 돼지띠 해에 태어난 아기돼지. 그리고 할머니도 돼지띠지 아마.

몇 달 후면 아기를 보러 갈 예정이다. 그 때쯤, 백일을 훌쩍 지난 아기는 포복을 하며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겠지. 할머니를 보고 방긋방긋 웃으며 알아보기라도 할까. 만나는 순간, 통곡하며 울기라도 하면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