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언제 행복했나요

 

 

                                                                                    신현복

슈퍼마켓에서 찬거리를 살 때 시간이 많이 걸릴 때가 있다.

가족을 위한 먹을거리의 종류나 양이 많아서가 아니라, 질이 좋고 맛이 있어 보이는 것을 이것저것 뒤적이며 고르기 때문이다. 공산품의 대부분은 같은 값에 일정 크기이기 때문에 고를 일이 없지만 과일이나 야채를 살 때는 선택할 때 망설일 때가 많다. 사과를 열 개 사려고 고르다 보면, 다섯 개에서 여섯 개 일곱 개를 고르면서 점점 선택의 기회가 많지 않기에 더욱 좋은 것을 골라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열 개째는 한 번밖에 없는 마지막 기회이기에 제일 크고 맛있어 보이는 것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이것저것 집었다 놓기를 되풀이하곤 한다. 이것을 고르면 다른 것이 맛있어 보이고, 그래서 그것을 집으면 또 다른 것이 더 싱싱해 보이고……. 그러다 보면 손가락 끝이 검어질 정도로 진열대에 그득히 쌓인 것들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는 것이다.

가끔 나 자신에게 질문을 해볼 때가 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언뜻 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누구에게나 몇 가지 정도는 나름대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단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쉽게 결정을 못하지 않을까.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 림보, 매주 월요일이면 이곳에 도착하는 죽은 자들에게 사도들이 묻는다. “당신은 언제 가장 행복했습니까?”

일본영화 <원더풀 라이프>의 처음 장면이다.

사람이 죽으면 거쳐 가는 이승과 저승의 중간지점, 그곳에서 죽은 사람들은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행복한 기억을 찾아서 그 기억을 간 직한 채 영면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냐는 물음에 생각에 잠기는 이들의 표정들은 그들의 갖가지 다른 삶의 모습들이다.

어느 할머니는 어린 시절 벚꽃 흐드러진 나무 아래서 엄마가 싸 준 주먹밥을 먹던 때를, 발레리나였던 소녀는 아빠가 사준 빨간 구두를 신고 유치원에 가던 아침이 가장 행복했었다고 떠올리는가 하면, 꽃을 좋아하던 중년의 여인은 들꽃 그득 핀 들판을 거닐던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그러면 사도들은 그들의 행복했던 그 때와 장소를 그대로 연출을 해서 시간을 보내게 한 뒤 그 행복했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영면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는데- 죽은 자들의 행복했던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을 영상화한, 일본영화 특유의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감성이 돋보이는 장면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갖가지 색들의 꽃들이 만발한 들판과 흐드러지게 만발한 벚꽃 아래서 주먹밥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모습, 아빠가 사 준 빨간 구두를 신고 기뻐하는 유치원생이 나오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도 저렇게 작은 일에도 행복했던 때가 있었음을 돌아보게 하고, 열차기관사의 땀을 식혀주는 창 틈으로 스며드는 산들바람과, 파란 하늘에 하얀 새털구름이 떠 있는 장면을 보며 문득, 소홀이 지나치는 주위의 모든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돌아보게 한다.

그러나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거나 선택을 못하는 자들은 그곳에 머문 채 영면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도로 남아서 다른 자들의 행복했던 기억 찾기를 돕는데, 어떻게 해서라도 행복했던 기억을 찾아 주려는 사도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평범했던 삶이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행복한 기억이 안 떠오른다는 한 할아버지의 행복한 기억 찾기를 도와주면서 사도 다카시는 자신도 행복했던 때가 있었음을 알게 되는데…….

할아버지의 지난날을 연출하는 장면을 보는 과정에서 공원을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멀리 벤치 한쪽에 앉아 있는 한 여인을 우연히 발견하고, 젊은 시절 그가 사랑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 내는 것이다. 그리고 한때 그 여인을 사랑함으로써 괴롭고 힘들었던 그때가 비로서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를 알게 되고 그 기억을 간직한 채 영면할 곳으로 갈 준비를 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주어진 일주일의 마지막날 저녁, 행복한 기억이 너무 많아 어둠이 내려앉은 뜰을 서성이며 고민하는 어느 소심한 남자의 모습이 오래 우리 기억에 남는데. 이렇듯 우리의 삶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를 이 영화는 죽은 자들을 통해 우리를 환하게 일깨운다.

난 오늘도 과일점에서 사과를 고른다.

싱싱하고 맛있어 보이는 것 다섯 개, 여섯 개를 고르면서부터는 예외 없이 또 망설이는데, 마음에 드는 나머지 몇 개를 고르며 어김없이 따라오는 생각.

내 삶도 어쩌면 이쯤에 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우리네 삶은 선택도 안 되고 망설임도 안 되지 않은가.

그래서 나머지 몇 개의 사과 고르기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