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의 방

 

 

                                                                                       이종화

거울을 밀었다. 또다시 거울의 방이다. 출구를 찾아 종일 헤맸지만, 난 여전히 미로迷路 안에 갇혀 있다.

세상은 거울의 방. 이 방엔 요즘 대세라는 LCD 닮은 거울은 없다. 볼록거울, 오목거울, 녹이 슨 청동거울, 그리고 저 유명한 ≪백설공주≫에도 나오는 요술거울까지, 세상은 요지경瑤池鏡인 모양이다. 그런 세상 앞에 날 세우면, 그 속엔 어김없이 날 닮은 타인이 있었다.

가로로 늘어지고 세로로 오므라든 저 일그러진 형상은 세상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이었다. 놀라웠던 건, 요술거울 속 내 모습은 거짓말처럼 멋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왜곡되는 내 모습이 싫어 난 오늘도 출구를 찾았다.

사람들의 눈에 비친 타인의 모습은 낯설기 그지없다. 인간은 그 낯섦에 자신의 낯익음을 불어넣는다. 마음대로 생각하고 멋대로 이해하며, 자신의 상상 속에서 새로운 인간을 지어낸다. 그 중엔 한없이 선한 천사도 있었고 난폭하기 그지없는 악당도 있었지만, 정작 착하면서 나쁘기도 한 우리들의 참모습은 없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살천스러운 우린, 익숙하지 않은 것을 너무도 사랑하지 못했다. 한 꺼풀만 벗기면, 그 안에 낯익은 속살이 고운 자태를 부끄럽게 숨기고 있을지 모르거늘, 겉 다르고 속 다른 것도 모자라 그나마 보이는 외양外樣마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랬다. 사회적 존재인 난, 태어날 적부터 이곳에서 살았다. 하늘의 뜻이 없인 이 방을 나갈 수 없는 게 인간의 숙명이었다. 거울 속 자아와의 만남. 분신과의 조우遭遇. 오늘도 우린 수많은 거울에 비친 수백, 수천의 우리와 만난다.

근두운筋斗雲을 타던 손오공처럼 도술을 쓸 순 없어도, 살다보면 적당히 날 닮은 숱한 나를 잉태하게 마련이었다. 산꼭대기에 다다르면 미끄러지길 반복한다는 커다란 돌덩이를, 매일처럼 산 아래로부터 밀어 올려야만 했던 슬픈 시지프스의 하루처럼, 거울의 방에서도 그런 부질없는 매일이 돌고 돌았다.

그래도 한 가지 소망은 있다. 어차피 이 방을 나갈 수 없는 운명이라면, 거울이 아닌 투명한 유리의 방에서 살고 싶다. 평평한 거울도 싫다.

그저 맑고 투명한 유리였으면 좋겠다. 어차피 세상엔 에이도스(eidos)를 온전히 비춰줄 그런 명경明鏡은 없을 것이었다. 닫힌 공간에 갇힌 사람에겐, 한 줄기 빛을 선사할 투명한 창窓이 절실했다. 더욱이 나와 다른 자아를 기어이 보아야만 하는 이곳에서는.

오늘 밤 꿈속에선, 베르사유 궁전으로 가고 싶다. 그 곳에 있는 거울의 방으로. 인간의 경탄을 자아내고 사람의 마음을 현혹시켰던 귀족들의 허영에 찬 삶, 그 무도회의 현장에서 내일을 대비한 예행연습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얼짱 각도. 그런 것이라도 지어 보여야 하는 것일까. 배시시 웃으며, 내일은 희극배우가 되어 보자. 어차피 인생은 코미디가 아니던가.

 

 

<<계간수필>>(2006)로 등단.

한국산업은행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