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여인과 마주앉아

 

                                                                                    허창옥

여인은 야무지고 당차 보인다. 뿐만 아니라 한쪽 무릎을 세우고 두 손을 포개서 무릎 위에 살포시 얹은 자태에서 기품과 위엄이 느껴진다. 옛 여인이다. 쪽을 찐 머리에 단아한 한복 차림이다. 등을 곧추세우고 고개를 약간 쳐든 모양새가 사대부가의 안방마님 같다. 그 여인과 한참을 마주앉아 있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 본다. “이토록 당당한 당신에게도 서러움이 있었더이까.” 여인이 조용조용 대답을 한다. “누구에게나 제몫의 서러움은 있는 법이지요.”

금속공예가인 고종사촌에게서 좀 특별한 인주함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그 예술적 가치는 문외한인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모르는 대로 말하면 무척 예쁘다. 모양을 묘사하고 싶은데 이럴 때마다 내 글재주는 벽에 부딪친다. 도무지 될 것 같지 않지만 어떻게든 그려볼 수밖에 없다. 재료는 청동에 철을 섞은 것이라고 미리 들었다. 한 변이 3cm 쯤 되는 육면체의 몸집인데 아랫면보다 윗면이 조금 작다. 그러니까 옆면은 사다리꼴이 된다. 이슬방울 모양의 도톨도톨한 점으로 각각의 변을 두르고 여섯 개의 면에는 꽃문양을 촘촘하고 정교하게 양각하였다. 코스모스 씨앗처럼 생긴 잠금장치의 장석을 재껴서 위로 열면 그 안에 담겨있는 붉은 인주가 보인다.

그 뚜껑 위에 여인이 앉아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인주함은 동상을 앉혀놓은 기단인 셈이다. 인주를 담고 있는 함에서 여인의 정수리까지 높이가 6cm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것이다. 작아서 더 예쁘다.

두 번째 수필집을 발간했을 때 동생은 인주함을 축하 선물로 주면서 그의 어머니인 내 고모님께서 우리 집안에 ‘문장’ 났다고 기뻐하셨다는 말을 전했다. 조카를 귀히 여겨서 한껏 치켜세운 고모님의 마음임을 모르지 않는다. 신사임당, 허난설헌, 황진이 등 여성 문장가들은 역사에 당당히 자리매김하였다. 문장이 아니어도 사대부가에는 서슬 시퍼렇던 안방마님이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여성들이 딸이어서, 여인이어서 갖은 설움을 견디며 살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 어머니 세대만 해도 아들 낳지 못한 죄로 쫓겨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그리고 1960~1970년대, 많은 소녀들이 방직공장에서 봉재공장에서 밤낮으로 섬유먼지를 뒤집어쓰며 일해서 오빠나 남동생의 학비를 마련하였다. 이태 전에 범어로터리에서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났었다. 아들을 낳지 못해서 구박 받으며 살았던 어머니의 그 죄 아닌 죄를 반쯤 나누면서 성장한 맏딸인 그는, 계집애 공부시켜서 뭐하냐는 아버지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 일은 친구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지금은 유복하게 살면서도 이야기가 그 대목에 이르자 친구는 눈물을 보였다. 흰머리 적잖게 섞인 나이가 되어서도 떨쳐버리지 못하는 서러움인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문맹인 어르신들을 가르치는 학교를 소개한 일이 있었다. 대부분 할머니들이었다. 글을 배우는 기쁨에 아이들처럼 떠들고 기상천외한 받아쓰기 시험 답안 때문에 박장대소하던 그 얼굴들을 보는데 가슴이 아리더니 눈물이 핑 돌았다.

곡절 끝에 한글을 겨우 깨친 어른들에게 세상은 온통 읽을거리 천지였다. 사방에 걸린 간판들을 읽느라 갈 길을 잊고, 포장마차에 주렁주렁 매달린 차림표를 소리 내어 읽느라 저녁 찬거리 사는 일도 염두에 없었다. 그분들이 가장 환호하고 눈물나게 고마워하는 일은 버스노선을 읽을 수 있다는 일이었다. 버스노선을 읽을 수 있다는 것, 그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일에 단 한 번도 감사해본 적이 없었다. 초로의 아주머니, 할머니, 꼭 가난해서였기만 했겠는가.

한 여인이 꼿꼿이 앉아있는 인주함, 하필 여인은 우리 전통 옷차림에 쪽진 머리일까. 이것을 빚은 작가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자기주장 한 번 변변히 펴지 못하고 뒷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옛 여인이다. 도장을 찍는 일은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여성에게 도장이 주어졌다. 그 권위를 현대여성이 아닌 옛 여성에게 돌려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모두 옛이야기가 되었다. 아직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성이어서 힘들거나 불이익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을 터이다. 그러나 이제 딸이어서 공부를 안 시키거나 여성이어서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 일은 거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도장 찍을 일이 많아서 오히려 귀찮은 시대를 여성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여, 인주함 위의 옛 여인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마치 그가 온 세상 여인의 서러움을 다 씻어준 양 고마운 마음이 된다. 더하여 어쩌면 전생의 내 모습이 저러하지 않았을까하는 참으로 가당찮은 망상마저 생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