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속에서 중얼거리다

 

                                                                                        이경은

혼자 중얼거리는 버릇이 다시 생겼다. 길거리를 걷다가, 음악을 듣다가, 침대에 누워 벽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 누워서도 머릿속으로 중얼거린다.

마음 저 밑바닥에서 이야기들이 고개를 든다.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한다. 삶에 대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하나하나 생각하고 묻고 또 묻는다. 머리는 포화상태가 되어 열이 나고 빈혈이 난다. 더러 심한 날에는 구토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나 답변은 애매하다. 삶이란 게 원래 애매한 것일까. 여전히 답을 못 찾고 마음만 이리저리 굴린다. 정신도 육신을 빌어 사는 것인데, 나는 요즘 너무 마음을 혹사시킨다. 그래서 미안하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수많은 생각들을 쫓아낼 궁리를 한다. 음악을 크게 틀고 똬리를 틀 듯 앉아 본다. 잠시 그들에게 나의 인생을 기댄다.

대학시절 전축이 망가져 음악을 들을 수가 없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당장 오디오를 살 형편이 안 되어, 나는 동네 다방에 가서 한 두 시간씩 음악을 듣거나, 학교 앞 음악다방에 앉아 음악 신청을 하며 갈증을 덜곤 했다. 그 DJ가 신청곡을 유난히 잘 틀어줬는데, 사실은 내 친구와 목하 열애 중이었다. 색시가 예쁘면 처가댁 말뚝을 보고도 절을 한다더니, 그 덕을 한참이나 보았다. 사촌 언니 네에 가면 항상 좋은 그림책이 많았다. 빌려 달래면 안 빌려 줄 것도 아니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비싼 책이라 부담되기도 했지만 괜한 궁상을 떨기가 싫었다. 그저 그 집에 갔을 때 슬쩍 들여다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는 ‘그래. 나중에…….’ 라며 속으로 혼자서 말을 삼켰다.

그런 날엔 광화문으로 갔다. 그 곳엔 항상 바람이 불었다. 실제로 바람이 불었든 아니든 상관은 없다. 내겐 언제나 그렇게 느껴졌다. 이제 겨우 인생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하던 시간에 나는 가난한 삶 속에 가파르게 서 있어야 했지만, 마음마저 가난하고 싶지는 않았다. 생생하게 갓 잡아 올린 생선의 시퍼런 비늘의 발광하는 빛처럼 자존심을 지켜내고 싶었다. 아무리 별 볼일 없이 보이는 초라한 생명체라고 해도 나는 젊은 영혼의 소유자이다.

가슴 저 깊은 곳에 숨은 뜨거운 정열과 미래에 대한 열망, 죽음만큼이나 깊은 무게로 삶에로 향한 나의 집착은 스스로도 무서웠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들을 물리치고 이겨내고 두 발로 당당하게 서고 싶다는 마음을 감추었다. 아니 잠시 미루었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았다. 현실적으로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때로 현실은 청춘의 뜨거운 영혼으로도 극복되지 않는다. 그게 바로 현실의 냉엄한 칼날이다. 나는 너무 빨리 알아버렸던가, 너무 많이 보았던가. 나는 그때 삶이란 원래 그렇게 대충 슬픈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혼자서 길을 걸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바람 속을 헤집고 다녔다. 재수를 하면서부터 시작된 ‘광화문통 아이’는 이제 한 인간으로 자라나야만 했다. 청바지에 티셔츠, 적당한 두께의 스웨터와 그 위에 긴 생머리를 얹고 히피라도 된 듯 광화문 근처의 책방과 화랑들이 있는 길 위를 지루하게 해찰을 했다. 가슴에 바람을 잔뜩 집어넣고 만만치 않은 내 인생의 시간들을 향해 고개를 들어야만 했다.

집시의 눈물 한 방울이 우리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다던가. 나는 어둡고 음습하리만치 우울한 시간들을 가져야만 했지만, 육신의 거칠음으로 정신의 자유로움을 스스로 섬기는 쾌락을 얻곤 했다. 그것만으로 충족하는 영혼이 그 시절 내 속에 꼿꼿하게 살아 있었다.

혼자서 중얼거리고 다녀도 외롭지 않았다. 나의 내면에 분명 누군가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천연덕스럽게 대답하고 질문하고 더러 까탈스럽게 성질을 부려대기도 하지만, 나는 나의 유일한 동반자를 깍듯하게 대했다. 나는 정체모를 내 안의 그를 통해 먹고, 마시고, 이 세상을 통 채로 받아들이느라 함께 진통을 겪으면서 꾹꾹 자라났다. 살아보려고 태어난 지상의 한 여자에게 삶은 더러 까칠하게 굴었지만, 광화문의 바람과 그 애틋한 추억의 길, 전시회의 그림, 책방에 가득한 책들은 나와 내 속의 동반자를 충분히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그 시절들을 살아냈다.

이런 기억이 있어서인지 나는 지금도 좋은 음반과 책을 실컷 사볼 수 있는 인생이라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기준을 갖고 있다. 지금 나는 정말 사고 싶은 책은 살 수 있고, 음반도 골라 산다. 사실 아직도 비싼 그림책은 손에서 몇 번을 쥐었다 내려놓았다 하다가 책방을 뒤로 하고 그냥 나올 때가 더 많지만, 너나 할 것 없이 사는 게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에 비해 그래도 조금은 나아진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아직은 밤을 새워 책을 읽을 수 있고, 아침마다 눈을 뜨면서 무슨 음악을 틀을 까 고민하니 그 이상의 무슨 삶을 더 바라랴.

수필가 유달영은 “세상에 죽음이 없으면 엄숙과 경건함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나는 그 한 구절에 마음을 푹 담근다. 나는 그의 가슴 깊은 아픔을 느끼고, 이내 나의 아픔을 뒤돌아본다. 지난 해 여름의 끝자락에서부터 나는 중얼거리는 버릇이 다시 생겼다. 아, 바람이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