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떡과 동탯국의 날갯짓

 

                                                                                           오차숙

첫째 여인

겨울이 되면 추억에 젖게 하는 메뉴들이 있다.

마음으로 음미하던 매혹적인 음식들이다. 요즘은 식도락이 21세기 문화시대로 돌입 ― 그 동호회 인구가 20만 명이 넘어가고 있다. 여행의 패턴도 단순히 현지를 관광하고 즐기는 여행보다, 입맛이 내비게이션이 된 음식 기행이 늘어간다.

그럼 생애를 통해 기억 속에 자리 잡은 메뉴들은 얼마나 될까.

머리를 싸매도 다시 찾고 싶은 메뉴가 쉽게 떠오르지 않으니 입맛이 제 맛을 잃어가기 때문일까. 문화에 밀려 수많은 음식을 접했기 때문일까. 그 탓인지 며칠 동안 고민을 해도 그 답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사람과 사람의 정도 다를 바 없다. 진실이 땅속에 숨어 가면축제가 벌어지기 때문일까. 그래서인지 좋은 인연을 찾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음식은 좋은 사람과 접했던 메뉴들이 눈물과 정, 추억으로 뒤범벅되어 있어 옛 애인을 그리워하듯, 재회 하고 싶은 음식으로 다가온다.

시골밥상이란 곳이 있다.

식물성 재료로만 이루어진 퓨전 음식점이다. 그곳에서 인생을 논하고 문학을 논하던 선배는 함박눈이 되어 작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곳에서 선배를 만날 때면 물을 만난 고기인 듯 모든 것이 충만했다.

세상의 어떤 술에도 나는 더 이상 취하지 않는다

당신이 부어준 그 술에 나는 이미 취해 있었기에

류시화의 <잔 없이 건네지는 술>을 음미하며 선배와는 나는 마음의 경계선을 없앤 사이였지만, 당시 선배는 남모른 병마에 시달리며 투병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몇몇 문우들은 서로를 존경하며 오랜 시간 사랑했으므로, 선배가 없는 빈자리는 반쪽 인생을 사는 것 같아 울분을 삼킬 때가 많다.

나는 선배의 냄새를 많이 좋아했다. 선배는 메밀가루가 되고 나는 무나물이 되어 선배와 같이 먹던 빙떡을 많이 사랑했다. 많은 메뉴 중에서도 시골밥상의 메밀과 무로 조화를 이루던 빙떡, 그 메뉴는 메밀가루로 전을 부쳐 그 위에 데친 무를 한 소큼 넣고 돌돌 만 음식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봉평에서 탄생되었지만, 빙떡은 제주도에서 유래된 메뉴로 수수하면서도 향기 밴 그 맛이 선배의 이미지를 닮았다.

메밀가루와 무의 만남은 궁합이 맞는 재료들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도 궁합이 맞아야 매혹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듯, 메밀가루와 무가 만난 빙떡도 그와 다르지 않다. 궁합이 맞는 음식은 컨디션 상승에도 많은 도움을 주므로 그 자체가 웰빙으로 다가온다.

둘째 여인

나에겐 빙떡처럼 잊지 못하는 음식을 가슴 구석에 또 하나 품고 살아간다. 생애를 통해 인생을 지배하던 음식이 두 종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두 여자가 살고 있었다.

나는 그때 두 여자 사이에서 잊지 못할 메뉴를 접하게 되었다. 1977년, 남편의 전출지인 춘천에서 첫째 아이를 낳았을 때 주인집 여인이 끓여 준 동탯국 맛이다. 당시 동탯국 속에는 여인의 애환과 나의 애환이 질퍽거린다고 생각하며 후루룩거렸다.

그 여인은 셋방살이 하는 새댁인 나에게 많은 푸념을 토해냈다.

평생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던 여인은 집에서 일하던 딸 같은 식모를 남편이 있는 안방으로 들여보냈다며 눈물을 흘린 적이 많았다. 그들이 자고 있는 안방에 불을 지피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산 너머 화장터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가 낯설지 않았다는 것이다.

젊은 아가씨가 아들을 낳아 안방을 차지하게 되자 그 여인은 그곳에서 흉흉한 소리가 들려와도 남몰래 눈물을 훔쳐낼 뿐, 젊은 여자가 낳아 준 아들을 키우는 일에만 전념했다는 것이다.

드라마 같은 삶 속에 인생은 묘미가 있고 진국이 깃들여 있다.

그때부터 남편의 사랑을 빼앗긴 여인의 얼굴은 싸락눈처럼 삭막해 보여 내 삶에서 지워버릴 수 없는 표정으로 남아 있다. 아들을 낳은 젊은 여자가 나에게 동탯국 이상의 선심을 베풀어도, 세상의 모든 이치는 약자 쪽으로 기우는 것을 그때 터득했다.

내가 첫 아이를 낳아 이불을 만들 줄 모르자 아기이불을 만들어 주던 여인, 산모인 내가 시장 볼 여건이 되지 않자 동태에다 무를 숭숭 떨어 동탯국을 끓여 주던 여인, 때때로 뱃속이 허해지면 한을 삶듯 옥수수를 푹푹 삶아 허기를 면하게 해주던 여인, 나는 그때 그 여인을 나의 탯줄을 잘라 준 어머니보다 더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갔으니 내 삶도 한 토막의 드라마에 불과한 셈이던가.

이제 그 여인도 저 세상으로 떠났지만 여인의 아랫목 하소연이 동탯국 냄새로 진동하며 등골을 타고 흘러간다. 여인의 골 깊었던 얼굴에서 미역국은커녕 동탯국도 먹어보지 못했다는 남모를 애환이 싸락눈으로 요동하며 심장을 누를 때가 많다.

얼마 전에 그곳을 찾아가 보았다. 석사동의 늠름한 은행나무들은 간 곳 없고 웅장한 집들만 가득 차 있어 그 여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가슴 속에 굽이도는 싸락눈처럼 여인이 끓여준 동탯국 여운만이 옆구리를 관통하며 지나갈 뿐이었다.

창밖에는 흰 눈이 펑펑 쏟아진다.

나는 2개의 무로 삐죽이 솟아나 백설白雪의 무언無言에 귀를 기울여 본다. 함박눈과 싸락눈으로 거듭난 영혼들은 빙떡과 동탯국이 되어 무릉도원으로 나를 안내한다.

짙푸른 파도위에 검붉은 회한을 토해내면서

 

 

현대수필(수필), 창조문학(시)으로 등단.

국제 펜클럽, 한국 문인협회, 한국수필학회 회원, 현, 현대수필문인회 회장,작품집 ≪장르를 뛰어넘어≫ ≪수필문학의 르네상스≫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