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방; 자유?

 

                                                                                        오순자

“안녕, 현지!”

“안녕, 현지!”

그녀의 대답에 나는 당혹스럽다. 그녀가 길에서 마주쳐도 인사를 하지 않기에 내가 먼저 시작한 인사다. 그러나 그녀의 대꾸는 나를 흉내 내며 비웃는 것도 같고,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반복하는 것도 같다. 나는 그녀의 의식세계로 들어가 보고 싶다. 그러나 그녀는 대화할 때에 상대의 눈을 쳐다보지 않고 거의 무표정하기 때문에 그저 상상력을 통해서 추리해 볼 수밖에 없다.

처음 수업시간에 그녀는 앞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교과서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집중력이 대단한 학생으로 알았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안 되는 학생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마음이 쓰여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말을 건네면, 의외의 대답을 해서, 당황하기도 하고, 겸연쩍기도 했다.

나는 수업 중에 교수님 말을 듣지만 마지막에 들었던 것부터 거꾸로 기억하기 때문에 묻는 말에 대답을 할 때도 있고 내 생각에 빠져 있으면 무엇을 물었는지 잘 모를 때도 있다

휴식시간에 나는 그녀에게로 가서 말을 잘 건넨다.

“현지야, 친하게 지내는 친구 있어?”

“네.”

“그게 누구야?”

“아주 좋은 사람.”

“이름이 무엇인데?”

“아주 좋은 사람, 뿅뿅이요.”

나는 이쯤에서 대화를 그치거나 화제를 돌려야 한다. 그녀는 학생들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과거에 인식했던 것을 적절하게 종합하여 암호화하거나 특별한 신호 없이도 기억해 내는 자유회상 기억에 문제가 있어서 사물의 이름이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물 마시는 길고 둥근 그릇을 컵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옆에 손잡이가 있는 것이나 종이로 된 것도 왜 컵이라고 부르는지 이상하다

휴식시간에 그녀는 밖에서 들어오면서,

“30세기에는 어떨지 궁금해!”라고 혼잣말을 한다.

나는 깜짝 놀라서,

“현지야, 30세기에 대해서 생각해?”

“네, 그런데 30세기에 나는 없을 거예요.”

“30세기는 어떤 세상일 것 같아?”라고 묻는다.

“30세기에는 29만원 가지고 살 수 있을 거예요“ 라고 대답한다.

“왜 그렇게 생각해?”

“29만원 가지고는 살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ㅇㅇㅇ 대통령은 산다고 했잖아요.”

그것에 관한 뉴스가 나온 것은 몇 년 전쯤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나는 혼란스럽다. 그녀가 그 사건을 기억하고 하는 소리인지 아니면 최근에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기억한 것인지 궁금하지만, 대화를 계속하면 이상한 소리를 하지 않을까 하여 그만 둔다.

그녀의 지도 교수님은 그녀가 연습할 때에는 집중력이 대단하고 박자나 리듬이 정확하다고 했다. 그러나 어휘력이 부족해서 다양한 표현으로 반복해서 말을 한다고 했다. 또한 야단과 칭찬에 금방 얼굴이 빨개져서 조심스럽고,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암보暗譜된 악보는 오래 기억한다고도 했다.

그녀의 피아노 독주회에서 나는 놀랐다. 연주회 전, 후에 인사할 때나, 피아노 앞에 앉고 설 때의 태도는 어색했지만, 그녀의 강한 건반터치가 나를 긴장시켰다. 유연한 흐름이나 정감은 부족했으나 정직하고 순수한 음악이 전해 왔다. 다과회에서 잘했다는 말을 건넸지만, ‘네’라고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부담스러운지 약간 긴장한 것 같았다. 그 후에 그녀는 방송국에서도 초청 연주를 했고, 호평을 받았다.

소리! 내가 좋아하는 소리! 하얗고 검은 건반을 두드리면 소리가 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소리는 쉽게 기억하고 피아노로 똑같은 소리를 만들 수도 있다 교수님이 칭찬하는 부드러운 소리와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좋다

은원불망恩怨不忘. 모든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에 깔려있는 대인관계의 원칙. 그러나 감정이나 물질적인 평형 저울이 그녀 속에는 없는 것 같다. 사회생활을 영위 하기위해서 외면할 수 없는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도 산다. 그녀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 가까이서 관심을 보여도 전달되지 않는 이쪽만의 일방통행일 뿐이다.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우리들이 갖는 상대에 대한 미안함을 가지지도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그녀는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나서 긴 이야기를 할 수 없어도 그들이 대화할 때에 소리의 리듬감 움직임을 듣고 보는 것이 좋다 학교 가는 이유다 어떤 때는 말소리로 들리고 어떤 때는 소리만 들린다 그래서 나는 건성으로 대답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唯我獨尊. 그녀는 독재자나 오만한자와 닮았다. 다른 점은 그녀는 욕심이 없고, 아무도 미워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개성이 강하고, 완전히 자신만이 존재하는 방안에서 사는 그녀가 행복할까? 아니면 무감각할까? 슬픔도 느낄까 궁금하다. 그리고 때때로 그녀의 독자적인 삶의 방식이 부러울 때도 있다. 그녀만의 완벽한 자유?

단절과 습관! 그녀는 오늘을 사는 것 같다. 과거! 지나가 버렸으므로 다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오늘! 어제의 행동이나 말로 후회하지 않고, 내일! 바라는 것이 없으니 불안하지도 않다. 소리를 제외하면 그녀의 생활은 연속되지 않는다. 그녀는 시간으로부터도 신만이 가질 수 있는 자유를 누린다. 습관!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습관이 있을 뿐이다. 이 습관이 있는 한 그녀는 살아갈 수 있으리라.

습관! 습관은 어린 시절부터 나의 부모가 수없이 나를 귀찮게 해서 만들어 준 것이다 가령 어른을 만나면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고 친구를 만나면 안녕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내가 생각해서가 아니고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

그런 현지가 어떤 때는 부럽기도 하다. 번다한 생각들이 나를 어지럽힐 때에. 또 내게도 있는 낯가림 증상의 한 단면이 현지의 일상적인 모습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다. 인간에게 완벽한 성품은 있을 수 없고, 누구나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현지는 상당히 색다른 약점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의 우려와 달리 편하게 살아가는 것 같다.

 

 

≪뉴욕한국일보≫신춘문예당선(‘86). ≪계간수필≫, ≪에세이문학≫(’07) 추천완료.

한일장신대 영문과 교수역임. [토방]동인

저서 : ≪생활 속의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