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증

 

                                                                                       신명희

창 밖이 희뿌옇다. 다행이다. 침상에서 어둑한 창을 보는 것은 별로 달갑지 않다. 새벽 공기 속에는 위산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사륵 위벽으로 스며드는 메슥한 불청객은 야릇한 허기를 부른다. 거무스레한 창 밖 어둠 속에서 잠들었던 허깨비 같은 기운이 찬 새벽, 소름처럼 돋아난다. 하루가 열리기도 전에 내 몸뚱이보다 먼저 기상한 그 적요한 기운은 하루 종일 나를 싸고 돈다. 꼭 위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정체모를 허기는 언제나 따라다닌다.

그득히 차려진 밥상 앞의 포만감은 잠깐일는지도 모른다. 음식알갱이들이 부서지고 으깨지며 침과 함께 섞여서 혀를 자극하는 순간의 기쁨. 그 짧은 쾌감 뒤에는 여러 단계의 노역이 기다린다. 기쁨의 알갱이는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서 줄어들고 자루 같은 밥통 속에서 위산과의 씨름으로 거의 소멸된다. 십리 길 같은 창자 속에서 남은 알갱이들은 소롯이 산화되면서 살이 되어 쌓이고 피가 되어 흘러간다. 알갱이들이 줄어들면서 기쁨이 고픈 즈음에 야릇한 허기란 놈이 슬금 다시 살아난다. 위가 비어서 고플 때 줏대 없는 내 마음도 허기를 느낀다. 위에도 마음에도 착 붙어 다니는 스토커의 정체는 만성위염보다는 허기증에 가깝다.

몇 년 만에 상경한 동창이 새뜻한 명함을 내민다. 가장 손꼽히는 인재였으니 기대도 크고 주위에 웃음을 풀고 다니기에 반가움도 더했다.

“나는 정말 운이 없는 사람이라네. 이제껏 제대로 풀린 일이 한 번도 없다네. 올해부터 대운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제부터 기대해도 좋네.”

“에잇, 운 없는 사람이 그 정도면 운이 따랐으면 큰일 날 뻔 하지 않았나.”

좌중은 황당하다는 듯 웃어댔고 그는 손사래를 치며 눈이 깊어졌다. 어느 덧 그의 술잔에는 지천명의 한이 서려 있었다. 신문에서 그의 동정을 읽으며 활활한 열정으로 살아온 줄 알았더니 그 도도했던 자존이 훌훌 옷을 벗으니 성성한 머리칼 사이로 허기가 허옇게 흘러내렸다. 열정인 줄 알았던 것, 열정으로 보이는 것도 불이 아니라 바람이었나. 불타고 다 태우지 못한 것이 허기로 남았나보다. 친구들의 비웃음 속에서 순간 그와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이제껏 성공의 사다리를 재크의 콩나무같이 타고 쑥쑥 올라간 줄 알았더니 한 번도 흡족한 적이 없다 하질 않은가. 삶의 포만감을 못 느끼며 허기증에 시달리는 나도 그도 허욕인가.

가장 빛나는 불꽃인 줄 알았던 친구도 결국은 한 번도 불타본 적이 없다는 숯이었을까. 식어서 까만 숯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과거의 시간은 늘 나름대로 불타고 있었다. 뛰어다닐 때나 걸어 다닐 때나. 살아있는 사람에게 무위라는 것은 없지 않겠는가. 중한 병상에서는 숨을 쉬는 일조차 얼마나 강렬한 의지이며 뜨거운 열정인가. 심지어 잠을 잘 때도 얼마나 생각을 뜨겁게 모았으면 자면서도 꿈을 꿀 수 있는가.

숯덩이는 지난 시간 속에서 삼천도의 온도로 제 몸을 태웠는데 그 뜨거움을 기억하지 못한다. 가마 속 참나무로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 불타는 참나무로 영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 시간을 거슬러 수풀 속 참나무로 돌아 갈 수도 없다. 누구나 살아온 시간만큼 숯이 되어 있다. 재가 되지 않고 숯이 된다는 것은 타지 않고 남은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뜨거웠던 시간의 기억들은 사위어지고 은근한 화롯불로 불붙이기를 기다리고 있다. 식어버린 숯은 기다린다. 기다리는 숯들에게는 허기의 시간이다. 그러면서 그 불안한 시간을 붙든다. 삶의 모호한 허기를 채우려는 싸움을 계속하면서.

함민복 시인이 생각난다. 그는 사물을 오랫동안 관조하다가 그에게 말을 붙여보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어느 날 까만 숯을 그윽히 바라보다가

“너 새까만 거짓말 한번 해봐라.”

“난 아직 한 번도 불타본 적이 없다네.”

 

 

≪계간수필≫로 등단(2007년)

부천신인문학상, ≪수필과비평≫ 신인상

공저 ≪울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