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얼굴, 다시 읽는 글 ⑧

 

김우현 편

 

                                                                                           박재식

범촌 김우현(凡村 金于玄, 1929~1991)을 추모하노라면 수필문우회의 ‘태평로 시절’이 절로 꼬리를 물고 새삼 그리움으로 되살아난다.

아시다시피 수필문우회(초대회장 김태길)는 1981년 ‘글 좋고, 사람 좋은 수필인’의 친목과 수필의 질적 제고를 목표로 발족한 동인 모임이다. 초창기의 참여 회원은 그에 앞선 ’76년 국내 최초 유일의 월간 수필지 「수필문학」(발행인 김승우) 이 경영난에 봉착하자 그 맥을 되살리기 위해 김태길 ․ 차주환 교수가 주축이 되어 창립한 ‘한국 수필문학 진흥회’의 주요 멤버가 대세를 이루었는데, 그 때 진흥회의 부회장으로 한때「수필문학」지의 발행인을 역임하기도 한 범촌이 주간직을 맡아 회무를 전담했고, 모임의 본거지를 서울 태평로에 있는 오성빌딩(덕수궁 정문 옆) 14층에서 범촌이 경영하던 파나여행사 회의실로 삼았다.

그 무렵 범촌은 그가 지향하는 수필문학에 전념하기 위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앉아 회사의 회의실을 회장실 겸 서재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명색이 관광회사의 회의실 서가에는 기업에 관한 참고 서지보다는 더 많은 문학 서적이 즐비하게 차지하고 있던 기관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이 회의실에서 수필문우회의 전통행사인 월례합평회가 매월 넷째 토요일(지금은 셋째 토요일) 그가 작고(91년)할 때까지 열렸다. 합평회가 끝나면 근처의 식당에서 조촐한 회식을 갖게 마련인데, 술을 좋아하는 범촌은 곧잘 회원 중의 주당酒黨을 부추겨 비어 홀 같은데 2차로 옮겨가서 소주나 맥주잔을 나누며 담소하기를 즐기곤 했다. 정과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성품이 좋아하는 술로 작별의 아쉬움을 갈무리하는 범촌다운 행각이기도 했다.

이런 범촌이 수필을 대하는 자세는 누구보다도 엄격하고 철저했다. 동인의 작품을 합평하는 자리에서는 친소를 불문하고 흠집을 바로집어 서슬 푸른 논평을 서슴지 않았다. 따라서 자신이 생산하는 작품에도 이 엄격성과 철저함이 어김없이 적용되는 것이 범촌 수필의 특성이기도 하다. 구구절절 철저한 퇴고와 탁마의 품이 깃든 깔축없는 문장, 군더더기나 협작적인 요소가 철저히 배제된 깔끔한 구성, 그리고 결코 기교奇巧한 발상이나 세속적인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엄정한 주제 의식이 마치 품질 보증의 구격품처럼 갖추어진 것이 범촌 수필이다. 중등교과서에 그의 수필 <가풍>이 채록된 것은 우연의 사실이 아닐 것이다.

이제 그가 남긴 수필 두 편을 골라 다시 읽으며 수필문우회의 ‘태평로 시절’과 함께 범촌의 그리운 얼굴을 되새겨 본다.

 

 

흙 한 줌 덮어 주고

  

더운 정 남겨 두고

몸은 식어 누웠구려

흙 한 줌 덮어 주고

돌아서는 허허로움

3월에 매화 피거들랑

다시 한 잔 하자더니

그는 가고 없는데, 연전에 그가 보내어준 매화나무는 묵은 가지마다에 볼록볼록한 꽃망울들을 수없이 매달고 있다.

이것들이 철없이 다투어 피고, 암향暗香조차 뜰에 가득할 3월이 오면 허허한 내 마음을 가누기가 매우 어려울 것 같다.

1957년 봄, 부산 원예고등학교 온실에서 그를 처음 만났었다.

그는 작업복 차림으로 화분갈이를 하고 있었다.

온실 고원雇員인줄 알고 새로 부임한 국어 교사라며 악수를 청했더니, 흙 묻은 손을 툭툭 털다가 그래도 안 되겠다는 듯이 바짓가랑이에다 대고 썩썩 문지르고서야 손을 내밀었다. 일군 손이라 늘 이 모양이라고 웃으며 말하던 그에게서 나는 물씬한 인간미를 느꼈다. 그는 화훼花卉 담당 교사였다.

그와 나는 진작 친숙해졌다. 우리는 5 년여를 한 학교에서 함께 일했다. 그러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서 학교를 그만두었지만. 그 후로도 그는 서울 근교에서 조촐한 화훼 농장을 경영하게 되었고 나도 서울에서 조그마한 회사를 경영하게 되어, 우리 사이의 교분은 그런대로 쭉 지속되었다.

20 년도 넘어 되는 그 사이에, 그는 내게 꽃에 대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일년초에서 다육식물, 열대수, 분재盆栽, 동양란에 이르기까지 나의 꽃에 대한 지식은 거의가 그로부터 얻어진 것이다.

내가 배운 것은 꽃 뿐만도 아니었다. 꽃보다도 더 귀한, 맑고 고운 사람의 마음을 그를 통해서 보고 느끼고 배우고 했다.

다른 사람을 나쁘게 말할 것 같으면 그럴 리가 있겠느냐는 것이 언제나 정해진 그의 대답이었다.

그도 남들만큼 인생을 속으면서 살았겠지만 스스로 속으며 산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토지 매매로 속아서 손해 본 일이 있었는데도 그는 자신의 법률 지식의 빈곤을 나무라는 데 그쳤다.

그는 자신을 전혀 자랑할 줄 모르는 위인이었다. 언제나 변함없이 자신을 아주 범상凡常한 존재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잘난 점, 장한 점을 곧이곧대로 시인하고, 그런 점을 충심으로 좋아했었다.

그는 꽃을 피워서 파는 일에 종사하고 있었지만 장사는 서툴렀다. 안된다고 우기다가도 상대가 거듭 조르면 끝내는 양보하고 마는 성품이었다.

정녕 흙이 지닌 후더움과 꽃이 지닌 고움을 그대로 그 마음에 지니고 한평생을 살다가 사람이었다.

생전에도, 문득 그가 생각나는 날이 많았지만 나는 자주 그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갈 때마다 정원수 묘목이나 화분이다를 들고 나와서 가져가라 하고, 손수 담근 과실주를 취도록 권하고, 그러고도 미흡해서 병에 술을 담아 억지로 안겨주곤 했었다.

무엇이건 자꾸 주고 싶어 하는 그 마음 때문에 자주 찾아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오늘도 뜰에 나와 내 키만큼이나 자란 그 매화나무를 보고 섰다. 꽃망울이 하루가 다르게 도톰해지고 있다. 매화 필 무렵 다시 만나 한 잔 하자던

그의 생전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것들이 피어나면 그 중 탐스럽게 핀 가지 하나 꺾어 들고, 술 한 병 사서 들고, 그의 묘소로 그를 찾아가 보리라 마음에 다짐한다.

비문碑文을 내게 맡겨라 이르고 눈을 감았다기에 발인發靷 전날 밤, 이슥토록 앉아서 그것을 지어 보내었는데, 지금쯤은 비석에 새겨져서 그의 묘 옆에 쓸쓸히 서 있을 것이다.

―『아내의 座』중에서

 

 

좋은 모임

 

50년을 살아오면서 여러 모임에 참가해 보았다. 사람마다가 개성이 다르듯이 모임도 그 목적과 구성원에 따라 저마다가 다른 성격을 지닌다.

학동學童 시절의 자연 발생적인 클럽은 대체로 정의 모임이기 쉽다.

또렷한 까닭을 집어내기는 힘들지만 그런대로 좋아들 하는 끼리끼리가 얼리게 마련이다. 매일 보는 얼굴들인데도 만날 때마다 반갑다. 한 주일에 단 하루 끼인 휴일이 지루해서 찾아가고 찾아오고들 한다.

때로는 시답잖은 일로 틈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다지 오래 가지는 않는다. 허전해서 견딜 수 없어지고, 뉘우치게 되고, 마침내는 어느 한 쪽이 말을 붙이게 되고, 그런 연후면 더한 짙음으로 밀착된다.

청년기의 모임에는 다른 요소가 끼어든다. 무엇을 하자는 모임인가를 따지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목적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뜻이 같은 자들끼리의 모임이 되기 쉽다. 청정한 기상이 모임에 넘치고 기개들이 등등하다. 뜻이 다른 무리가 같잖게 보이기 일쑤고, 그만큼 배타적이기 쉽지만 역시 짙은 정은 뜻과 병존竝存한다. 그래서 이 무렵에 사귄 벗들이 두고두고 오래 간다.

생활인이 되고, 때문에 유형 ․ 무형의 속박을 더 받게 되는 성인층의 모임에는 그 밖의, 다른 요소가 하나 더 끼어든다. 정신적 물질적 이해의 타산이 그것이다. 그렇다고 정과 뜻이 반드시 밀려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성격이 다양해지고, 인위적 측면이 많아지고, 타의에 의한 것이 되기도 하고 해서 순수성이 줄어든다. 이런 모임일수록 <우리> 의식이 퇴색하게 되고, 엄전히 사린 뒤안에 <에고>가 성하기 마련이다. 지위와 자산과 지식의 있음을 은근히 뽐내려는 무리가 있고, 묘한 경쟁의식이 바닥에 깔리고 하면 정과 뜻은 자연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이런 모임의 뒷맛은 정해놓고 개운치가 않다.

언제부터인지 꼭이는 알 수 없으나, 나에게 모임 기피증세가 생긴 것도, 거듭된 경험에 의한 이 개운찮은 뒷맛 때문이다. 그래서 사업상의 모임이거나 무슨 거창한 명분이 내걸린 모임 같은 데는 거의 대역을 보내거나 아니면 아주 불참하고 만다. 성인이면 대다수가 그런 모임에 잘 적응하는데, 아무래도 나는 아직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 덜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꽤 진지하게 해 보기도 한다.

그런데도,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모일 날을 기다리게 되는 모임이 있다. 조용한 눈으로 자아와 둘레를 관조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덤비지 않고, 내세우지 않고, 깔보지 않고, 함부로는 잘 우러르지도 않고, 허상(虛像)에 집착하거나 동요되지도 않고, 있는 것을 그대로 귀히 볼 줄 아는 사람들이거나, 아니라도 그렇게 살기를 바라며 애쓰는 사람들.

수필을 통하여 자아를 돌아보고, 자아의 정수精髓로 수필을 빚으며 살아가거나 살아가려는 사람들. 맑음을 취하며 살다가 나이가 들었지만 마음은 매양 소동小童들의 그것과 같은 사람들. 진정한 자유인들. 나는 그들의 틈새기에 끼여서 마냥 즐겁다. 이 모임에는 시기도 타산도 자리다툼도 없다. 오직 뜻과 정이 있을 뿐이다. 이 모임에서는 공과功過가 한 가지로 대접받는다. 언제나 동기가 순수하기 때문이다.

수필문학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이런 모임을 위해서 시간과 정력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은 그대로가 바로 복이요 기쁨이요 고마움이다.

누가 인생을 일컬어 형극의 길이라고 하였던가? 찾아보면 사람 사는 길의 그 노방路傍에도 맑고 곱고 귀한 삶의 조각들이 무수히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