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과 곁다리

 

                                                                                       강호형

“개골개골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이런 동요를 부르던 시절에는 개구리들이 꽤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생물학자들은 이 동요를 듣는 순간 실소를 금치 못했을 것이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그것은 동요 가사처럼 그렇게 단란한 가족 합창이 아니라 수컷들이 자기 종자를 받아줄 짝을 부르는 단장의 세레나데라는 것이다. 그러니 ‘아들, 손자--’라면 모를까, 며느리까지 모여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늙수그레한 할아비 개구리가 아들, 손자에 질세라 목울대를 부풀려가며 짝을 부르고 있을 꼬락서니를 상상하면 이제는 내가 먼저 실소를 감출 수가 없다. 게다가 암캐구리들은, 목청이 큰 수컷이라야 몸집이 크고 힘도 세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곁으로만 모여든다니, 그래 봐야 늙은 암캐구리 하나 얼씬하지 않을 것이 뻔한데도 그렇게 밤을 새우고 았을 할아비 개구리에게는, 내가 비록 직립보행의 영장류라고는 하나 동병상련의 정마저 금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풍채 좋고 힘까지 좋아 종자가 실한 신랑의 씨받이가 되어 우량아 낳겠다는 암캐구리들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것 또한 천부의 본능이 아니랴.

개구리들의 이런 생태를 연구해 낸 생물학자는, 목청 좋게 울어대는 개구리를 ‘소리꾼(caller), 조용히 숨어 있다가 욕심을 채우는 개구리는 곁다리(satellite)로 부른다고 한다. 조물주가 동물이나 식물이나, 인간이나 짐승이나, 무릇 생명을 가진 것들은 종자를 퍼뜨려야 직성이 풀리도록 점지한 것은 현명한 처사인 듯하지만, 애당초 짝을 만날 만한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태어난 ’곁다리‘ 들에게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곁다리라고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볼품없는 몸집에 목청마저 시원찮은 수캐구리들일 망정 종족을 보존하려는 의지만은 가상다. 목청 좋은 개구리들 근처에 조용히 숨어 있다가 몰려드는 암캐구리 등에 냉큼 올라타서 천부의 직성을 풀고야 만다는 것이다. 원치도 않은 놈의 씨를 받아 기를 수밖에 없는 암캐구리로서는 처지야 딱하지만 곁다리들에게까지 그런 집념, 그런 꾀를 부여하신 조물주를 원망할 밖에.

우리나라의 농촌 총각들이 장가들기가 어려워진지는 오래다. 국산품의 질이 좋아져 값이 오르자 값 싼 외국 상품이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모든 상품에 산지 표시를 의무화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처녀들까지 귀하신 몸이 된 것은 여간 난처한 일이 아니다. 아들 좋아하는 풍조에다가 뱃속에 든 아이의 성별을 활동사진 들여다보듯 하는 기술 때문에 남여의 성비가 깨진것도 원인이지만 처녀들이 도회지의 ‘목청 좋은 소리꾼’들 곁으로만 모여들거나, ‘골드 미스’ ‘커리어 우먼’을 자처하며 아예 결혼을 거부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농촌 총각이라고 목청 작은 개구리처럼 외모나 덕성이 모자라지 않고, 가통에 흠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한반도에서는 아무리 심호흡을 해가며 목청을 뽑아 봐도 다가오는 처녀가 없어 동남아로 방향을 틀었다. 과연 수만 명의 외국 처녀들이 몰려들어, 마침내 단일민족 재고론이 나오게까지 풍속이 변했다. 그 중에는 말썽을 일으키는 커플도 적지 않다지만, 국산 처녀 총각 커플이라고 다 탈 없이 사는 세상도 아니니 피장파장이다.

이렇듯 많은 외국 처녀들이 시집을 왔건만, 아직도 거리 곳곳에 국제 결혼할 총각을 부르는 광고가 걸려있다. 이쯤 되면 한국 총각들 등쌀에 장가 못 가는 동남아 총각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목청 작은 곁다리들처럼 길목을 지키다가 ‘덥석’ 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남의 일 같지 않다. 귀한 처녀 데려온 대신 곁다리 신세나 물려주는 셈이니 여간 미안한 노릇이 아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요즘 북한 여성들이 목숨을 걸고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중국 사내들에게 몸을 파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부터 남남 북녀라고 했다. 게다가 북쪽에는 남여의 성비가 남쪽과는 반대라고 한다. 북한 처녀들 귀에는 중국 사내들보다 대한민국 사내들의 목청이 훨씬 우렁차게 들릴 터이지만 휴전선을 넘기보다 두만강, 압록강 건너기가 쉬우니 남남과 북녀에게 안겨진 공통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남과 북이 사돈을 맺을 길만 트인다면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 될 것이니 통일의 단초가 거기에서 있을 법도 하다.

봄 날씨가 초여름 같다. 머지 않아 ‘소리꾼’들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이번 여름에는 그 소리가 더 애처로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