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과거보다 하나의 꿈

 

                                                                                           구양근

나는 이번에 지중해 3개국을 여행하고 돌아 왔다.

그리스에서는 저녁에 디오니소스라는 카페에서 아내와 칵테일을 한잔씩 앞에 놓고 맞은편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유네스코 보물 1호인 파르테논 신전을 감상하고 있었다. 아테네 시내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게 조명장치를 설치해서 참으로 아름답고 장엄하기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낮에 그곳을 답사했기 때문에 신전에 얽힌 역사적 사실과 그 규모의 엄청남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에기나 섬의 아페아 신전에서는 풍상에 서린 낡은 기둥들 사이로 거닐기도 하고, 그 쪽빛 하늘과 바닷물 색깔에 취해 아내와 단둘이서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기도 하였다. 다신교인 그리스는 그런 보물급 신전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나는 거기에서 노파심이 발동했다. 저들이 저런 문화유산만 너무 중시하다가 과거지향적인 국민으로 변하면 어찌할까 하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차라리 그런 유산이 없느니만 못하다. 과거에만 집착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너무 중시하다보면 대개의 경우 이익보다 손해가 더 많다. 과거지향적인 삶은 발전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나라나 개인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항상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래서 나는 미래가 과거보다 열 배쯤 중요하다고 일단 가정해 본다.

이집트 여행은 나의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들이 그 찬란한 이집트 문명을 이루었던 국민 맞는가?”

불결한 거리, 남루한 옷차림들, 단 돈 1달러에 무엇이나 주겠다고 물품을 내미는 검은 손들, 이들이 과연 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만들고, 룩소의 웅대무비한 문명을 이룬 그 위대한 민족의 후예란 말인가? 인간이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람세스 2세의 치적을 기리는 엄청난 돌기둥들. 불가사의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하늘을 치솟은 하나의 돌기둥 오벨리스크. 왕들의 계곡 지하에 만들어진 수많은 궁전들. 그 문화를 이룬 후손들이 왜 이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전락해 버렸는가.

터키는 더욱 더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있었다. 오스만 터키 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의 아야소피아 성당이며, 6개의 첨탑으로 가장 많은 첨탑을 소유하고 있다는 블루모스크 사원을 보면서는 그 호화로움에 차라리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가는 곳마다 연필심 같기도 하고 로켓포 같기도 한, 이슬람 사원의 첨탑尖塔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터키 건국의 아버지라는 케말 파샤가 마지막 대통령 궁으로 사용하였다는 돌마바흐체 궁전의 호화로움은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내가 전에 보고 놀란 베르사이유 궁전이나 스페인 궁전보다 더 호화로운 것 같았다. 술탄(왕)의 2층 집무실은 인간이 사는, 지상에서 가장 호화로운 곳이었다. 금 14톤을 녹여서 왕궁을 장식하였다니 4톤 트럭 3대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금을 녹인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이 기증하였다는 4.5톤의 샹들리에는 그 장엄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카펫은 어떤 인력으로 그렇게 넓고 두꺼운 것을 짤 수 있었는지 호화로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한 궁전 건물 안에 광장만 43개나 되었다.

그들 세 나라는 또 각각 그들의 고유한 문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도 자랑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 문화가 있고 그런 고유문자가 있으니 어떻단 말인가? 자기들을 완상물玩賞物로 알고 찾아드는 관광객의 몇 푼 안 되는 관광수입으로 만족할 것인가. 21세기 세상은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달리는데 그들은 나귀를 타고 또는 걸어서 노래 부르며 과거의 영광에 안주할 셈인가.

너무 풍부한 문화유산은 오히려 그 나라 발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생각을 해보았다. 개인도, 너무 부유한 집안 출신에게 부(富)란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음을 우리가 많이 보아온 터다. 몽골과 미국이 그리스, 이집트, 터키처럼 풍부한 문화유산이 있었다면 오히려 발전의 걸림돌이 되었을 것 같다.

몽골에 무슨 문화유산이 있었던가. 겔(Ger)을 치고 살다가 계절이 바뀌면 옮겨 다니는 유목민에게는 아무런 문화재산이 없었다.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세계를 다 집어삼키겠다는 힘이 나왔을 수 있다. 미국에 무슨 문화유산이 있는가. 그들은 문화적으로 자랑할 것이 없었기에 현재와 미래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지 않았을까. 지금부터 마음껏 문화를 만들고 세계를 쥐락펴락하며 잘 살면 되는 것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으로 이어지는 세 대통령이 모두 상고 출신이다. 그들은 가난해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갈 돈도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물려 받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더 가볍게 바닥을 치고 솟구칠 수 있었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이 부잣집 아들이나 권력가의 아들로 태어났다면 대통령이 되는 꿈을 꾸지는 못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