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凍土에 핀 사과 꽃

 

                                                                                       남민정

백야白夜, 그 속을 기차는 달린다. 자정에 모스크바를 떠난 밤기차 꾸페는 장장 여섯 시간 이상 자작나무 숲을 뚫고 달리고 있는 중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자작나무 숲은 하늘을 찌르고 빽빽한 나무들은 한 치의 여유도 없이 대지를 뒤 덮고 있다.

누가 뭐래도 러시아는 대국이었다. 그것은 역사 속의 왕들이 여름과 겨울 별장에 붙여놓은 금덩어리 때문도 아니고, 은행 하나씩을 문 닫게 하면서 만들어 놓았다는 여러 성당들의 높은 금탑 때문도 아니다. 그 넓은 대지에 꽉 들어 찬 자작나무 하나만으로도 그곳은 희망의 나라였다.

나는 침대에 기대어 스쳐 지나가는 자작나무 숲을 혼자 바라보며 앉아 있다. 기차는 낡고 화장실 물은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랴. 대낮 같이 밝은 밤에 자작나무 숲 그림을 영상처럼 보며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축복이다.

이런 때는 나처럼 잠들지 못하고 창가에 앉아 있는 사람 있다면 그를 불러 무미, 무취, 무색이라는 러시아의 술 보드카라도 같이 마시고 싶다. 낮에 한 병 사서 가방 속에 넣은 것을 찾아 홀로라도 마시고 싶지만 좁은 침대 밑에 쑤셔 넣은 여행 가방은 잠든 동행들이 깰까봐 꺼낼 수가 없어 아쉽다.

잠깐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자작나무 숲은 사라지고 이제는 새벽안개 덮인 늪과 그 늪가에 사과 꽃들이 만발한 곳을 기차가 달리고 있었다. 동토에 핀 분홍빛 사과 꽃!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절경이다. 서서 더 넓은 풍경을 보기 위해 기차의 복도로 나갔다. 이미 몇몇 승객들이 넓은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구름처럼 피어난 사과 꽃들을 보고 있었다. 그럼 러시아에도 꽃피는 봄이 있었던가? 그런데 나는 왜 러시아는 눈만 내리는 겨울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 채 곳곳에 서 있는 둥치 큰 사과나무들은 백년은 훨씬 넘어 보이는 것도 있다. 기차가 달리고 달려가도 사과 꽃들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다.

1917년 10월 혁명에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비밀경찰들이 눈 부릅뜨고 살벌하게 감시하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꿈을 버리지 않고 사과나무를 심고 나무들은 자라서 봄이 오면 저렇게 꽃을 피우고 있었나 보다. 겨울에 페치카에 넣으면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는 자작나무들도 그 불안한 세월 속에서도 얼어붙은 대지에 큰 키를 곧게 세우며 저렇게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절 러시아에는 루쉰의 소설 ‘아Q정전’의 주인공 아Q처럼 가만히 있어도 혁명군을 도왔다고 죄를 묻고 시민군을 돕지 않았다고 쫓기면서 자기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숨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기차에서 보이는 마당에 사과 꽃이 피어 있는 한 작은 벽돌집, 그 집에는 혹시 세월이 흘러 세상이 변한 것도 모르고 숨어사는 어느 아Q가 자작나무 활성탄에 감자로 만든 보드카를 거르며 아직도 조국의 봄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싶어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어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생가에 갔을 때도 그랬다. 숲으로 쌓여있는 그의 집에서 그는 얼마나 불안한 나날을 살았을까 생각하며 마룻바닥 어디에 비밀 문이라도 만들어 놓고 지냈나 하여 내내 바닥을 둘러보았다. 그가 치던 피아노와 식탁 위에 놓여있는 찻잔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벽에 걸린 그의 사진을 바라보면서 이념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그와 가까이 지내던 지식인들은 모두 해외로 망명 떠난 적막한 세월 속에서도 조국을 떠남은 내게 죽음을 의미한다며 따라가지 않고 감시당하며 깊은 병으로 힘들게 살아야 했던 그에게 두려움과 외로움은 얼마나 컸으랴, 키 큰 이름 모를 나무들이 가득한 그의 집 뒤 나무 의자에 앉아 있으니 그래도 그는 멋지게 살다 갔노라고 지나가는 바람이 살랑이며 나에게 전해 주는 듯했다. 그러나 이제는 러시아에서도 정치적으로도 해빙을 맞아 동토가 녹아내리는 시대가 왔으니 사람들은 숨어서 사과 꽃 피는 봄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자작나무 숲에서 늪가에서 피어나는 새벽안개 속에서 붉은 벽돌 집 벽난로 옆에서 그리고 백야의 그 밝은 밤 속에서 사람들은 양보하며 화해한 세월의 봄을 반기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밤 새워 달려와 닿은 곳은 페테르부르크였다, 그곳에는 자작나무도 사과 꽃도 보이지 않았다. 유월인데 아직도 두꺼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거리를 거닐고 있다.

러시아에는 유난히 성당이 많다. 봄날에 그 많은 성당의 종루에서 함께 종소리가 울리면 붉은 광장을 지나 멀리멀리 자작나무 숲까지 그리고 늪가의 사과나무들에게도 퍼질 것 같다.

그런 날에 하늘 위에서는 닥터 지바고와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카추샤가 같이 모여 파스테르나크와 톨스토이도 부르고 이반 데니소비치와 함께 솔제니친도 불러 얼마 전에 세상 떠나 온 그들의 절친한 친구였던 로스트로포비치의 첼로 반주로 폴카 춤을 추며 봄 잔치를 하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누가 역사는 세월 따라 사라진다 했던가, 역사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잊어질 뿐이라고 러시아를 통해 다시 알게 된 나는 내일 이곳을 떠난다.

 

 

≪예술세계≫ 등단(1989년)

수필집 ≪푸른 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