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산이 눕는 바람에

 

                                                                                        김희재

지난 여름이었다. 서울에서 차를 몰고 온 여고 동창들을 우리 집 주차장에서 만났다. 이제부터는 내가 운전수가 되어 마음이 끌리는 대로 가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 일기예보에서는 오후부터 전남 지방에 집중호우가 내릴 것이라고 계속 경고를 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순천으로 길을 잡았다. 남도 한정식을 제대로 하는 집을 목적지로 놓고 고속도로를 달려갔다.

담양에서 순천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산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겹겹이 쌓여 있는 산 중턱에 구름이 잔뜩 걸려 있는 것이 마치 산수화를 보는 것 같았다. 평일이어서 길에 차도 별로 없고 낮은 구름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니 달리기엔 딱 안성맞춤이었다. 우리의 일상 탈출은 별다른 계획도 기대도 없이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생각보다 아주 빨리 순천에 도착을 해서 별로 늦지 않은 점심을 먹게 되었다. 허름해서 오히려 정겨운 식당에 예약도 안하고 들이닥쳤지만 다행히 방이 있었다. 갖가지 곰삭은 젓갈과 나물과 밑반찬들이 수십 가지 놓인 밥상을 받으니 환호성이 절로 나왔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가는 여행보다 더 신나는 것이 있을까 싶었다. 관광지에 가서 기념사진 찍는 것도 별로 재미 없어진지 오래고, 그렇다고 꽃이 흐드러지게 필 계절도 아닌 때에 떠났으니 그저 여유롭게 남도 음식이나 실컷 먹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았다. 워낙 입에 착착 감기게 맛있기로 유명한 남도 음식이 아닌가!

밥을 다 먹고 난 후에 음식점 주인에게 송광사 가는 길을 물었다. 아줌마는 관광을 온 길이면 고속도로를 타지 말고 호수를 끼고 가는 국도로 가라고 권했다. 가는 길에 선암사에 들러 긴 산책로를 따라 산책을 하며 머리를 식히는 것도 좋다고 추천하며 송광사가 남성적인 절이라면 선암사는 여성적이라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우리는 그녀가 일러준 대로 길을 잡았다.

선암사 입구에 다다를 즈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산책로를 반쯤 올라가는데 마구 쏟아졌다. 일기예보대로 집중호우였다. 우산을 써도 아무 소용이 없게 온 사방에서 빗물이 쳐들어왔다. 순식간에 불어난 계곡의 물이 콸콸 소리를 내는 바람에 산사에는 고즈넉한 정적 대신 물소리가 요란했다.

선암사는 덧칠을 하지 않은 고아한 기품을 간직하고 있었다. 오래된 목조 건물이 비를 맞아 그런지 더욱 고색창연하게 보였다. 단청의 색감도 오래 묵은 그리움처럼 낡고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처연한 당당함을 담고 있었다. 깔끔하게 비질을 한 것처럼 잡풀이 하나도 없는 마당에 드문드문 자리를 잡고 있는 배롱나무들은 마치 각자 자기의 영역을 고수하는 비구니들처럼 단정했다. 선암사는 마치 자존심이 강하고 절개가 곧은 여인네처럼 단아한 모습이었다. 정말 여성적인 절이라 부를 만했다.

선암사를 들러 송광사 입구에 도착하니 어느새 여섯시가 넘었다. 비는 그야말로 작심을 한 듯 정신없이 쏟아졌다. 우리는 두어 집을 돌아다닌 끝에 마음에 드는 크고 깨끗한 방을 구해 놓고 그 비를 무릅쓰고 송광사로 향했다.

정말로 지독한 비였다. 우산을 쓰긴 했지만 바지는 물론 얼굴까지 다 젖었다. 걸을 때마다 신발에서 철커덕 철커덕 물소리가 나고 바지는 다리에 자꾸 감겼다. 날이 춥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하기야 말복더위 한창인 오뉴월 염천이었으니 오히려 덥지 않아 좋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겠다.

송광사 산문 앞에 예상 외로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워낙 거센 빗줄기 때문에 그런지 사람들은 모두 법고와 목어가 놓인 누각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우리는 누각 밑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장대비 속에 텅 비어버린 마당을 가로질러 계단 위에 있는 대웅전 앞으로 갔다. 대웅전 안에는 마침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고 진한 밤색 방석 수십 개가 바둑판처럼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황금빛 불상 때문인지 환한 조명 때문인지 모르지만 대웅전 안은 온통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문 저문 기웃거리며 안을 들여다보는 폼이 먼발치에서도 이방인으로 보였는지 어떤 사내가 황급히 마당을 가로질러 달려와서 예불을 구경하려면 사람들이 모여 있는 누각 아래로 내려가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순순히 발길을 돌리는데 친구는 어쩔 요량인지 건물 귀퉁이에 붙은 옆문으로 냉큼 들어가 대웅전 구석에 쪼그리고 자리를 잡았다.

친구를 그 안에 두고 그냥 가기도 그렇고 대웅전에 들어가 예불을 드리기도 내키지 않아서 머뭇거리고 섰는데 갑자기 미친바람 한 줄기가 온 산을 휩쓸며 불어 닥쳤다. 빗물이 온 얼굴에 확 뿌려졌다. 나는 샤워꼭지 물을 맞은 것처럼 눈을 뜰 수가 없어서 벽에 머리를 기대고 몸을 웅크렸다.

그때였다. 쏴아~ 신음소리 같은 한숨소리를 크게 내면서 대웅전 앞에 떡 버티고 있던 산이 눕기 시작했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꼿꼿하게 서 있던 나무들이 하나같이 90도 각도로 휘어지며 돌아눕는 것이었다.

때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누각 위에서 장삼을 잘 차려 입은 승려들이 법고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누웠던 산이 떨치고 일어섰다. 드러누웠던 산이 다시 일어나는 모습은 더 장관이었다. 한껏 머금었던 물을 푸우 ~ 하고 뱉어내는 양 이번에는 안개 같은 물보라가 확 일었다. 누각 위의 승려들이 또 법고를 치고 목어를 두들겼다.

그 소리는 이미 현실의 것이 아니었다. 효과음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풍경 속에 녹아들어 나도 내가 아니고 친구도 그녀가 아니었다. 우리는 무엇에 홀린 듯이 대웅전 귀퉁이로 스며들어가 친구가 쪼그리고 앉아 있는 옆에 자리를 잡았다. 온 몸에서 물이 줄줄 흐르는 홀딱 젖은 차림새 그대로….

잠시 후, 한 떼의 승려들이 황금색 법의에 밤색 장삼을 걸치고 대웅전으로 들어왔다. 그들이 다 들어와서 정해진 방석 위에 단정히 앉아 대웅전 안을 가득 채우자 종소리가 울리고 승려들의 청아한 합창이 울려 퍼졌다. 예불이 시작되었다

원래 송광사는 학승이 많기로 유명해서 승보사찰로 불리는 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예불 드리는 것을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들이 부르는 것이 어떤 내용의 무슨 노래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지만 그리 귀에 거슬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 소리는 끊어질듯 이어지고 이어질듯 끊어지며 계속되었다.

예불 의식이 골수 기독교 신자인 내게는 너무도 낯설고 어색했다. 하지만 무교인 친구는 너무도 진지하게 합장하고 그 소리에 맞추어 절을 하고 또 했다. 천주교 신자인 다른 친구도 단정하게 좌정을 하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얼굴이 마치 해탈을 간구하는 구도자처럼 절실하고도 경건했다.

도대체 저들은 지금 이 낯선 절에서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가?

소망을 이루고픈 것인가,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비우고 싶은 것인가.

그들 마음속에 품은 소원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 모습에서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마음은 아직도 여고생 같은데 우리는 이미 젊지 않구나. 어느새 살면서 겪은 것이 많아 내려놓아야 할 것도 많아진 나이가 되었네. 울컥 목으로 뜨거운 것이 올라오며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부터는 욕망이 원하는 것을 채우기에 급급하기 보다는 우리 삶에 여백을 두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우는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空수手래來 공空수手거去.

올 때 빈손이었듯이 갈 때도 다 비우고 가는 것이 마땅한 일임을 받아들여야 노추老醜를 면할 수 있을게다. 이 깨달음을 얻으려고 우리는 그 빗길을 무릅쓰고 마치 거역할 수 없는 운명에 이끌리듯이 이 자리에까지 온 것일까?

깊은 한숨을 쉬는 것인지 소리 죽여 흐느끼는 것인지 모르지만 엎드린 친구의 등이 가만히 흔들렸다. 내 뺨 위에도 더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예불 도중에 슬그머니 빠져나와 숙소로 가면서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의 인기척만을 느끼며 부지런히 걸었다. 계곡의 물이 부서져 내리는 소리에 묻혀서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그 시끄러움 속에 흐르는 적막감을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적막감 속에 꽉 채워져 있던 충만함은 또 무엇에다 비유할 수 있을까.

우리의 하산 길엔 이미 짙은 어둠이 덮였고 집중호우는 여전히 퍼붓고 있었다.

 

 

≪계간수필≫로 등단(’98년), 계수 회원

현) 한남대학교, 육군대학교 한국어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