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밑 친구들

 

                                                                                        김 광

여행이라는 것이 여행지를 미리 정해놓고 길을 뜨는 게 원칙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대략 방향만 정해 놓고 차를 몰다가 경치 좋은 곳이 눈에 띄면 그곳이 여행지가 되어버릴 때도 있는데, 이 경우는 주로 알려지지 않은 오지奧地를 가고자할 때 선택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또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예정에 없는 여정을 추가하기도 한다.

작년 여름 남해안을 돌고 오다 시골집에 가기 위해 전남 화순군의 동북면 쪽을 지나올 때다. 국도에 걸린 파란 하늘을 뒤로하고 눈부시게 피어 있는 백일홍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국도를 벗어난 일이 있다. 비포장 길을 따라 한참을 갔을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몇 가구의 초가가 게딱지처럼 엎어진 마을이 나왔다. 난 마을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사진 가방만 비껴 맨 채 한산해 보이는 마을을 도둑처럼 스며들었다.

그런데 마을에는 사람들이 보이질 않았다. 길가에 정갈하게 심어진 배롱나무랑 능소화가 어우러진 모습들을 보면, 제법 북적댈 것도 같은데 마을은 의외로 조용했다. 망설이다 녹이 슬긴 했지만 철 대문이 달려있는 마을 중간의 어느 집으로 들어갔다. “계십니까?” 몇 번이고 헛기침을 해댔지만 집 안은 조용했고 살이 토실토실 오른 누런 개가 마당 가운데서 꼬리를 흔들 뿐, 손때 묻어 윤이 나는 토방에서 한여름 햇살만이 지글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묘한 기분이 들어 막 돌아서는데 인기척이 들려왔다. “누구신게라?” 돌아보니 족히 팔십은 넘어 보이는 노파가 머리에 수건을 얹고 부엌 쪽에서 걸어 나왔다. “할머니! 말씀 좀 물을게요. 광주 가는 길에 마을 구경 좀 할라고 들어왔어요. 근디 사람들이 통 안 보이네요. 마을 분들 다 어디 가셨다요?” 나도 고향에 오니 슬슬 사투리가 섞여 나왔다. “장날이라 다 읍에들 갔제, 요 앞 다리 밑에 가면 몇은 돌아와 있을 건디” “아 예” 나는 나와 다리로 향했다.

마을 앞 다리 밑은 제법 많은 양의 물이 흐르고 있었고, 또 의외로 맑았다. 그리 많진 않지만 군데군데 사람들이 보였다. 물을 동동거리는 아이들도, 허리를 담구고 희게 웃는 어른들도 있었다. 나는 얼른 사진기를 꺼내 셔터부터 눌렀다. 그들의 환한 웃음은 금방 나를 유년의 고향마을로 데려다 주었다. 우린 그때 여름이면 런닝셔츠 하나만 무릎 밑까지 당겨 입고 마을 뒷산에 있는 골짜기로 들어가 해질 때까지 물 속에서 놀다가 배가 고파지면 새파란 입술을 덜덜거리며 다시 옷을 걸치고 집에 돌아오곤 하였다.

그러고 보니 다리 밑은 마을 사람들이 여름이면 더위를 피하는 피서지고 마을회관이었다. 상류 쪽으로 올라가면 여자들이 이용하는 그늘 깊은 곳이 나오고, 거기서 더 올라가면 물고기 잡는 곳도 있단다. 고기 잡는 모습이 보고 싶어 물놀이하는 꼬마 애의 손을 이끌고 안내를 부탁했다. 어깨의 사진 가방이 신기했던지 아이는 군말 없이 앞장섰다. 고기 잡는 곳에 가 보니 사오십 대의 중년들 몇몇이 웅성대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예 거제도 다녀오다가 고향 좀 들릴라고 광주 가던 길인디 구경 나왔습니다.” “아 그래요? 뭐 볼꺼이나 있간디요 오셨응께 고기 잡으면 매운탕에 막걸리나 한잔 하쇼.” 언제 들어도 정다운 내 고향 말이 막 쏟아졌다.

고향은 언제나 정답다. 이쪽에만 오면 괜히 으쓱해지고 바람 냄새부터가 틀리다. 그들의 얼굴에는 도시인들이 가지고 있는 그늘이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 때론 남을 속여야 하는 비정함도, 상대를 딛고 일어섰다는 교만함도 그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다. 대처에서 종일 내내 버둥거리며 살다보니 몸 곳곳에 배어있는 암울한 색채가 그들에게는 없는 것이다.

날만 새면 종종걸음으로 뛰어나가 전철역 앞에서 토스트 한 조각으로 아침을 때우고, 짐짝처럼 굴러서 겨우 출근을 하고나면 그때부턴 또 전쟁터… 어둠이 찾아와야만 비로소 노곤한 육신을 퇴근길 포장집에서 달래는 도회인들은 문명의 수혜자일지는 모르지만, 사람들 사이에 이어져 있는 끈을 놓쳐버린 상실자요 고독자인 셈이다.

물론 시골이라고 다 긍정적인 모습만 있는 건 아니다. 요즘 시골에는 젊은 사람들이 없다. 이농離農 현상 때문에 시골도 옛날 같지만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날 내가 본 모습들은 분명 어릴 적 보았던 고향의 모습이었고, 잊혀져가는 시골의 본 모습이었다.

고기 잡는 모습은 더 일품이었다. 플라스틱으로 된 막걸리 병의 바닥을 못으로 구멍을 몇 개 뚫은 뒤 된장을 잘게 뭉쳐 병 안에 넣고 물 흐르는 방향으로 놓으면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던 물고기가 된장냄새를 맡고 병 안에 들어가 포로로 잡히는 것이다. 뭐가 잡히겠나 싶어 반신반의했지만 이름도 모르는 별의 별 잔챙이가 다 잡혔다. 단순한 고기잡이 하나에도 그들의 순박성이 잘 드러나 보였다. 어려서 동네 형들을 따라다니며 도랑을 막아 고무신짝에 물고기를 가둬 올리던 생각이 나 한참을 방싯거리며 바라보았다. 낚시나 투망을 이용하지 않고도 즐거움을 한 보따리 건져 올리는 그들이야말로 진짜 내 이웃이고 친구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어찌 도시인들이 앓는 외로움이나 비정함이 끼어들 틈이 있겠는가?

드디어 매운탕을 먹는 시간…. 원래 민물고기는 잘 먹지 않지만 그때의 매운탕은 수제비 대신 라면까지 집어넣어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별미였다. 맛도 맛이지만 분위기에 취했던 탓이리라. 투박한 말씨도 그렇고, 다리 밑에서 병을 놓아 고기 잡는 정경은 언제 봐도 정겨운 내 고향의 모습이다.

맹위를 떨치던 여름 해도 서쪽으로 떨어지고 두어 잔 얻어 마신 술기운도 가신 것 같아 서운하긴 했지만 그만 손을 내밀었다. “잘 먹고 잘 쉬었다 갑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살구를 먹었을 때 고이던 신 침처럼 입 안 가득 퍼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언제고 꼭 다시 한번 오리라.’

어느새 내 입에선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루루루루루”

 

 

≪문학세계≫로 시 등단. ≪계간수필≫로 수필 등단(2004년).

계수회 동인.

시집 ≪바람이 사는 나라≫, ≪구름 몇 장 내게 주더니≫, 공저 ≪시인의 바다≫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