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밤

 

                                                                                       이춘희

뼈 속까지 추웠다. 아니 사막의 밤은 냉혹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거대한 피라미드나 스핑크스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게 가슴을 설레게도 했지만 무엇보다 여행일정에 사막체험이 포함되어 있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이집트 행으로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사막의 밤은 예리한 칼로 피부를 후비듯 파고 들어와 뼈 속으로 안개처럼 눅눅히 스며들어 추위가 공포로 변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체험하도록 만들었다.

손에 잡힐 듯 쏟아지는 별들과 이미 잊혀져가는 은하수에 노랫말처럼 하얀 쪽배가 걸려있는 밤하늘, 문명에서 멀찍이 앉아 바람결에 출렁이는 밀밭 같은 모래 언덕, 사막여우가 별을 보며 헤매는 곳을 그리며, 떠나기도 전에 내 마음은 낙타를 타고 사막을 떠돌고 있었다.

출발 전에 사막의 밤이 춥다는 인솔자의 연락을 받고 나는 열대의 땅으로 가면서 시베리아라도 가듯 준비를 했다. 공항에 도착해 동행하는 사람들의 짐과 비교하니 내 가방은 이삿짐에 가까웠다. 카이로에 도착하니 날씨가 따뜻해 추위에 대비한다며 호들갑을 떨었던 게 겸연쩍었다. 그러나 사막의 밤은 달랐다. 내복을 입고 털 스웨터에 한겨울 바지와 두꺼운 오리털 코트까지 껴입고 양말은 두 켤레에 구두까지 신고서 침랑에 들었다. 그 위에 또 두꺼운 담요를 덮고 텐트의 지퍼를 단단히 채웠다. 그러나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웅크리기도 힘들만큼 껴입은 탓인지 불편하기도 하려니와 발끝부터 치고 들어온 냉기에 몸이 그대로 얼어 굳어버릴 것 같았다.

그때 문득 어느 날 밤이 떠올랐다. 벌써 이십 년이 가까워오고 있는데도 아직도 그 밤은 이따금 악몽처럼 나를 놀라게 한다. 남편 회사의 부도로 살던 아파트를 내어주고, 옹색하게나마 그래도 두 아이와 함께 한 지붕아래 잠들 수 있다고 안도하던 그 겨울의 밤이 떠올랐던 것이다. 머리맡에 두었던 컵의 물이 꽁꽁 얼어붙어 있는 것을 처음 본 그 밤. 놀라서 옆방으로 가 보니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아이들 머리맡에도 물은 얼어있었다. 아이들이 볼세라 다급하게 물 컵을 들고 나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던 것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그 때는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던 막내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거려야 했기에 생활이 조금 불편해졌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다며 의연한 체 해 왔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물질에 연연해하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했던 나로서는 좌절이나 방황은 오히려 사치였다. 그러나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벼랑 끝에 서 있는 나를 직시해야 했고 봄이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추운 겨울날들이 내 앞을 가로 막고 있다는 사실과 그 봄이 쉬 오지 않으리라는 자각으로 가슴이 얼어붙었던 것이다.

텐트에서 몇 시간 버티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간밤에 피웠던 모닥불이 남아있다면 발이라도 녹이고 싶었다.

지난 밤, 사막의 원주민인 베드윈들이 피워준 모닥불 주위로 빙 둘러 앉아 차를 마시고 군고구마를 먹었다. 초등학생 때 배웠던 별자리를 기억해 내며 은하수에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별이 손에 닿을 듯이 쏟아져 내리지는 않았다. 하늘은 별잔치였지만 너무 높고 멀었다. 뒷목이 뻣뻣해지도록 하늘을 쳐다보았지만 다들 한두 개씩 보았다는 유성이 내겐 도무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때였다. 모닥불을 지피고 있던 사람이 불길을 추스르려고 타고 있는 나무토막을 비비기도 하고 탁탁 두드리기도 했다. 그러자 하늘로 불티가 쏟아 올랐다. 불티는 칠흑의 어둠속으로 기도하듯 두 손을 모우는 가 싶더니 빨간 꽃봉오리가 되어 송이송이 하늘에 뿌려지며, 줄줄이 화살모양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그 순간 나는 유성이 하늘에서 떨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올라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도 모르게 가운데로 나가 베드윈의 손에 들린 나무를 빼앗아 들고 두드리고 또 비비며 열심히 불티를 어둠 속으로 날려 보냈다. 아니다. 나는 불티로 만든 유성을 하늘로 올려 보내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무엇을 기원 했는지 모르겠다. 늘 그랬다. 보름달을 보면서, 돌탑에 돌 하나 얹으면서 항상 빌었다. 마음으로 두 손을 모우고 빌고 또 빌었다.

차게 식은 재만 남은 모닥불 주위에는 지난 밤 보았던 사막 쥐의 발자국과 사막여우로 짐작되는 낯선 발자국들이 하얀 재 주위로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가까이 베드윈들이 깊이 잠들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담요 한 장을 두르고 자고 있었다. 달랑 담요 한 장이라니. 깊이 잠들어 있는 그들을 보니 내가 정말 추웠던가 싶었다. 아무리 습관이 되었다지만 어떻게 이 냉기를 담요 한 장으로 견딜 수 있는지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삼십 여 년 전 호주에서였다. 시드니의 겨울은 한국의 가을 날씨와 비슷하다. 그곳의 주민은 여러 나라 이민으로 형성되어있다. 추운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대개 이민 첫 해에는 따뜻하다며 얇은 옷으로 겨울을 보낸다. 그러나 해가 거듭할수록 그들은 더운 나라에서 온 사람들 보다 훨씬 두꺼운 옷으로 겨울을 난다. 피지 같은 열대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처음에는 추워서 힘들어 하지만 해가 지나면 겨울에도 반팔차림으로 지내기 일쑤다.

우리는 우리가 겪어온 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기온 자체보다 마음에 저장된 추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아닌가 싶다.

유성을 기다리다 지쳐 불티를 유성이라 생각하면서까지 나는 무엇을 기원했던가. 자리끼와 함께 얼어붙은 가슴은 그 날 이후 예측 할 수 없는 내일에 대한 불안으로 늘 두 손을 모으게 했다. 그러나 잠든 베드윈을 보면서 섬광처럼 떠오른 것이 있었다. 적응이었다. 불안으로 얼어붙은 가슴을 녹이는 것은 기도가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적응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깨닫기 위해 나는 이렇게 멀리 이집트까지 왔어야 했던가. 어쩌면 봄이 이미 와 있는데도 나는 아직도 마음속의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북두칠성은 제 길을 따라 저만치 움직였고 샛별은 유난히 반짝이며 조금씩 어둠을 걷어내고 있었다.

 

 

≪수필공원≫으로 등단(1996)

공저 ≪나무들의 모습≫ ≪산그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