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선물

 

                                                                                      유혜자

친지들에게서 받은 선물 몇 가지가 있다. 새로운 촉수가 올라오는 난초 화분, 크리스탈 목걸이, 그리고 수선화 브로치이다. 이것들은 내가 축하받을 일이 있어서 선물로 받은 것이 아니다. 화분은 친지가 남편의 영전축하로 받은 것들 중에서 보내주었고, 목걸이는 문단선배에게 예쁘다고 했더니 선뜻 풀어주셨다. 수선화 브로치는 해외여행 때 동행한 문우가 사준 것이다.

자신이 누리는 행복을 선뜻 나눠 주는 마음으로 사는 이들이 부럽다. 받은 것들에 정성을 다하고 애용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답이 될까마는 이들을 소홀하게 대할 수가 없다. 평소 화초 기르는데 소질이 없는 나로서는 난초 잎이 누렇게 될까봐 물도 알맞게 주려고 신경 쓰고 자리도 옮겨주며 수선을 떨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혹시라도 꽃이 피어줄까 하고 아침마다 늘어진 이파리들을 일으켜 세우며 꿈을 버리지 않았다. 기르기 쉬운 몇몇 화초사이에 난초 화분이 우뚝 서서 기품을 자랑하자 내 어깨도 으쓱해지는 것 같았다.

크리스탈 목걸이는 목에 닿는 감촉이 시원해서 여름에 자주 이용하고 있다. 부담 없이 걸칠 수 있는 목걸이가 많은데도 크리스탈 목걸이를 자주 애용하는 걸 보고 선배가 “나이가 들어 갖고 있던 액세서리를 모두 좋아하는 이들에게 나눠주고 나니 홀가분하기 그지없어. 죽고 난 다음에 가족들이 달갑지 않게 나눠가지게 하는 것보다 생전에 어울리는 이들에게 주어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 할 때 쇠약해진 모습에 총명하고 매력 있던 지난날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세월의 무상함이 절감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손에 꼭 쥐려고만 하고 베풀 줄 모르는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것이었다.

밝은 노란색의 브로치는 여느 브로치보다 큰데다가 화사하게 보여서 행인들도 눈여겨보려 하고, 어떤 이는 축하행사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냐고 묻는다. 이런 일화를 반갑게 들어줘야 할 수선화 브로치를 사준 친구는 1년 전, 젊은 나이로 갑자기 타계했다. 먼 지방에 살아서 자주 못 만났고, 돌연사여서 장례식 이후에야 소식을 들었기에 내심 추모의 마음으로 그 꽃을 달기도 하는 것을 그 친구는 알까.

곁에 있는 야생화 화분에서 쉴 새 없이 꽃들이 피고 지는 동안, 난초는 꽃필 때가 두 번쯤은 지났는데도 의연한 채 이파리만 건강하다. 화분을 준 주인에게 꽃을 못 피우고 있는 것이 들통날까봐 걱정하던 내게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건강했던 그가 위암 판정을 받고 시골에서 요양 중이라고 한다. 서글서글하고 따뜻하던 주인공이 왜 몹쓸 병에 걸렸단 말인가, 나는 슬픔과 함께 분노가 치밀었다. 많은 재능이 있지만, 시부모 봉양과 자녀들의 뒷바라지에만 전념하더니 자녀들을 성가시킨 후에는 작은 집으로 이사하여 헌신과 봉사로 일관했다. 박토나 자양분이 많은 것을 가리지 않고 화사하게 피어나는 야생초와 품위와 가치를 저울질하며 어렵게 꽃을 피워내는 난초, 고결하게 살기란 얼마나 어렵고, 살아 있는 동안에 제몫의 꽃 피우기를 다하는 삶도 드물다는 것을 절감한다.

크리스탈 목걸이는 선배가 동 유럽관광길에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근처에서 샀다는데, 그 선배도 다리가 불편해서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여 안타깝다. 그 목걸이를 걸 때마다 나는 안네프랑크가 나치를 피해 숨어 사는 절박한 상황에서 생명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평화와 행복을 추구했던 것을 생각한다. 그 크리스탈처럼 영롱한 영혼으로 문학인의 삶은 끝없이 회의하고 시간의 흐름을 잘 포용하며 살아야 하지 않는가.

몇 년 전 뉴질랜드 기행 때 어느 음식점 카운터에 예쁜 수선화가 놓여 있는 것을 경이롭게 보면서도 일행들은 그냥 지나쳤었다. 한참 후에 나온 문우의 손에는 수선화 세 송이가 들려 있었다. 그것은 실제 수선화 크기의 조화 브로치로 암퇴치 모금함에 돈을 넣고 가져가게 하는데, 자신이 돈을 많이 넣었으니 염려말라면서 내게 하나를 내게 달아 준 것이다. 생화의 느낌이어서 웬만한 옷에도 잘 어울렸다.

그 친구는 불과 몇 년 동안 수필계에서 왕성한 의욕으로 아름다운 작품들을 써냈고 잡지도 창간했다. 몇 년 동안 화요일마다 부산에서 서울로 수필강좌에 다녔다는 열정에 놀랐고, 처음 낸 기행문집의 출중함에 탄복했고 그 뒤에 나온 수필집도 깔끔한 문장력과 응집력 있는 구도로 선망의 시선을 받았다. 약학과를 나온 이학도가 남편과 사별한 뒤에 진로를 바꿔 탄탄가도를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연사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고인은 수필 <방생>에서 남편 서재의 책들을 처분하면서 “가진다는 것은 구속이거늘. 내게는 늘 자유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거늘”이라고 썼다. 이제는 저 세상에서 창작의 구속 없이 자유롭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난초를 준, 시골에서 투병중인 친지가 투병 끝에 성공해서 내게 준 화분이 마지막선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오랜만에 크리스탈 목걸이를 하고 선배를 방문해야겠다고 나섰는데 넓지 않은 아파트 화단에 핀 노란 수선화가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