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

 

                                                                                          최원현

미국에 있는 아들아이 내외가 대륙횡단 여행을 하겠다고 한다. 우선 LA에서 제 고모할머님이 사시는 시카고까지 가고 거기서 다시 여정을 잡아 파라과이에서 캐나다를 경유하여 귀국하는 제 누이 부부와 토론토에서 만난 후 되돌아오는 것까지 한달여의 여행이라고 했다.

아이는 제 아내가 아이를 갖게 되면 해보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거라며 한 달 휴가를 얻었다고 한다. 의미 있는 일이긴 하지만 내 마음엔 걸리는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을 결정해 놓고 있는 그들에게 내가 무슨 다른 말을 할 수 있으랴. 해서 잘 했다고 했다. 그 또한 아주 좋은 공부가 될 거라고 하면서 말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결정이 신속하고 대범한 것 같다. 우리 세대처럼 이것저것 조심스레 재보고 따지고 하는 것도 아주 쉽고 신속하게 마무리를 해 버린다. 내 생각엔 그게 아닌 것 같은데 하다가도 이미 마음을 정한 그들에게 공연히 한 마디 해서 의기만 소침하게 할 수도 있겠다 싶어 잘 했다는 말로 불편한 심기를 얼버무리고 만다. 그래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을까.

한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이들의 이런 결정이 너무나도 부럽다. 편도 5천 킬로의 거리라지 않는가. 서울 부산 간 12번 거리다. 그걸 또 왕복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 같으면 기름값만 해도 엄청날 텐데 다행히 미국은 기름값은 싸니 그나마 다행이다.

전에 뉴욕에서 시카고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LA, 토론토를 열흘에 돌았던 때가 있다.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는 거리는 멀어도 제 아내와 둘이 교대해서 운전도 할 것이고 가다가 힘이 들면 아무데서나 쉬기도 할 것이다. 각양의 만나는 사람들과 삶을 나누고 배우는 즐거움과 처음 맞는 새로움으로 피곤함도 잊을 수 있겠다.

아이는 기도해 달라고 했다. 기도야 늘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그래도 기도해 달란다. 막상 떠날려니 두려움으로 걱정과 불안이 생기는가 보다. 아이는 4년 된 일제 중고차를 사서 타고 있다. 이 긴 여행에 녀석이 몫을 제대로 해 주어야 할 텐데 그게 먼저 걱정으로 찾아든다.

가끔씩 아이의 계획 속을 들여다보면 나는 아웃사이더가 되어있는 것 같아 서운할 때가 있다. 내가 참여하면 저들이 조금은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또 달리 생각해 보면 저들의 생각에 나의 조언은 짐이 되거나 그저 괜한 걱정만 일으킬 수도 있으리란 생각에 그래 너희들 인생 너희들 뜻대로 해봐라 하고 마음을 털어버리기도 한다.

산다는 것은 크건 작건 멀건 가깝건 다 여행인 것이다. 그것도 가본 곳이 아니라 처음 가는 길이다. 이미 지나간 사람이 얘길 해 준다 해도 그의 발자국을 밟고 가는 것도 아니니 어찌 내가 갈 길과 같다고 할 수 있으랴. 해서 인생은 도전이고 투자라고 하잖는가. 아이는 그런 면에서 분명 나보다 앞서있다. 소심한 내 성격 같으면 감히 시도할 엄두도 못 내었으리라. 또 특별히 일이 있어서 거기 맞춰 해보는 것이라면 몰라도 오직 그것만을 위해 시간과 재정을 투자할 생각은 갖지 못할 게다.

그가 만날 미지의 세계, 새로운 풍경과 환경들이 그에게 어떤 감동과 깨달음을 주게 될까.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길을 달리고 달려 다다른 목적지에서 그는 무엇을 보게 될까. 또 되돌아올 길, 그러나 인생이란 되돌아 올 수 있는 길이 아니다. 하기야 길이라고 어찌 같은 길로 되돌아올 수 있으랴. 이미 시간이 흘렀고 그만큼 무언가가 달라져버렸을 것이다. 흘러간 시간에 같은 것이란 있을 수 없다.

아이의 여행계획을 보며 새삼 내 삶의 여행을 생각해 보게 된다. 아내와 함께 산 게 35년이다. 앞으로는 얼마나 더 같이 살 수 있을까. 그와 함께 한 삶의 여정에서 지난날엔 두 아이가 큰 몫을 차지했다. 그러나 장성해 버린 아이들이 저희들의 길을 간 지금 우리 둘만의 여행으로 새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다.

이만큼 긴 여행을 해왔음에도 나아갈 길은 역시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미지의 여행이다. 보이는 것도 내 시야의 한계일 뿐이고 조금만 멀리 바라봐도 미지의 세계, 미지의 시간이 펼쳐져 있다. 너무나도 빨리 변하는 시대이다 보니 경험의 나침반도 소용이 없다. 오직 정신 바짝 차리고 발 헛디디지 않도록 눈도 똑바로 뜨고 나아갈 일이다.

아이는 이번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리라. 어차피 삶은 시행착오의 연속인 것, 부디 이번 여행이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겸손하고 경건하게 맞이하고 성실하게 발걸음을 내딛는 아름다운 깨달음의 걸음이 되었으면 싶다. 이만큼 산 나라고 별 수 있겠는가. 나도 그러해야 할 것은 말 해 무엇 하랴.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인생이란 가지 않은 길을 가보는 스릴 만점의 시간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