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 가로등

 

                                                                                       정태헌

이렇게 깊고 짙은 안개를 만난 적은 처음이다. 바다 들머리로 들어서자 안개가 온몸을 에워싼다. 으스름 달빛 속의 뿌연 안개, 주위를 식별하기가 어렵다. 모래사장으로 내려선다. 저만큼에서 일렁이는 해무(海霧) 속에 가로등이 할딱이고 있다. 제 소임을 다하여 주변을 밝히기보다는 스스로 존재 때문에 앓고 있는 형국이다. 눈에 잘 띄는 주황색이건만 안개에 묻혀 불빛이 우련하다. 오늘따라 뇌리를 떠나지 않는 여인의 모습도 그렇다. 평소 조쌀한 얼굴은 간데없고 게게하게 풀린 눈자위에 소진해 버린 생의 안개가 거뭇하게 드리워져 있다.

달무리처럼 번진 안개가 가로등 주변에 은실처럼 나부끼고 있다. 밤이 되자 따뜻한 공기가 찬 해면으로 이동하여 냉각된 모양이다. 가까이 다가서니 하늘로 향하다 고개 숙인 가로등 하나, 키 큰 장승처럼 멀뚱하다. 어찌 가로등뿐이랴. 더 짙은 안개 속을 헤맬 한 여인의 모습이 거울져 보인다. 그악한 세월을 엮어온 그 여인, 시방 가로등처럼 막막한 안개 속에서 홀로 떨고 있을 것이다.

관절염을 앓던 여인은 밤 소변 길에 화장실 문고리를 잡다 떨어지고 말았다. 의식을 잃은 채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했지만 가망이 없다고 받아주질 않았다. 애걸복걸 끝에 마지막 병원에서 겨우 수술을 받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식물인간의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자 의사는 소생불가 선고를 내렸지만 아들은 믿기지 않았다. 주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산소 호흡기를 제거할 수 없다고 꺽쇤 목청으로 도리질하고 있다.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을 어머니가 느끼고 있으며, 눈가에 이슬이 친친하게 고여 있는 것을 보았고, 가끔 손가락의 미동도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만 생리적 현상일 뿐이라는 의사의 말은 듣고 싶지가 않았다. 아들은 귀에 대고 무어라 말을 건네면 관자놀이가 움찔하고 가슴께가 간헐적으로 떨린다고도 했다. 지속적인 식물상태는 사망보다 더 나쁜 예후, 살아 있는 죽음이라지만 앞으로 어찌 감당해야 할지는 차후의 문제였다. 무엇보다 이제는 자신이 그 동안 어머니께 진 빚을 갚을 차례라는 생각뿐이었다.

여인은 일찍 남편을 여의고 아들 하나에 기대어 애면글면 살아왔다. 한데 자신이 관절염을 앓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들마저 시름시름 앓더니 스무 살이 넘어서자 신부전증으로 병원출입을 해야 했다. 다행히 모자는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돼 나라에서 주는 보조금으로 겨우 연명하며 가년스런 목숨을 이어 왔다.

한데 아들의 병세가 점점 깊어져 신장이식을 하지 않으면 미구에 죽어나갈 판이었다. 먹고 입는 일은 사치라 여길 만큼 절박했지만 병든 여인이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애오라지 기도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나타나 아무 조건 없이 자식에게 신장을 떼어주고는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채 종적을 감춘 것이다. 여인은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다고 굳게 믿었다. 병세가 차츰 호전되자 정신을 수습하고 은인을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헛수고였다.

여인은 하늘을 믿었다. 여인에게는 오직 하늘과 자식만이 삶의 지렛대였다. 하늘이 자식의 생명을 이어준 일은 여인에게는 구원이었다. 신산한 삶의 고통 중에 큰 은혜를 입었다고 여겼다. 그 빚을 갚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겠노라고 했다. 여인에게 물은 적이 있다. 소원은 무엇이냐고. 한 점 혈육에게 생명을 나눠준 분에게 고맙다는 인사말이라도 할 수 있는 게 그 소원이라고 여인은 떨리는 목청으로 말했다.

얼마 전 중환자실로 여인을 찾아 갔다. 목구멍까지 산소 호흡기를 꽂고 이승과 저승을 자맥질하면서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혼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는 자식은 얼굴이 까맣게 타버려 불에 그슬린 생쥐 꼴이었다. 그 동안 밤낮으로 곁을 지키느라 지쳐 침대 모서리에 까실한 얼굴을 묻고 있는 앙상한 등이 간헐적으로 들썩였다.

여인은 지금 어떤 영혼으로 어찌 견디고 있을까. 병든 자식을 두고 눈을 감을 수가 없단 말인가, 자식의 생명을 잇게 해 준 이에게 은혜를 갚지 않고는 차마 떠날 수 없다는 것일까. 죽음 쪽으로 한 발 내디딘 상태지만 차마 강을 건널 수가 없는 모양이다. 죽음 이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은인에게 빚을 갚는 일과 자식에 대한 걱정을 더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짙은 안개 속에서도 여인은 삶의 수레바퀴를 희미하게 굴리고 있다.

밤바람이 분다. 해무가 일렁인다. 가로등이 눈물 크렁한 채 떨고 있다. 가로등이 제 구실을 못한 채 떨고 있는 것은 저 안개 때문이다. 그저 막막한 바닷가에 서서 홀로 떨고 있다. 가로등의 뿌연 불빛에 얼비친 여인의 할딱한 얼굴이 암암하다. 안개에 가려진 밤하늘을 맨손으로 더듬어 본다. 생의 눈물이다. 언제쯤이면 여인은 저 짙은 안개 베일을 벗어나 일어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한 사람의 고통은 옆 사람의 눈길로 옅어지는 것, 안개 속을 허적허적 걸어 멀뚱한 가로등 곁에 나란히 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