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과 도끼를 든 사내들

 

                                                                                      金善化

1. 톱을 든 사내

“나무 자르기와 장작패기시합 후보를 받습니다. 희망자는 신청해주세요.”

정월대보름맞이 축제마당에 들어서서부터 눈길을 끌던 곳이다. 달집을 중심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마련된 통나무들. 연날리기다, 이엉 엮기다 하여 현수막이 분분한데 이곳엔 허술한 깃대하나가 꽂혀있지 않았다. 막 잘라온 소나무만이 땅바닥에서 진한 송진내를 뿜어대고 있었다. 오히려 우직한 현상이다.

본부석에서는 연신 “…장작패기시합 후보를 받습니다. 희망자는 신청해주세요.” 하며 낭랑한 여성사회자의 음성이 새나오고, 나는 어느 남정네가 가장 힘센 장수로 뽑힐지에 관심을 두었다. 사람에게 잠재된 의식은 무의식중의 행동에도 나타난다 했듯이, 방송이 들릴 때마다 곧 대회가 열리는가 하여 내 귀는 쫑긋쫑긋 섰다.

남자구경꾼들이 모인 자리를 비집고 드는 것이 다소 민망스럽긴 하였으나, 훤한 대낮에 이렇듯 열린 공간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내려하는 남성들의 힘을 즐거이 보아주는 것도 예의라 여겼다. 그것이 대회에 임하는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는 지극히 아전인수 격의 생각을 하며 기꺼이 시야가 트인 한 자리를 확보했다.

네 명의 후보가 톱을 들었다. 슬근슬근 자르는 흉내를 내며 나무를 어른다. 잘라야 할 나무도 통이요, 받침목도 통이다. 시(市)단위행사인데 이들은 그래 뵈도 각 고을에서 추천받아 올라온 사람들 아닌가. 톱질한판에 출신지역의 위신이 달려있다.

손바닥에 퉤퉤 침을 묻혀 문지르고 종이로 감쌌던 톱날도 풀었다. 한쪽 다리는 수직으로 세우고 다른 한 쪽은 통나무가 밀려나지 않도록 단단히 떠받쳐야 한다. 헌데 막상 톱을 든 사람들보다도, 후리후리한 젊은 후보 옆에서 한 수 가르침을 주는 꼬부장한 초로初老의 남자 표정이 더 볼만했다. “자, 자, 톱은 이렇게 단단히 틀어쥐어야 한다구!” 그리고는 틀니 낀 치열을 환히 드러내며 한바탕 웃는다.

드디어 결정적 순간이다. “준비, 시작!” 하는 심판관의 신호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쓱싹쓱싹 톱이 나간다. 톱날이 나무의 속살을 향해 집요하게 파고든다. 점퍼 안에 감춰진 저 여덟 팔뚝의 근육질이 20년 전, 30년 전, 40년 전의 혈기를 더듬어간다. 안으로, 안으로의 진입이다. 까딱 방심했다가는 세월의 무늬에 갇혀 헤어나지 못할 판이다. 더운 물살이 여울져 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는 파고波高. 그 격랑 안에서 잠시 연약한 심신을 내려놓고도 싶으리라.

―이제 미소년이던 시절에서 젖 먹던 날들의 뽀얀 무늬를 만날 차례이다. 여리디 여린 살결이 아련한 그리움을 게워낸다. 통나무주변에 분사되는 저 고운 톱밥! 불현듯 내 가슴이 다 저릿저릿해진다. 이어 모태의 정점에서 톱질이 잠시 주춤한다. 그러다가 다시 속력을 낸다. 쾌속정보다 빠르게 세월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

어느 해는 비가 많이 내려 수분이 충분했고, 어느 해는 가물어 메말랐었는지를 오직 톱날에 의해 감지하고 있다. 시간 속에 축적된 추억이란 한결같이 고울 수만은 없는 법. 정점을 지나 건너편으로 다가갈수록 들고나는 손길에 더욱 속도가 붙는다.

마침내 관객들 사이에서 환호가 터지고, 나동그라지는 나무토막과 동시에 톱날이 땅을 긋는다. 세상에서 이처럼 화끈한 승부가 어디 흔한가. 불과 1분여 만에 등수가 가려졌다. 올해 정월대보름날의 톱질장사는 역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장년기의 사내다.

농촌의 현실을 대변이라도 하듯 그중 젊은이다. 축하한다는 내 말에 수줍게 웃으며 이마의 땀을 훔치는데, 옆에서 훈수들던 초로는 젊은이의 톱질을 재연하며 좀 전보다 더 크게 웃는다. 아마 저이는 이 젊은이의 아버지라도 되는 것일까.

그래. 왕년의 기백을 보이고 싶은 게다. 지나간 세월을 되돌리고 싶은 거다. 그러면서도 숱한 시간속의 고비를 넘겨 오늘에 이른 자신이 대견한 것이다. 저 얼굴이 바로 보름달이다.

2. 도끼를 든 사내

“자, 단판 결정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호각을 문 사내의 권력남용이며 반 공갈이지 싶었다. ‘무슨 소릴? 저 굵은 것이 어떻게 한번에 갈라진단 말인가. 적어도 한번 내리찍어 쾅쾅 두어 번은 굴러야 결이 드러나겠지.’ 헌데 연신 단판 결정이라 한다. 그렇다면 저 호각쟁이 말이 맞는가 보다. 단판에 내리쳐 결판내야 한다. 추호의 틈을 보이면 안 된다. ‘내 소싯 적에 한 가닥 했다네’ 하는 자세로 여유만만하다든가, 혹은 질 것에 대비하여 지레 표정관리 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슬며시 들여다보인다. 그러면서도 미소 머금은 얼굴, 얼굴, 얼굴들.

조금 전 톱을 든 사내들의 힘에 잘린 통나무토막 앞에, 또 다른 네 명의 남자들이 도끼를 들고 섰다. 갈라야 할 소재를 하나씩 맡아 요리조리 만져가며 바닥에 곧추세운다. “준비”하는 구령이 떨어지자 도끼날이 장정들의 어깨 뒤로 훌쩍 넘어갔다. 시퍼런 날이 위용을 과시한다. 이 직설 앞에서 사람들은 차마 가까이 가지 못한다. 나도 몇 발짝 물러났다.

‘피리릭’하는 호각소리에 맞춰 ‘퍽’하는 소리가 이어진다. 속살에 날 먹히는 소리다. 세월 가르는 소리다. 관객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일시에 몰려들어 결과를 확인했다. 원형圓形을 이룬 나이테가 쩍 갈라졌다. 과연 단판에 승부가 났다. 통나무를 가른 도끼날이 땅에 꽂혀있는 사람이 단연 1위다. 얼굴에 티는 내지 않으나 내면에 흐르는 빛깔이 늠름하다.

두 번째 장사는 나무가 사람의 체면을 봐줬다. 도끼자루를 잡은 장정의 손이 앞으로 축 늘어지고 구경꾼들이 몰린 그때서야, 뜸 다 들였다는 듯 통나무가 갈라진다. 우지직 찍 소리를 내면서. “역시, 음!” 하는 감탄사가 객석에서 터져 나온다.

이번에는 고른 심사를 위해서인지, 구경거리를 제공하려 함인지 3,4위전이 다시 벌어졌다. 그 중 하나, 도끼질이 헛나간 통나무가 바닥에서 마구 도리질을 한다. 그러자 거침없이 야유가 쏟아진다. 당사자 앞에서 기회는 이때라는 듯 심중을 드러내며 맘껏 손짓들을 한다. 덕분에 나도 한바탕 소리 내어 웃었다. 민망하여 슬쩍 눈꺼풀을 풀고 고개 돌려 웃는 사내 옆에서 한껏 관객으로서의 노릇을 다하였다. 사람의 실수를 대하며 언제 이렇게 즐거워해보았던가.

한데 그곳에서 돌아온 지 이미 한참이건만, 머릿속엔 희한한 그림이 들어앉는다. 왜 자꾸만 옹이 굵게 박힌 그 소나무가 아른거리는 것인지. 이날 장작패기 시합에서 꼴등을 한 사내는 힘이 달려서가 아니었다. 그리고 요령부족이어서도 아니었다. 그 앞에 놓여졌던 옹이 탓이었다. 단판에 결을 갈라야 하는 것을 단판에 옹이를 때려 도끼날만 튕겼으니, 구경꾼들의 웃음보가 터져버린 게지.

모순되게도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길목 도처엔, 속살 고른 나무와 옹이 단단한 나무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 이치를 아는 사람들이 민속놀이마당에서 한바탕 웃어젖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