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회 추천>

 

거 기

 

                                                                                     양미숙

“저 새 좀 봐. 뜸부기인가봐”

뜸부기의 생김새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나는 더듬더듬 말을 늘어놓았다. 포장 되지 않은 들길 한가운데 새 한 마리가 있었다. 비켜서지도 않고 날지도 않고 도망가지도 않았다. 차를 멈췄다. 비켜주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어디 어디” 하며 궁금해서 아이들이 떠들어 댔다. ‘쉿’ 하며 자동차의 시동을 끄고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도 그 새는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먼저 움직여야 할 것 같아 차에서 내려서려는데, 길옆 풀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서너 마리 되는 새끼들이였다. 아기 새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길로 내려섰다. 어미 새의 움직임이 빠르다. 어느새 아기 새들을 몰 듯 풀숲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그곳은 유년 시절, 뜸북 소리의 이중창을 들었던 들녘이다. 원두막에 누워 듣자면 이중창을 하듯 박자를 맞추며 고음과 저음을 주고받았다. 어디서 우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논두렁 사이를 다니며 찾아보았지만, 숨바꼭질 하듯 머리카락하나 보여주지 않던 새였는데…

‘뜸부기는 천연기념물이다, 멸종위기다’ 라는 신문 기사를 읽었을 때도 거기가면 뜸부기는 많은데 하며, 나만 거기를 알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곳의 시간은 정지하고 나에게만 시간이 흘렀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할머니 빨리요”

아이들을 시켜 어머니를 불러낸다. 무슨 할 일이 그리 많은지, 뒷정리가 잘 되어있는 부엌에서 혼자 무엇인가를 바삐 하고 계신다. 창밖에서 살며시 들여다보니 다음날 아침 찬거리를 준비 하는 것 같다. 재료를 미리 준비해 놓아야 며느리들이 아침 준비를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일 것이다. 가끔 오는 며느리가 손님 같은 것은 어느 시어머니에게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아이들을 시켜 친정어머니를 부엌에서 나오게 하려는 내 생각이다. ‘딸이란 참’ 하며 웃음이 나온다. 힘들다며 거절하는 할머니에게 아이들은 은하수를 보여 달라며 떼를 쓴다.

친정마을 입구에는 작은 네거리가 있다. 그곳은 어머니의 눈물을 처음 보았던 곳이다. 울적해지면 그곳에 앉아서 하늘을 본다고 한다. 어디로도 떠날 수 있는 길목이고, 아버지가 바라보이는 길목이라며 다음 말을 잇지 못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네거리에 나와 별을 본다던 말씀이 생각났다.

외손자들의 손을 잡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앞서 걷는 어머니. 귀찮다 하면서도 손을 뿌리치지 않는다. 구부정한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무엇인가 나를 찌르는 것 같다. 울컥 올라오는 무엇을 삼켰다. 앞서 걷는 엄마를 안아보고 싶다. 뛰어가 엄마 손을 잡는다.

네거리에서 보는 별자리는 나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내가 내 아이들만 했을 때는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의 손을 잡고 달마중을 했고, 별자리를 찾았던 곳이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여기서도 시간이 흘렀음을 깨닫게 한다.

위험한줄 알면서도 떠나지 못하고 기다리기만 하던, 낮에 본 뜸부기가 생각난다. 그날은 낮부터 뜸부기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들에는 땡볕만 쏟아지고 있었다. 내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뜸부기 소리를 듣지 못한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본다. 듣지 못했다. 한데 엄마의 뒷모습에서 뜸부기 소리를 들은 것 같다. 언제나 내가 안길 수 있는 곳이 거기였다.

네거리에 앉았다. 그림자 넷이 하늘만 쳐다보며 별자리를 찾고 있다. 거기 어머니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며 서 계시던 그 길가에서 아이들은 손을 모아 기도를 하고, 난 어머니 가슴에 고개를 묻었다. 별똥별 하나가 하늘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