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회 추천>

 

녹두전

 

                                                                                          김효남

온 가족이 좋아하여 가끔 만드는 음식 중에 녹두전이 있다. 시어머니께 배운 빈대떡은 친정 스타일과는 많이 다른데 ‘겉은 바삭 하게, 속은 말캉하게’ 가 조리의 포인트다. 크기도 손바닥 반 만하게 작게 부친다. 그러나 즉석에서 지져 맛보는 게 아닌 이상, ‘바삭’ 또는 ‘말캉’ 의 유효기간은 매우 짧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데워먹는 녹두전의 맛이 아주 나빠지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좋아하는 음식이라 하더라도 녹두를 손질하여 부침개질을 하는 일은 지루한 일이다. 좀 사도 그만인 것을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만들고 있는 걸 보면, 나도 친정어머니를 닮아가나 싶다. 내가 어릴 때, 친정어머니는 녹두를 원칙대로 맷돌에 가셨다. 그러나 믹서란 물건이 나온 후로 우리 집 맷돌은 슬그머니 지하실에 모셔졌고, 몇 차례의 이사 끝에 그 종적을 감추게 되었다.

친정어머니는 평생 요리에 관심이 많으셨다. 요리책을 들여다보며 이 궁리 저 궁리를 하셨고 공책에 메모해가며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기도 하셨다. 어머니는 그 시대의 신세대 여성답게 토속적 음식과 더불어 새로운 요리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것은 음식 만들기에 대해 사명감이나 투혼 같은 것이었는데 건강이 나빠진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머니의 손맛의 절정기는 어느덧 빗겨갔다는 것이 우리 형제들의 묵시적 공감이다.

음식에 매달리며 사시는 어머니를 보고 자라면서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힘들고 시간 들고 잔손이 많이 가는 그 일은 입에 들어가면 그냥 종지부가 찍어지는 것이 허탈했거니와 누가 크게 알아주는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알아주는 것과 상관없이 세상엔 소중한 일들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면서 집에서 풍기는 음식 냄새의 위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음식은 어릴 때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통로가 되며 다음 세대와의 소통을 위한 매개체가 된다.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면 갈비찜, 토란국, 닭 강정, 도미탕수 같은 음식이 함께 떠오른다. 친정어머니에 비하면 음식 만들기에 대한 열의가 한참 떨어지는 나에 대해, 우리 아이들은 무슨 음식을 연관 지어 떠올릴까 궁금하다. 빈대떡과 로스 편채가 떠오르려나? 로스 편채는 솜씨를 발휘해야 하는 음식은 아니다. 채끝 등심같이 연한 고기에 가볍게 찹쌀을 묻혀 올리브유에 지진 후, 깻잎 채나 무순 같은 야채와 더불어 겨자 장을 찍어먹으면 되는 간단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에 비하면 녹두전은 좀 더 까다로운 공정을 거친다. 우선 해를 넘기지 않은 국산 녹두를 잘 선택하여 혹 있을지 모르는 미세한 모래나 작은 돌을 제거하고 생수에 불린 후, 참을성 있게 껍질을 잘 걷어낸다. 타갠 녹두라 하더라도 껍질이 많을뿐더러 녹두의 껍질은 색을 탁하게, 맛을 껄끄럽게 하기 때문이다.

녹두 불린 노오란 물을 아주 조금 넣고 녹두를 믹서에 갈아낸 후, 간 돼지고기를 양념하여 볶아 놓은 것, 데쳐서 버무린 숙주, 김치, 양파 등을 섞어 간을 맞추어 넉넉히 두른 기름에 부친다. 워낙은 녹두로 동그랗게 터를 잡은 후에 고명을 얹고 그 위에 다시 녹두를 살짝 얹는 것이 정석이지만, 그나마 과정이 좀 생략되었다. 이 때 빈대떡 반죽의 농도가 맞아야 예쁘게 부쳐지고 맛도 좋기 때문에 물이 덜 생기도록 재료들을 힘주어 짜되, 재료의 깊은 맛이 손상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강약을 조절해야 한다.

빈대떡을 부치면서, 나는 온 집안에 녹두지짐의 향이 퍼져나가도록 내버려둔다. 식구들이 그 구수한 냄새와 함께 집의 편안함을, 엄마의 손맛을 행복한 마음으로 맛보았으면 좋겠고 오래 기억해 주면 더 좋겠다. 아이들이 훌쩍 커버린 지금, 한 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 마시는 일도 항상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님을 안다.

한 집에 사는 지금도 얼굴 맞대기가 힘들지만 언젠가 뿔뿔이 제 갈 길을 갈 아이들이다. 나중에 아이들이 각자 가정을 이루고 우리 집을 방문한다면 나는 이들에게 무슨 음식을 만들어 줄 것인가? 어떤 이들은 사윗감의 방문에 대비하여 새삼스레 요리학원을 다닌다고 한다. 나도 미래의 사위나 며느리가 좋아할 메뉴를 좀 더 보강해야 할까 보다.

복잡한 육체적 노동을 싫어하던 젊은 시절, 인스턴트 음식에 현혹될 때도 있었지만 손으로 하는 일이 생명과 얼마나 중요하게 연관되는 것인지 깨닫게 된 후로는 나의 무지와 게으름을 부끄러워할 줄도 알게 되었다. 음식을 만드는 일을 늘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나도 모르게 몹시 집중할 때가 있다. 몸을 움직이고 손을 사용하여 음식을 만들어 눈으로 감상하고, 그 향을 코로 즐기며 맛보는 것은 거창하게 말하면 일종의 종합예술이다.

모처럼 별식을 만들었는데 식구들이 방에서 바로 나오지 않으면 난 크게 소리 질러 부른다. 음식이야 말로 타이밍의 예술이고 나는 가족들에게 절정의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식탁의 연출가가 아닌가.

정성껏 만든 음식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정서적인 안정과 행복감을 주며 세대를 잇는 통로가 됨을 생각할 때, 잔손이 많이 가는 그 일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에 공감한다. 손으로 하는 일들은 항상 마음 씀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 일이 내게 더 피곤을 몰고 오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머리만 써도 되는 일에 비해, 마음과 손을 사용하는 일은 사람을 따뜻하고 사려 깊게 한다.

배려심이 없이 맛있고 정성스런 음식이 나오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손을 움직여 음식 만드는 일을 사랑과 결부시키는가 보다. 주변에 소외된 이웃들에게 사랑을 담은 음식을 만들어가서 즐겁게 섬기는 분들을 볼 때 나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가족의 먹을거리나 겨우 만들고도 생색을 내는 나 같은 사람에겐 턱없이 부족한 성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