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칼럼

 

문득 뒤돌아 볼 때

 

허세욱

 

고층 아파트에 사노라니 거기에도 득실이 있다. 요즘처럼 장마철이면 우량이나 우세를 짐작키 어려워 답답할 때가 있다. 우두커니 맞은 편 우면산에 폴폴 흩날리는 구름 그 조각들을 보면 문득 내가 심산유곡에 서있는 느낌 일 때 나는 또 다른 소리를 환청하고 있었다.

후드득 후드득, 사랑 앞의 파초 잎새나 뒤란의 호박잎에 어지럽게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다. 속이 후련할 만큼 시원했었다. 그때마다 나는 툇마루에 서서 그 수정 알이 부서지는 중력에 휘청휘청 몸부림하는 잎새들 그 진폭을 무료하게 보고 있었다. 갑자기 초가집이 그립다.

나는 고공의 콘크리트 둥지서 자꾸만 뒤돌아 보이는 것들이 꼬리를 물었다. 이 봄, 이 여름 어스름 저녁마다 안개 자욱한 산자락에서‘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슬픔 사연을 쏟아내던 소쩍새는 지금 무얼 할까? 깊은 밤 긴긴 장대를 들고 휘휘 휘두르면 우수수 떨어질듯 촘촘했던 은하들은 왜 보이지 않는가? 엎치락 뒤치락 한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고 서창을 열 때 초롱초롱 눈망울로 나를 맞던 그믐달은 아직도 끄무레한 저쪽 장막에 가리어 있는가?

그것들은 좀처럼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 올 봄 나는 서울의 원근 산들을 등반할 때마다 어스름 저녁이면 산자락을 서성이며 귀촉도 피를 삼키는 울음을 기다렸지만 번번이 허탕이었다. 그러다가 엊그제 경상도 청량산 그 기험한 준령 밑에서 모처럼 해후하는 기쁨을 누렸었다.

현대인의 의식 속에 언제부턴지 파초에 부서지는 빗소리를 비롯‘진달래 꽃 비 오는 서역 3만 리’의 귀촉도, 그리고 은하수와 새벽달, 그것들은 분명 지금도 어디서 피고 어디서 울건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날부터 쉽사리 옛 일, 옛 것으로 돌려버린다. 도시의 고층들은 문득문득 그걸 그리며 살고 있다.

 

돌아보면 나도 수필 따라 꽤 먼 길을 왔다. 본회의 심부름을 맡고, 본지의 편집을 도운 지도 어느 덧 십수 년이다. 우리 동아리가 달마다 한 번씩 빙 둘러앉아 벽 돌림 하듯 합평한지도 서른 돌이 다가온다. 그 때 마다 오직 바르게 수필 보려고 목소리를 높이고 붉으락푸르락했었다. 지금은 조용하고 멀쑥하지만 그렁저렁 막을 내리면 왠지 후련칠 못했다. 그렇게 세월이 펄럭이는 동안 문단에는 수필의 꽃이 만개했다. 수필 문학사상 오늘만큼 번영을 기록한 적이 없었다.

안으로 시들하고 밖으로 풍요를 누릴 때 나는 옛 일, 옛 것들이 그리워진다. 언제나 합평 때마다 그 자리에 앉았던 분들이 그립다. 떨리는 듯 더듬는 목소리에 모자란 듯 느린 말씨, 그런 분에게 달콤한 어조와 세련된 표정은 어림없다. 하지만 주장 앞에 당당하고 쥐꼬리만 한 명예와 이익 앞에 얼른 비켜섰다. 그런 분을 꼬장꼬장한 선비라고 비웃을지라도 나는 그립다. 더구나 세상에 글쟁이는 날마다 떼거리를 만들고 시비 앞에 팔짱을 끼고 명리 앞에 새양쥐가 되는 그런 세상이기에 말이다.

선비라면 왠지 냄새 나는 사람인 줄 안다. 선비라면 꼬장꼬장한 고집쟁이로 치부했다. 일석一石의‘딸각발이’가 심어 준 인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선비란 그렇게 편협하거나 진부한 인격이 아니었다. 그것은‘군자君子’요,‘ 사士’의 등가어였다.

나는 1986년 가을,『 수필공원』에「수필은 선비 문학인가?」를 썼다. 그 글은 당시 본회와 한국수필문학진흥회가 공동 주최하는 세미나에 주제 논문으로 발표된 바 있었다. 22년이 지난 지금 또 한번 수필을 선비문학으로 생각하는가? 묻는다면 그것이 비록 시도적으로 쓰인 글일지라도 다시 긍정하고 싶다.

그 때 이미 우리 수필계는 풍요를 보이기 시작했다. 행여 수필이 무형식의 문학이래서 쉽게 넘나보는 현상일 수 있었다. 그러한 안일한 동도同道에게 수필은 비록 형식은 없을지언정 반드시 일정한 풍격을 지녀야 한다는 경고적인 의미도 없지 않다.

나는 평소 수필을 이렇게 생각했다. 본시 사물의 기록이라고. 그래서 다양했다. 그 뒤 문학성을 위해 수필은 지성과 정서의 바탕위에서 진실과 진정을 심미적으로 표현하길 바랐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을 그 소재로 삼을지라도 표현에는 격이 있다. 풍자하되 극열하지 않고 진솔하되 천속하지 않고 심오하되 회삽하지 않는 그러한 따스함과 전아함 그리고 청려함을 지녀야 상품上品일 수 있었다.

문학은 곧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장르의 폭도 결정될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 내가 좋아하는 수필은 선비의 그런 풍모였다. 동양의 바이블인『논어』는 가위 군자나 선비의 지침서다. 그 중에도‘군자’나 ‘사’를 직접 논급한 곳이 7, 80군데나 된다. 이를 귀납해 보았다.

‘군자’나‘사’는 특정적으로 정치적 군주, 신분적으로 귀족, 인격적으 로 성인을 뜻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인격과 도덕을 지닌 지식 계층, 곧 서양의‘젠틀맨’, 신사紳士에 상당하다. 그들의 품격은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 선비에게 자기 성찰을 통한 진리 탐구를 요구했다. ‘( 士志於道’,‘ 君子求諸己’,‘ 君子懷德’등)

둘째 : 진실과 정의를 최고의 덕목으로 보았다. ‘( 君子義以爲上’,‘ 君子喩於義’,‘ 君子見得思義’,‘ 君子義以爲質’등)

셋째 : 초연하고 태연하면서 크고 넓게 화합할 것을 요구했다. ‘( 君子坦蕩蕩’,‘ 君子不器’,‘ 君子和而不同’등)

넷째 : 지성과 야성의 적당한 균형과 조화를 요구했다. ‘( 文質彬彬然後君子’‘, 知者不惑‘’仁者不憂‘’勇者不懼’등)

다섯째 : 질박한 생활 태도를 요구했다. ‘( 君子質而已矣’,‘ 君子謀道不謀食’,‘ 安貧樂道’,‘ 士而懷居不足以爲士矣’등)

이상 내 나름대로 귀납한 다섯 가지 덕목 앞에 수필을 대치한다면 한 가지도 어긋나지 않는다. 수필이 지향하는 진실 추구, 비평 정신, 자아 독백, 정의 미학, 천의무봉한 상상, 종횡 무진한 구성, 무소기탄한 소재, 자연 질박한 문채 등의 가능성을 모두 수용하고 있다.

더구나 문장론이나 문단론은 짧지만 단호하고 명쾌하다.‘ 문장이란 우리의 뜻을 전달할 따름이라辭達而已矣’고‘선비는 글로써 벗을 모은다 君子以文會友’고 비문학적인 사교를 경계했다.

나는 옛사람, 옛말에 젖어서 옛날이 그립다. 자취를 감춘 소쩍새, 들리지 않는 빗소리, 만날 수 없는 은하수, 새벽달과 함께 우리 동아리에서 꼬장꼬장했던 선비가 그립다. 아직도 선비를 보면 수필 냄새가 풍긴다. 우리들이 읽었던 수필 속의 선비를 만나곤 두근거렸던 기억들이 새롭다. 선비는 우리가 좋아하는 수필, 그 최상의 격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 밤 자꾸만 뒤돌아본다.

 

                                                                   <본회 회장, 본지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