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이야기

 

 이응백

 

 

의식주衣食住 가운데 식은 건강과 생명 유지에 가장 절실하게 연관이 돼 있다.

더운 지방에서는 치부만 가린 발가벗은 상태로 살 수 있고, 집도 고래등 같은 덩그런 것이 아니고 비바람만 가리면 되지만,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자동차에 기름이 떨어지면 움직이지 못하듯 육체가 움직이지 못한다.

남미의 파라과이에 가면 민주오카라는 식품이 있다. 우리의 돼지 감자, 뚱딴지 흡사하게 생긴 초본草本인데, 지하경地下莖이 탐스럽게 뻗었다. 그것을 캐서 쪄서 꺼풀을 벗겨 먹으면 맛이 마치 감자와 고구마의 중간맛과 같아서 입맛이 당긴다.

그곳 원주민들은 일부러 농사를 짓지 않고서도 아무데나 흔히 있는 천연생인 만주오카를 캐서 쩌 먹으면 특별히 양식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 더 없이 게으르게 되어 머리도 열대 치매痴簞에 걸린 듯 머리가 발달하지 못한다. 그런데 비해 춘하추동 사계절이 분명한 우리의 환경이 얼마나 대견스러운다.

모든 것이 얼어붙어 지구의 종말을 고하는가 싶던 겨울이 동지冬至가 지나 입춘立春 무렵으로 접어들면 푸나무에 물기가 올라 움이 돋고 잎이 솟고 꽃이 피어 벌 나비가 춤을 추는 봄철이 온다. 그러면 그 옛날 춘궁기春窮期에 굶주림을 면케 했던 냉이며 달래 같은 봄나물이 산과 들의 땅갗을 뚫고 힘차게 솟아 오른다.

먼 산에 아지랑이가 가물가물하던 봄이 가고, 논과 도랑에 물이 넉넉한 여름이 온다. 사흘 도리로 비가 내리는 지루한 장마가 가시고 머리 위를 따갑게 내리쬐고 논밭의 곡식이 풀풀하게 자라 오르며, 들머리 원두막에선 잘 익은 참외가 길손을 손짓한다.추석이면 그 해에 새로 나온 햅쌀로 송편을 빚고 토란국을 끓여 신토불이의 행복을 누린다. 가을이면 아무리 가난한 농사꾼의 집일망정 벼가마가 집안에 포실하게 들어찬다. 나 어렸을 적 초등학교 월사금이 겨워 1학기만 다니고 가을에 강미講米로 벼 열 말씩을 내면 되는 등 너머 서당으로 1년 반 동안 다닌 기억이 새롭다.

겨울 시월 상上달에는 어느 집에서나 터주에 일 년 농사 잘 됨을 감사하고 집안의 복福을 비는 고사를 지낸다. 이때 시루에 찌는 고사떡은 단 호박고지를 토막 쳐 넣어 맛이 단 호박떡도 좋지만, 무를 송송 채 썰어 버무려 찐 무시루떡이 맛이 만문하여 남녀노소가 선호한다.

사위四圍가 눈에 막혀 먹을 것에 굶주린 참새들을 유인하는 새창애가 겨울철의 일품이다. 살생은 금하는 불교의 교리와는 잠깐 눈을 감고, 속인俗人들의 취향으로 맷방석 밑에 참새가 좋아하는 쌀이나 좁쌀을 뿌려 놓고, 30센티쯤 되는 막대기로 맷방석의 앞을 버티어 놓고, 그 밑에 끈을 매고 그 끝을 안방 문틈으로 안으로 연결시켜 놓는다. 문에 붙인 자그마한 유리로 내다보고 있을 때 꾀가 말짱한 새들이 주위에 이상異常이 없는가를 살피면서 맷방석 밑의 모이를 쪼아 먹다가 밖으로 나오고 다시 쪼으다가 별 이상이 없음을 감지하면 마음 놓고 모이를 쪼은다. 그 때 잽싸게 끈을 잡아채면 동작이 빠른 새이지만 미쳐 빠져 나가지 못하고 창애 밑에 깔린다. 무심코 들추면 새가 날아감을 견제하기 위해 노파심으로 창애 위를 발로 골고루 밟아 새가 기절해 날아가지 못하게 하고 조심스레 들추어 한 마리씩 꺼낸다.새를 잡는 또 다른 방법은 초가집 처마 끝에 둥지를 마련한 새가 들락날락하는 것을 낮 동안에 보아 두었다가 밤에 사다리를 놓거나 한 사람이 밑에 무릎을 꿇어 앞으로 웅크린 등 위에 무동舞童을 타고 올라서서 한손을 새 둥지에 집어넣어 잠이 든 새를 잡아낸다. 새 둥지에 손을 넣었을 때 온기가 느껴지지 않으면 혹 뱀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므로 이크나 하고 손을 반사적으로 빼야 한다.

참새를 잡는 또 하나의 방법은 검은 명주실로 얽은 그물 양쪽에 연결한 버팀목으로 켕겨 새가 잘 날아 다니는 목에 쳐 놓으면 새들이 무심코 날아 가다가 그물에 목이 걸려 대롱대롱 매달린 것을 그물을 내려 뽑는 것이다. 이렇게 잡은 새의 털을 뽑고 배를 갈라 내장을 뽑아 버리고서 화롯불에 석쇠를 놓고 구우면 기름이 자글자글 끓는 것을 몇 번 뒤척여가며 구워 먹으면 그 맛이 얕얕하고 고소한 것이 딴 고기와 댈 것이 아니다. 쇠고기가 비싸 구하기 어려운 농촌에서 선호하는 방법이었다.

우리 음식의 특징은 4계절에 따라 식품이 다르다. 그러나 공통적인 특징은 무나 배추로 담근 김치나 깍두기 등 유산균을 중심으로 한 발효 식품이란 점이다. 쓰나미[津波]나 대지진 피해로 전염병이 창궐할 때 그것을 제지하는 식품이 바로 우리 선인들이 지혜롭게 발명한 것이 바로 세계에서 유일한 김치 깍두기 등 발효식품인 것이다. 발효식품은 육류보다 채소류에서 실효를 올린다. 채소류에 섬유질이 많아 소화에 시간이 걸리므로 채식을 선호하는 동양인의 장腸은 육식을 좋아하는 서구인의 장보다 길이가 길다. 종래 우리는 과식의 추세로 위암이 많았는데 근자에는 서구인의 식습관을 선호해 육류를 많이 섭취하는 관계로 대장암이나 직장암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나는 아침에 며느리가 차려 주는 너덧 가지 반찬 중 김은 밥을 싸먹고, 간이 센 김치나 짠지에는 냉수를 부어 희석稀釋시켜 다른 반찬과 함께 국에 다 쓸어 넣고 밥과 균형을 맞추어 다 먹는다. 그러므로 식사가 끝나면 빈 그릇만 남게 된다. 반찬 투정 없이 다 먹는다는 것이 음식을 마련하는 주인공에게 그것보다 흐뭇한 일은 없을 것이다.

『논어論語』의 이인편里仁篇에 孔子는 말씀했다. 선비가 道에 뜻을 두고 좋지 않는 옷과 좋지 않은 음식을 부끄러이 여기는 이는 말상대가 되지 못한다.(子曰, 士志於道而恥惡衣惡食者는 未足與議也니라.)또 술이편述而篇에 孔子는 말씀했다. 거친 밥을 먹고 물은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워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으니 의義롭지 않으면서 부자가 되고 몸이 귀하게 되는 것은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다.(子曰, 飯刀食 飮水하고 曲肱而枕之라도 樂亦在其中矣니 不義而富且貴는 於我에 如浮雲이니라.)

음식은 건강 유지에 적합適合하게 먹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