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공예 사진 한 장

 

 이태동

 

 

알베르 카뮈가 많은 문학적 영향을 입었다는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있다. “저마다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다른 수많은 순간들의 퇴적 속에 깊이 묻혀 있다. 다른 순간들은 그 위로 헤아릴 수 없이 자나갔지만 섬뜩할 만큼 자취도 없다. 그것은 유년기나 청년기 전체에 걸쳐 계속되면서 겉보기에는 더할 수 없는 평범할 뿐인 여러 해의 세월을 유별난 광채로 물들이기도 한다.”

나는 젊은 시절 그르니에가 쓴 이 산문 구절을 읽었을 때 유난히 신비스런 매력을 느꼈으나 관념으로만 기억에 묻어두고 있다. 그런데 우연히 내 생의 해질녘에 그것을 삶의 체험으로 실감하는 축복 받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

지난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는 길목에서 나는 갑자기 왼쪽 팔이 몹시 아프다는 것을 느꼈다. 책상 의자에 앉는 자세가 나빴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삶의 유일한 낙인 책도 읽지 못하고, 밤이 되면 팔이 너무 아파서 잠 못 이루고 있을 때, 가깝게 지내는 어느 시인 한 분이 나를 위로 한다는 말과 함께 환상적이리만큼 아름다운 이태리 유리 공예 작품을 찍은 사진 몇 점을 음악에 실어 인터넷으로 보내주었다. 그는 아무 다른 말없이 이 유리 공예 작품 사진이 ‘유년 시절 서교동 옛집 부근에서 총각들이 뜨겁고 물렁거리는 유리를 대롱에 달고 후후 불며 유리병을 만들던’ 마술적인 풍경을 생각나게 한다고만 했다.

그의 짧은 글과 보내 온 아름다운 유리 공예 사진은 까맣게 잊어버렸던 내 어린 시절의 어느 한 순간을 물위의 꽃잎처럼 기억에 떠오르게 했다. 그 당시 우리 집은 6. 25 전쟁이 일어나게 되자, 나 혼자 학교를 다니도록 D시에 남겨 놓고 고향인 먼 산골로 피난을 갔다. 그래서 나는 도시에 남아 지금은 돌아가신 홀어머니를 모시고 외로이 살고 있던 당숙 집에서 자취 반 하숙 반의 생활을 해야만 했다. 내가 중학교 시절을 보냈던 그 친척 집은 주택가에 있었지만, 어느 막다른 골목의 맨 끝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집은 신작로에서 크게 멀리 벗어나 있지 않았지만, 골목 입구에는 항상 소음을 일으키는 유리 공장이 있었고, 담 넘어 집에서는 피아노 치는 소리가 언제나 들려왔다. 하루 동안의 지루한 학교생활을 마치고 석양 무렵 귀가하는 발걸음은 무거웠으나,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길 입구의 유리 공장 앞에 쌓아 놓은 유리관들이 비끼는 저녁 햇살에 눈부시게 빛을 발하는 것을 보았을 때는 그 황홀한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려, 피곤함도 잊어버리고 어느 동화책의 주인공이 되는 듯한 느낌을 가졌다. 그리고 그 길 부근에 깨어져 늘 부러져 뒹구는 유리 파이프를 집어서 입에다 물고 나팔처럼 불 곤했다. 그 순간 나는 막다른 골목길 끝 앞집의 담 너머로 흘러나오는 피아노 치는 소리를 듣곤 했다.

당시 나는 여운이 긴 구성진 하모니카 소리를 좋아해서 그것과 닮은 풍금 소리에만 익숙했기 때문에, 맑고 우아한 피아노 소리의 아름다움을 쉽게 느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집에 머물고 있을 때 건너편 앞집에서 누군가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체르니 악보를 건반위에 쉴 사이 없이 누르는 소리를 낼 때, 그것은 마치 내 신경 줄을 망치로 때리는 것처럼 아프게 들렸다. 그러나 피곤한 학교 일과를 마치고 석양녘에 아무도 반기지 않는 나의 누추한 휴식처인 타인의 집을 찾아오는 길목에서 듣던 그 피아노 소리가 어느 날 갑자기 너무나 청아하게 들려와서 어지럽고 혼탁했던 나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는 것만 같았다. 겨울철 눈이 왔을 때는 더욱더 그러했다. 내가 머물던 그 집 건넌방에 6.25 때 이북에서 피난 와서 살던 화사한 여인 때문에, 어떤 사내가 며칠을 두고 밤마다 찾아와 괴로움에 못 이겨 담 곁에 서 있는 소나무 둥치를 잡고 몸부림 하다가 돌아가던 눈 오는 날이면 그 피아노 소리는 슬프지만 더욱더 맑고 아름답게 울렸다.

 

꿈을 꾸듯 꿈을 꾸듯 눈이 내린다

바흐의 미뉴에트

얼굴 환한 이웃집 부인이 오르간 치는 소리

 

그리하여 돌아갈 때는 되었다

모퉁이에 서서 가만히 쌓인 눈을 털고

 

귀기울이면 귀기울이면

모든 것이 눈을 감고 받는 소리

…………

제 돌아갈 때는 되었다

눈이 내리는 날 이웃집 부인이 오르간 치는 소리

고개 숙인 얼굴에 빛이 올라오는 소리

바흐의 미뉴에트                                             

                                                ─ 황동규, <엽서>에서

 

힘겹고 우울 했지만 생에 대한 의식이 ‘동터오던 여명기’에 투명하고 신비스러우며 환상적으로만 보였던 그 부서진 유리관 조각을 입에 물고 맑고 깨끗한 피아노 소리를 듣던 시절의 막다른 골목길 풍경은 우리 집이 점점 더 기울어져 내가 그 막다른 골목길에서 마저 추방되었을 때 끝이 났고, 그 낭만적인 순간은 뒤이어 밀려온 수많은 순간들의 퇴적 속에 흔적도 없이 기억 속 깊이 묻혀버리고 말았다. 다만 그 뒤 나는 석탄과 콜타르 냄새가 범벅이 된 철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곳으로 옮겨가 살던 어느 골방에서 문득 잠이 깨어 멀어져가는 기적소리 속에서 그 피아노 소리를 들으려고 애써 노력했을 뿐이다. 그 잊을 수 없는 순간의 경험은, 우리의 삶에는 피아노 소리와 같은 아름답고 우아한 절제된 음악이 있고 낙조落照의 햇살에 채색된 유리관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들이 있지만, 결국 그것 전부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서 허무로 끝난다는 것을 느낌으로 가르쳐 주지 않았던가.

 

그러나 무수한 세월이 지난 후, 얼마 전 고마운 그 누구의 도움으로 그 아름다웠던 순간들이 기억의 수면위로 떠오를 때, 그 유년시절의 경험들, 아니 그 후의 경험들 역시 없어졌던 것이 아니라 내 생애의 ‘전체에 걸쳐 계속 되면서 겉보기에는 더할 수 없이 평범할 뿐인 여러 해의 세월을 유별난 광채로 물들’여 왔던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이렇게 저문 강에 이를 때까지 ‘겉으로 보아온 세상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그것이 허물어지게 마련이니 그 아름다움을 절망적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육감을 통해 직관하게 되어, 그것을 알게 모르게 언어로 표현했다. 내가 젊은 시절 이국異國 땅에서 영국 시인 셸리가 쓴 “생은, 다채로운 색유리로 된 궁륭穹綠처럼/ 죽음이 그것을 파편으로 부셔버릴 때까지/ 영원한 흰 광휘를 물들인다.” 라는 시를 읽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것도, 어린 시절 그때 그 순간에 느꼈던 아름다운 경험이 적지 않는 울림으로 심금에 공명을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또 생의 슬픔에 대해서도 눈물 없이 침묵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아름다운 삶의 아픔을 맑고 우아하게 전음계全音階로 표현한 그 피아노 소리가 마음 속 깊이 남겨놓는 흔적이 보이지 않게 심리적으로 작용해왔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어린 시절 그 막다른 골목길 입구에서 후후 불었던 그 깨어진 채색 유리 파이프 조각들과 그 곳 담 너머에서 들려오던 피아노 소리는 프리즘처럼 슬프도록 아름답지만 공허한 허무로 끝나는 내 인생 전체를 물들이는 시간 속의 ‘작은 영원’이었던가. 내가 아픈 팔의 고통 속에서도 그 시인이 보내준 이태리 산 유리 공예 그림에 대해 아름답다고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 때 그 시절의 아름다웠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는 나의 삶의 ‘흰 광휘’를 채색으로 물들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