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집

 

배정인

 

 

작은 초가가 한 채 있었다. 외딴 오두막이었다. 어른의 가슴팍에도 채 못 미치는 키 작은 돌멩이 담장이 울타리 구실을 하고 있었다. 그 돌멩이들을 한발쯤 비집고 싸리나무 삽짝이 삐딱하게 서있었다. 일쑤 집은 비었다. 서산마루가 단정학처럼 정수리에 햇빛을 이고 아침나들이를 서둘 무렵부터 햇볕이 혼자 집을 봐야 하는 농가이던 것이다. 아들 하나 둔 가난한 부부는 늘 손이 달렸기 때문이다. 여느 집은 때로 이웃 노인네도 기웃거리고, 빈집에 남겨진 개구쟁이들이 술래잡기를 즐기느라 이 뜰 저 뜨락을 휘젓고 다니기도 하지만, 외딴 탓으로 그 집은 낮 내내 햇빛만 보듬고 있었다.

사립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그게 집안에 사람이 없다는 표시였다. 산 너머 절골 고개를 넘어오는 나그네들 중에는, 더러는 그냥 지나쳤지만, 사립문으로 다가서는 손님이 있었다. 빈집임을 길손인들 왜 모르랴만 대문께에서 헛기침 서너 번 하기를 잊지 않았다. 기척이 있을 리 없다. 길손은 스스럼없이 안으로 들어선다. 티끌 하나 없는 마당이다. 유월의 햇살이 은 금 빛 유리구슬을 굴리며 놀고 있는 뜰의 가장자리를 따라 툇마루로 다가간다. 장독대 그늘에 물동이가 놓였다. 동이에는 대발이 덮였고 그 위에 작은 박 바가지가 하나 엎드렸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냉수 한 잔이 꿀보다 달지 않던가. 긴 날숨 쉬는 그의 얼굴에 웃음이 벙으른다. 그는 곰방대를 빼어 문 채 하염없이 툇마루에 앉아있는다. 갈 길을 잊은 사람처럼. 그러는 길손을 탄하지 않는 집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혼자 애지중지하는 물건이 있기 마련이다. 어머니는 윤이 나는 까만 질그릇 동이를 유달리 아꼈다. 항상 씻고 닦고 다칠세라 조심했다. 샘물을 길어올 때에도, 물을 담아둘 때에도, 어머니는 그 동이를 썼다. 보기에도 엄청 무거운 그릇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성냥개비만큼이나 해깝게 다루었다. 정을 붙이면 비록 질그릇일망정 그렇게 호지나 보았다.

이른 아침, 들일을 나갈 양이면 늘 그랬다. 어머니는 그 까만 물동이를 깨끗이 부시고는 샘물을 가득 채워서 정지문 앞 장독대 가에 놓아두곤 했다. 대발로 동이를 덮고 그 위에 작은 바가지 하나 얹어두던 것이다. 햇볕이 도타와 지는 봄에서부터 한낮의 햇살이 따가운 가을에 까지, 들일로 집을 비우는 날은 한번도 그 일을 거르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은 누군가가 물 한 쪽박 떠 마신 흔적이 있었고, 어떤 날은 그나마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런 데는 별로 마음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다만, 물 마신 흔적이 있을 때는 흐뭇해 하는 미소를 엿볼 수 있었을 뿐이다.

어리던 나는 어머니의 그러한 애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언짢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맹목적이며 희생적인 노고를 아끼지 않는 그 심정을 짚어 헤아릴 재간이 없던 것이다. 설령, 어느 길손이 우리 집에서 물 한 모금 마셨다 하자. 그게 무슨 대순가. 어느 행인이 목마르다 하자. 그건 당사자 외 누구의 탓도 아니지 않은가. 하물며 어머니께서 책임 지셔야 할 일도 아닌 담에랴. 하루 이틀도, 한 해 두 해도 아닌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이 그러는 데에는 숨겨둔 무슨 말 못할 사연이라도 따로 있을까.

나는 나이 스물이 되어서야 그 까닭을 어머니에게 여쭤 보았다. 빈집에 삽짝은 왜 열어두며, 그토록 바쁜, 모심는 날에도 왜 물 한 동이 꼭 마련해 두어야 하는 지, 예사 그릇에 담아둬도 탓할 일이 아닌 터에, 굳이 당신이 아끼시는 까만 물동이에 새 물을 길어다 내놓는 까닭은 무엇이며, 그런다 하여 어머니에게 이문 되는 게 무엇이냐고, 그렇게라도 해야 할 무슨 연유라도 있으시냐고.

“이 집이 누구 집이냐?” 이 뜻밖의 반문에 한동안 우물쭈물하다가 나는 긴가민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머니두……그야 우리 집이지……”

“헛 나 먹었지. 대학을 읽으면 뭘 해.” 혀를 끌끌 찼다. 선문답 같았다. 나는 더욱 어리둥절할밖에 없었다.

“빈집에 대문이 닫혀있으면 사람이 어찌 들어올 수 있겠냐? 개 짐승이면 몰라도. 이 가근방엔 우물도 없고 인가도 한참을 가야 있는데 산을 넘어다니는 사람들이 목이 마르면 어쩌겠냐? 명색이 집이라고 하나 있는 게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다면, 그게 어찌 사람 사는 집이겠느냐!”

도시의 벽돌집에 살면서도 나는 왠지 가슴이 허허하여 까닭 모를 조갈증에 시달린다. 오늘도 발부리만 내려다보며 높은 벽돌담 아래 그늘로만 붙어 걸었다. 자꾸만 가슴을 걸어 잠그는 저 고대한 집들을 보면서, 어머님께서 하신 그 말씀을 슴슴히 울궈보고는 한다. 옛 성인의 말씀처럼.

 

 

월간에세이로 등단. 진주 수필문학회회장.

저서 《차 수필 짓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