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이미연

 

 

장마가 징검다리 마냥 쉬어가는 날, 일행은 강화도로 향했다. 버스 안의 승객은 북으로는 포천에서 시작하여, 중부지방인 충청도를 포함하여 남쪽으로는 전라도 전주와 경상도 진주에서 온 회원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

수필 문우회 허 회장님은 낭랑 18세인 송 선생님(실제 나이로는 팔십대)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계수회季隨會 권 회장님은 풋풋한 사십대인 회원들까지 오늘 온 수필 문우회 선생님들과 계수회원들을 일행 모두에게 알기 쉽고 특별하게 장단점을 소개하였다. 재미있는 소개로 한층 가까워진 일행은 초등학교 전교생이 소풍가는 것처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 소리들은 맨 뒤에 앉아 있는 내 귀가에 맴돌고, 서로 다른 억양의 목소리들로 만들어진 여행의 노래가 되었다.

역사박물관 앞 그늘아래 잠시 모여 앉았다. 문우회의 안살림을 맡은 변 총무님은 선생님으로 첫 부임지가 강화였음을 떠올리며, ‘나도 그땐 참 어렸었지. 그런데 내가 내일 모래 칠십이네’ 라며 웃으셨다. 변 총무님은 모임의 안살림 하기 힘들 때면, 한참 위의 연배인 김 명예회장님께 ‘선생님도 내 나이 되어 보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 텐데…’라며 애교 섞인 말을 했었다며 웃으셨다.

나는 이 모임에 나오면서 굳이 어른들의 나이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선생님들의 나이를 짐작하기도 어렵고, 마냥 젊게 사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나는 나이가 들수록 젊어지고 활동적일 내 모습을 상상하는 일이 즐겁기 때문이었다.  

강화군 초입에 위치한 풍물시장에 들렀다. 상인들이 옹기종기 파라솔 아래 인삼 막걸리, 순무김치, 새우젓, 밴댕이 젓갈들을 팔고 있었다. 일행 중 중 막내가 인삼 막걸리 한 병에 순무김치, 밴댕이 젓갈 무침을 앞에 두고 선생님들께 조금씩 대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여름날 장터중 하나인 봉평의 허 생원과 동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허 생원이 동행同行하는 동이가 왼손잡이인걸로 혈육일까 추측해 보는 것같이, 같은 길을 앞서가는 문우회文友會 선생님들과 뒤에서 따라가는 계수회 동료들을 보며 나는, 한 가족 같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광성보廣城堡에 잠시 머물렀다. 강처럼 보인다하여 염하라 이름 지은 강화해협江華海峽을 내려다보고, 여러 개의 돈대가 있는 광성 진보의 출입문인 안해루를 지나, 구석구석을 거닐면서 일행 여럿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때 어느 선생님이 이곳 비각을 보면서, 글의 소재가 될 만한 이야기를 건넸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 글이 재미있을 듯싶다고 맞장구를 쳤다. 여행지에서 좋은 생각들을 얻어가는 선생님이 부러웠지만, 발아래 펼쳐지는 경치와 선선이 부는 바람과 문우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 좋으니, 나는 그저 유람하는 선비이어도 좋았다.

강화 팔경중 하나인 연미정燕尾亭에 올랐다. 작년까지는 군사지역이라 출입이 통제되었던 곳이었기에, 여러 번 강화를 다녀간 나도 처음 온 곳이었다. 소개된 대로 시를 짓고 담론하기에 좋은 풍광을 지니고 있었다. 임진강과 한강이 정자가 있는 이 곳 앞에서, 합류하여 한 줄기는 서해로, 한 줄기는 강화해협으로 흘러가고, 연미燕尾는 두 갈래 물줄기 모양이 제비 꼬리와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었다. 달빛이 아름다운 이곳은 한강으로 들어가는 배가 잠시 쉬어갔고, 풍치를 더해주는 오백년 세월을 담은 느티나무가 정자 옆에 서 있었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고려高麗 고종이 학생들을 모아 면학하기도 했고, 조선朝鮮 인조 5년 정묘호란丁卯胡亂시 강화조약을 체결이 이루어진 곳이기도 했다. 중심에 정자가 있고, 주변에는 산성이 있는 것이 모두 지난 세월의 산물이었다.

이곳에서 고려 적 선비들을 떠올리며 단체 사진을 찍었다. 처음 온 일행은 어느 것이 바다고, 강인지 구분하기 어려워 딱히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런 와중에 해학이 넘치는 농담에 웃음이 터졌다. 작품에서는 한 없이 진지한 선생님들이 동행하며 보여준 따뜻한 배려에 일행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찼다. 우리는 달빛이 아닌 서로의 향취에 취한 모습이 한 장의 사진에 고스란히 담았다.  

길이 좁아 버스가 다니기도 힘들어, 일행이 우여곡절 끝에 마당에 들어선 곳은 이규보 선생님의 묘소였다. 오백년 고려문학의 정수라 불리는 선생님의 재실인 백운재白雲齋를 들러보니, 간략하게 적은 안내판 하나 있을 뿐, 마땅히 있음직한 문학관이 없어, 일행 모두는 놀랐다. 선생님의 생애나 업적에 비하여 후손들이 생각하는 마음이라 할 재실齋室의 마당은 일행 삼십 명이 들어서기에도 매우 비좁았고 협소했다. 백운재白雲齋에는 백 명百 名의 서생들이 구름처럼 모여도 부족하지 않을 공간이 필요할 듯싶었다.

시, 거문고, 술을 좋아해서 만년에는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란 불린 선생이지만, 호는 자신을 푸른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에 비유한 백운白雲이다. 시문집(동국이상국집), 시화집(백운소설), 설화(국선생전), 기행 산문 <남행월일기>, 주몽에 대한 서사시(동명왕편)등 작품이 있고, 과거시험에 시험관답게 글 작법作法에 대한 매서운 글들이 아직도 잘 남아있다. 그 글들은 이즈음 학생들 시험문제에도 잘 나오고, 변화를 좋아하는 젊은이들도 많이 읽을 만큼 지금시대에도 여전히 재미있다.

좋은 글의 묘미妙味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읽히고 사랑받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백운 선생님을 마음 깊이 기리고 옷깃을 여미었다. 그 글들을 못 잊는 이들이 바람결에 이곳을 찾으면, 백운선생님은 푸른 하늘의 구름처럼 그들을 맞이하리라. 이곳에서 오늘 여행의 두 번째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에 담긴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레이스 수필문우회 회원.

저서 : 《단감찾기》(공저), 《창으로 바라보는 풍경》(공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