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새미

 

이정하

 

 

발을 내디딜 때마다 푸석한 먼지가 일어난다. 항아리를 겨드랑에 끼고, 모녀로 보이는 두 여자가 붉은 황토길을 걸어간다. 그들을 따라 뙤약볕 아래 눈을 찡그리며 시야를 좁혀 간다. 웅덩이다. 그걸 우물이라 했다. 여러 명의 아낙과 아이들이 물을 퍼올린다. 누런 황톳물이다. 한 아이가 두레박으로 퍼올린 물을 자기 몸에 끼얹는다. 그 물이 웅덩이로 도로 들어가는데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주위엔 인가가 보이지 않는다. 저들은 어디서 왔을까?

어느 날 [김용범의 대륙탐험]을 텔레비전으로 본 풍경이다.

방학하는 날이었다. 방학책을 싸들고 엄마를 조른다. 들 가운데 여남은 채 초가들이 섬처럼 떠 있었다.  그곳에 외할머니 집이 있었다.

사방이 들판으로 싸인 그 동네는 바깥으로 나가는 길이 하나밖에 없었다. 우물도 하나밖에 없었다. 동네 입구에있는 그 우물은 누가 일러 주지 않아도 온 동네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겨울이면 우물은 바닥을 드러냈다.

우물을 지키는 아이가 있었다. 아침에 우물가에 나와서는 저녁때쯤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코를 많이 훌쩍이면서 집요하게 물을 퍼올리는 그 아이의 손은 갈라트고 볼도 얼어 발갰다.

“할무이 우물가에 매일 있는 아아가 참 불쌍해. 손에서 피가 나던데…”

“으응 저 안쪽 집 아인데 지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해도 막무가내란다. 엄마가 아프거든”

또래의 아이들은 우물 옆 빈 공터에서 둘씩, 셋씩 편을 갈라 고무줄 뛰기도 하고 자치기도 한다. 그 아이는 아무 놀이도 하지 않았다. 누구도 그가 자기 편이 되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양지쪽에서 코를 훌쩍이며, 물이 고이기만을 기다리던 그 아이가 두레박을 우물에 넣으면, 놀이에 빠져있던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잽싸게 달려왔다. 물이 채 바닥을 채우지 못했는데 두레박 대여섯 개가 빠른 춤을 춘다. 춤사위는 격렬하다. 반에 반도 안 차는 두레박이 바쁘기만 하다. 그러나 그 아이의 두레박은 무거웠다.

저녁때가 가까워지면 아낙들은 물동이를 들고 약속이나 한 듯이 우물가에 모여서는 한 무리를 지어 건너 마을로 물을 길러 가는 것이다. 물동이를 이고 논두렁 길을 따라 주런이 걸어가는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얼마 동안은 얌전하게 논두렁을 따라 다니는가 싶더니, 겨울이 깊어지면서 보리밭을 가로지르는 꼬불한 길이 이어져 갔다. 한발이라도 줄이려는 아낙들의 마음이 전에 없던 길을 만들었다.

할머니를 졸라 나도 물동이를 들고 따라 나섰다. 발을 디딜 때마다 물이 출렁인다. 반동이 물을 이고 울렁울렁 보리밭 길을 걸어와서는 물동이 밑바닥에 남은 물을 두멍에 쏟으면 파르르 떨던 어린 보리 잎이 여린 물빛에 조르르 흘러들었다.

물을 이고 오는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늘 외면하듯 하더니 그날은 살짝 웃었다. 처음 가본 집이었다. 집이 거뭇거뭇 했다. 불에 타서 그렇다고 했다. 한 밤중에 불이 났는데 물이 없어 얼른 끄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겉만 탄 것이라 했다. 천장엔 까만 서까래가 불에 탄 흔적을 안고 있었다.

그의 집 장독대는 그릇마다 물이었다. 큰 독에서 작은 사기그릇에까지 물이 그득그득했다. 방문이 열렸다. 할머니 한 분이 기어서 마루로 나오셨다. 얼굴보기가 흉했다. 가슴이 뛰었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꾸벅 절을 했다.

“니가 주무동 댁 외손녀가? 차암 예쁘게도 생겼네. 우리 인영이가 맨날 니 이야기만 안 하나”

그때 비로소 그 아이의 이름이 인영이라는 걸 알았다. 방학이 끝날 때까지 나는 날마다 그 아이와 이웃 마을로 물 길러 다녔다. 그때 난 그 아이의 유난히 긴 속눈썹을 봤다.

그 다음 해 방학부터는 외가엘 가지 못했다. 할머니가 외삼촌이 사시는 서울로 이사를 가셨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서 사막의 여인을 보면서 난 그 아이가 떠올랐다. 환하게 잘 웃지도 않던 그 긴 속눈썹이 그릇마다 담긴 물에 슬픔처럼 인화되어 나왔다. 한사코 우물 곁을 지키던 아이, 그토록 아금받게 물을 길어 올릴 때 그 어린 눈에는 무엇이 어렸을까. 어쩌면 아픈 어머니의 사랑을 그렇게 퍼 올렸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지금은 어디에서, 어떤 삶에 두레박질을 하고 있는지, 눈썹달처럼 궁금하다.

우물가가 텅 비어 있을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우물 속을 오랫동안 내려다보곤 했었다. 그렇게 보고 있으면 조금씩 솟아나던 물이 바닥에 차츰 고여왔다. 그것은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상상력의 호수에 접근하기 위한 의식 같았다.

나는 오늘도 조심스레 두레박을 내린다. 삶이라는 우물가에 서서 퍼 올리지 않으면 답답해지는 가슴 한 자락을 들치고 눈썹새미의 아침을 길어 올린다.

 

 

《계간수필》로 등단 . 경남수필 문학회원 진주 문인협회원.  

제 50회 개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