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조|명| 53회

 

박규환의

노인삼장老人三章

 

● 일     시 : 2008년 5월 17일

● 장     소 : 수필문우회 회의실

● 참석인원 : 13명

● 사     회 : 최병호

● 정     리 : 이경은

 

불안한 노인들

 

우리 집 앞 버스정류장은 출퇴근 때가 아니면 그다지 붐비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나 같은 노인에게 붐비지 않아 편리한 점도 있지만, 그 때문에 불편한 점도 없지 않다.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일정한 연세에 이른 노인들은 경로대상이어서 버스 무임승차의 특권(?)이 주어져 있는데도 이따금 이 특권이 무시되는 경우가 없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젊은 사람들과 같이 서있을 때라거나 때마침 그 정류장에서 내리는 손님이 있을 때는 염려할 것이 없지마는 나 같은 노인이 달랑 혼자 서있고 거기서 내릴 손님도 없을 경우는 이런 노인쯤 무시하고 그냥 내닫는 일이 없지 않고 보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그

래서 붐비는 정류장이 오히려 불안하지 않아 좋을 수도 있다. 외출이 그다지 잦은 편도 아니고 또 버스 값 정도의 잔돈푼에는 별로 궁색할 것도 없는, 나같이 꿀릴 것도 없는 노인은 토큰 몇 개쯤 비상용으로 언제나 지니고 있는데도 다만 외관상 노인이란 이유만으로 세워주지도 않고 달리는 버스에게 나는 여느 노인과는 다른 노인임을 알릴 재간은 없다. 그래서 젊은 사람과 같이가 아닌 고립무원孤立無援인 채 버스를 기다리는 노인은 항시 불안하다.

며칠 전만 해도 정류장에 외로이 서서 불안해하고 있는 판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 나이 또래의 노파 한 분이 더 늘었다. 그러잖아도 좌불안석坐不安席인데 이 노파의 출현은 아무래도 반갑잖은 일이다. 무임승차권자가 한 사람도 많은데 두 사람이나 서 있으면 내가 운전수라도 미풍양속만을 앞세울 수 있겠는가! 아무래도 버스가 멈출 확률은 줄어든 셈이다.

그러니 나로선 그 노파가 반가울 리 없고 얼핏 보기에도 셈에 빠를 것 같은 그 할망구인들 나 같은 영감쟁이가 반가울 턱이 없지 않겠는가! 내가 속으로 젊은 여자이기라도 했으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 걸 하고 아쉬워하는 동안 그 노파도 젊은 사람, 이왕이면 젊은 남자였으면 하고 생각했음직도 하다. 어느 모로 보나 다정할 수도 있고 반가울 수도 있을 것 같은 황혼 길의 늙은 남녀가 타율적인 경로가 빚은 결과로 선린善隣의 정을 서끌게 했음은 아무래도 유쾌한 일일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기어이 이 노파는 “버스가 서주지 않으면 어쩌지요?”하고 내게 물어 왔으나 나라고 그 물음에 냉큼 대답할 말이 없다. “그럼 못가는 거지요, 뭐.” 해놓고 노파의 표정을 살피는데 버스가 오고 쫓아오는 젊은 사람과 내리는 사람도 있어서 버스는 우리 앞에 서고 잠시의 불안과 의혹과 시기猜忌는 씻은 듯 대단원을 이루었는데 어찌 버스 타는 일일 뿐이리오. 이는 나날이 갖는 노인들의 하고많은 불안의 하나에 지나지 않다.

 

동문서답東問西答

 

수壽가 오복의 으뜸 자리를 차지했던 시대는 지난 것 같다. 70의 장수가 고래로 드물었던 인간만사고래희人間七十古來稀 지난날이야 수가 오복의 서열에서 맨 앞자리를 차지할 만도 했을지 모르지만 요즘이야 밭두렁에 개똥처럼 흔해 빠진 게 노인이고 보니 우선 희소성稀少性에서 찾아야 될 가치를 인정할 수가 없게 된 셈이다. 거기다 핵가족이라든가 하는 새로운 제도가 정착돼 가면서 노인의 설 자리가 좁아져 가고 있다.

내가 아는 노인도 핵가족 시대의 희생자임이 분명하다. 그는 두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회사원이란 말을 들었다. 재산이라곤 조그만 집을 한 채 가지고 있을 뿐인데 이 집이야말로 이 노인에겐 아비로서의 모든 권위의 원천이요 자식들에겐 그들 앞에 던져진 매력 있는 미끼임 즉도 하다.

처음엔 큰아들과 같이 살았으나 큰 며느리가 어쩌다 유산有産한 일을 두고 엉뚱하게도 시아버지를 모시기 때문이란 이유를 들어 그 매력 있는 미끼와 노인을 함께 버리고 저희들끼리만 방을 얻어 이사를 가버렸다. 노인과 유산과의 인과관계는 ‘동양철학’하는 분이나 알지 그 노인이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 이 노인은 할 수 없이 같은 미끼로 둘째 아들 내외를 불러들여 함께 살았으나 어찌된 일인지 둘째 며느리마저 유산하는 변고가 일어나고 보니 아무래도 마가 붙은 노인의 누명을 벗기 더욱 어렵게 되었다.

이번엔 작은 아들 내외가 이사를 나가겠다고 제안해 왔으나 노인은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고 반대했었다. 옥신각신 끝에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작은 아들 내외는 이미 트럭을 불러 이삿짐을 싣고 어디론지 나가 버린 뒤라 사양의 폐허에 서는 나그네인 양 지금은 혼자 외로이 살고 있다.

취사炊事를 어떻게 하느냐는 나의 걱정어린 물음에 얼마쯤 있다가 “밥이란 뜸이 잘 들어야…”하고 동문서답이다.

밥 짓는 데는 이골이 난 노인인가 보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내가 대답하기 난처한 물음을 던졌는지 모를 일이다.

 

파고다 공원

 

놀랍도록 많은 노인들이었다.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해서 공원이라기보다 노인 수용소란 느낌인데 자의인가 타의인가만 다를 뿐이다. 하늘엔 5월의 태양이 이글거리는데 짙은 나무그늘에 놓인 벤치마다에 무더기무더기 앉아 있다.

생각하면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어서 그 일분일초가 피처럼 아까운 세월일 텐데 ‘소일消日이란 이름으로 이렇게 보내야 되는 나날이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가! 그들은 한결같이 별로 대화가 없다. 발등을 밟힌다거나 담배 필 성냥이 필요할 때 같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되도록 말은 절약하기로 되어 있는 듯하다. 결국은 잃어야 될 대화이기에 미리 예행하는 것일까. 내가 이곳에 들른 것은 6.27의 일이라 그 전날 터뜨린 최루탄 냄새로 목이 아프고 눈물이 나긴 공원 안이라고 다를 바가 없지만 이미 그런 것쯤은 기정사실인데 새삼스레 화제에 오를 것도 없다.

앞으로 더 나아질 것 같지도 않은 세월, 그걸 이 공원에 앉아 탈 없이 보내는 것이 목적인데 뜻밖에 재수 좋으면 전경들의 방패로 파출소 앞에 뽑혀 앉은 행운(일당이 있겠으니)에 얻어 걸릴 수도 있고 앞으로 이 사업(데모)이 더욱 번창하면 이번엔 최루탄의 방패막이로 데모 군중의 전위대로의 발탁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여기선 경로敬老가 덕목으로 인정될 때만 안전하리라. 어물어물 하루 이틀 지나는 동안 6.29를 기해 독재에의 조종弔鐘같은 게 울려 퍼졌다. 재빨리 신문의 연재만화 〈고바우〉는 울면서 박수치는 ‘가스 마스크 도매상’으로 시국을 풍자했다. 바야흐로 호황을 맞는 데모계의 경기로 ‘산업예비군 격’인 이들 노인의 전망이 밝을 무렵, 뜻밖에 ‘직선제 개헌’이라니 아쉽지만 울면서라도 박수는 쳐야 되지 않겠는가!

 

 

 

사회: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계간수필》제 53회, 2008년 가을 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합평 할 작품으로는 박 규환의 <노인 삼장>을 골랐습니다. 노령화 사회가 길어져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고, 문학 쪽에서도 노령화 문학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늘은 지정토론자로 백 임현, 홍 혜랑, 정 진권 선생님 세 분을 모셨습니다.   

그러면 우선 박 규환 선생에 관한 초상을 백 임현 선생님께서 그려주시겠습니까?

백임현 : 지금까지의 합평회 작품은 대개 전 세대의 작고하신 문인들의 글이 많았었는데, 오늘은 최근까지 우리 수필문단에서 활동하시고 생존 시 가깝게 뵈었던 모헌 박 규환 선생님의 작품을 합평하게 되어 감회가 남다릅니다.

선생은 1916년 11월 15일 전남 구례에서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출생한 지 8개월 만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강보에 쌓인 아기는 두 사람의 유모와 누님들의 보살핌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지조 있는 선비로 소지주였던 부친은 어릴 때부터 한학을 가르쳐 학문의 기틀을 닦아 주셨고 특별한 보살핌으로 선생을 키우셨습니다. 선생은 동기들의 지극한 애정 속에서 유복하게 자란 편이었으나, 태생이 허약체질인데다 정서가 형성될 어린 시절에 어머니의 정을 모르고 자란 그 결핍감으로 심약한 성품이 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중학생 때 절대적인 보호자였던 아버님이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시게 되자 그 천붕지통天崩之痛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 대신 동생들을 돌보던 맏형님 또한 약을 잘못 써 실명失明으로 앓다가 47세로 세상을 하직하는 비운을 겪으면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삶과 죽음의 문제를 심각하게 천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분의 작품 전체를 관류하는 생과 사의 문제, 이것은 아마도 단명했던 혈육들의 운명을 체험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유학자儒學者로서 학문이 깊었던 부친으로부터 한학의 기초를 습득하신 선생은 구례의 광희보통학교를 거쳐 대구 계성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일본중앙대학 예과 및 경제학부를 역시 수석으로 졸업하셨습니다. 경제학을 공부하셨으나 어린 시절부터 가졌던 문학의 꿈을 버리지 못해 영어교사가 되었고, 후에 영문학교수로 조선대학교와, 전남대학교 문리과대학에 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영미소설, 영문 수필 등을 강의하셨습니다. 또한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번역서 G.R. 깃 싱의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사록私綠>. 존 스타인백의 <생쥐와 사나이들>, 토마스 하디의 <알리샤의 일기> 등 많은 번역을 하셨습니다.  

1949년 순천에서 여순반란 사건의 소용돌이를 겪었으며 1950년 조선대학교 재직 시 6.25 전쟁 와중에서 공산당에게 붙잡혀 모진 고초를 겪은 후, 건강을 잃었고 그 후유증으로 노년에 이르기까지 지병으로 고생을 하셨습니다.

1945년 2월 아홉 살 연하의 정 효순 여사와 결혼하여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박 선생님은 부지런하고 성실하여서 남에게 폐 끼치는 일을 아주 싫어 하셨다고 합니다. 아이들 학비를 보태기 위해 밤새워 번역 일을 하셨고 마당에는 닭을 많이 키워 달걀을 팔아 살림에 보태기도 하셨고, 수 백 개의 선인장과 화초를 가꾸어 인근에서 꽃집으로 소문이 날 정도였습니다. 자녀들은 선생이 매우 경우가 밝은 신사였다고 말하는데, 자녀들 뿐 아니라 선생님과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분이 겸허하고 어진 인품이셨으며 결곡한 선비풍의 학자였다고 입을 모읍니다. 1982년 정년으로 학계에서 퇴임한 후 1985년에는 전남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임용되셨습니다.

그러면 박 규환 선생님의 수필 세계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선생은 평생에 네 권의 수필집을 상재하셨습니다. 제2수필집 《이제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의 서문에서 선생님은 “수필 쓰는 일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내가 수필 같은 개성적이며 관조적인 인간성이 내포된 기지랄까 그런 문학의 본령에 참여하기엔 주저된다.” 고 겸손하게 말씀하고 있지만, 선생은 풍부한 식견과 해학, 호쾌한 문장, 그리고 넘치는 인간미의 아름다움으로 좋은 수필을 쓰는 분이셨습니다.

이 분은 70년대 중반 전남대학교 재직 시 대학신문의 편집국장, 출판부장을 하시면서 대학학보에 기고하는 수필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1976년 최초의 수필집 《파적담坡寂談》을, 1985년 전남대학교 명예교수 시절 《목련꽃 필 무렵》을, 1991년에는 《아직도 봄을 기다리며》를 출간하시여 1993년 현대수필문학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1995년 마지막으로 수필집 《이제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내셨습니다.

선생님은 50대 후반부터 장장 7년여를 신경염으로 기동을 못하시고 병상에 계셨습니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투병생활 속에서도 선생은 철저한 고독을 체험하며 고독과 친해져야 한다고 말했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공포 속에 사느니 차라리 화해하며 그 세계(그 세계에는 사랑하는 육친들이 먼저 가 있다)에도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달관의 경지를 수필의 여러 부분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환자로서 지내야하는 노년의 외로움과 애상哀傷, 주로 힘없고 소외된 노인들 세계가 수필의 화제가 되고 있는데, 그것이 궁상이나 탄식이 아니라 여유롭고 해학적인 문체로 이야기 되고 있어서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그러나 그 해학은 단순한 익살이 아니라 날카로운 풍자로 마무리되어 처음에는 웃다가 끝에서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 규환 선생의 풍자는 통일이니 역사니 애국애족이니 하는 거대담론이 아닙니다. 그런 거창한 문제들은 그런 일만 생각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며 시정市井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에서 세태를 꼬집는 인간미 넘치는 풍자로 수필의 격을 살리고 있습니다.

병상에서 신음하던 70년대의 수필은 주로 삶과 죽음에 관한 명제이고, 80년대의 수필은 세태를 풍자하는 글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92년 부인을 사별한 이후의 글은 상실의 아픔 속에서 뼈저린 외로움과 슬픔을 주조로 하며 부인에 대한 절절한 사부곡死婦曲이 지면을 채웁니다. 그 중에서도 <불광천변의 산책로>와 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모란을 개나리로 바꿔 끝을 맺은 <개나리가 피기까지는> 이 두 작품은 부인을 애도하는 불멸의 비가悲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숨진 어미의 젖무덤을 빨면서 애절하게 인생을 시작하여 평생을 병약한 몸으로 외롭고 슬프게 사신 박 규환 선생님은 88세(2003년)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지만, 누구보다도 맑고 깨끗한 영혼에서 비단실같이 아름다운 글을 쓰시어 깊은 감동을 주셨던 문학의 향기는 독자들의 가슴에 오래오래 살아 있을 것입니다.  

 

사회 : 사실 우리가 문학의 세계에서 작가를 알고자 할 때 거의 통시적인 자세로 작가의 개인사나 그가 소속된 사회사의 문맥에서 작가의 여러 가지 발상, 생성들을 구체적인 초상으로 그립니다. 이런 문학적 표현을 음악의 ‘변주(variation)’로 설명하면서, 변주가 능해야 문학성이 산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 백 선생님이 박 규환 선생의 초상을 아주 간결하게 잘 정리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다음은 홍 혜랑 선생께서 작품론을 말씀해 주시겠습니다.

홍혜랑 : 우선 문체를 보면 문장의 길이가 비교적 긴 것들이 많은데도 읽는 사람의 호흡이 편안한데, 어휘나 리듬이 구어체이기 때문이며 형식 없는 단순성에서 작가의 순수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작품의 내용을 보면 생활 속의 아주 작은 일화에서 시작되지만 예리한 통찰로 옮겨가는 전개가 독자를 긴장하게 할 만큼 그 차원이 평이하지 않아요. 본질의 문제를 건드리기 때문에 평범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신선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이 ‘노인삼장’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오늘날 한국의 노인들이 처해있는 슬픈 현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죠. 작품에 대한 문학적 담론은 다른 선생님들이 많이 해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저는 잠시, 왜 오늘날 한국의 노인들이 이토록 인간답게 살 수 없는지 노인문제 자체에 대해서 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흔히 서양의 문화는 개인주의요, 동양의 문화는 가족적이고 공동체적이라고 합니다. 일찍이 아놀드 토인비도 한국의 가족문화, 특히 대가족제도는 세계를 향한 수출품이라고 감탄한 적이 있지요. 오늘날 부모에 대한 효 문화가 한국에서처럼 강조되는 곳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노인삼장은 ‘불안한 노인’을 넘어 불쌍한 한국노인들의 초상입니다. 한국의 노인이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오히려 서양보다 더 인간다운 대접을 못 받고 살고 있다면 분명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노인들의 불안감은 경제적 이유에서 오기도 합니다. 오늘날 선진복지국가에서 노인들의 경제적 문제를 국가가 상당 부분 해결하듯이, 한국도 머지않아 복지사회로 접어들면 노인들이 어느 정도 궁핍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국노인들의 행복과 서양노인들의 행복은 그 차원을 달리 합니다. 서양인의 핏속엔 수천 년 동안 개인주의 문화가 켜켜이 굳어있습니다. 그들 노인들은 의식주만 해결되면 그런대로 여생을 평화롭게 영위해 갈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로 치면 그들은 장난감만 있으면 혼자 노는 것에 아주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한국인은 노인들뿐만 아니라 누구나 혼자 사는 것에 서툰 것 같아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적인 정情에 항상 목말라 있는 사람들이 한국인입니다. 동창회다 친목회다 무슨 무슨 모임을 사람마다 수십 개씩 달고 사는 것이 한국인이지요. 한국인에게 혼자 산다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오늘날 핵가족문화로 인한 노인의 소외는 한국의 가족문화에 떨어진 직격탄입니다. 오늘의 텍스트인 ‘동문서답’에서 보듯이 핵 가정으로 인해서 생긴 노인세대의 소외가 서구사회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생존조건이야 밖에서 충족시킬 수 있지만 가슴 속의 고독은 국가의 복지정책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인간본연의 실존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박 규환 선생은 그의 작품 <고독의 변>에서 노인의 고독을 무인도에 비유했더군요.

 “갈매기마저 외면하는 것도 아니고 스쳐가는 화륜선이나 범선이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여전히 무인도가 고독한 것은 그냥 존재할 뿐, 아무런 사명도 갖지 못하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무인도가 고독한 것이라면 그 이상의 사명도 존재가치도 인정할 수 없는 노인의 고독은 당연한 것일 수 밖에 없다.”

참으로 동감이 가는 비유입니다. 혼자 있어서 고독한 것이 아니라 아무런 사명도 존재가치도 없기 때문에 고독한 것이지요.  

박 규환 선생의 해학은 단순히 웃기는 해학이 아니라 세상의 부조리를 희화화하는 재기가 번득입니다. 그러나 저는 역설적으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해학은 오히려 생래적 고독에서 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고독한 사람은 세상과 세류에 합류하지 않습니다. 아니 합류하지 않기에 고독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고독한 사람은 언제나 세상 밖에서 세상을 관조하고 통찰하는 예리한 눈을 갖고 있지요. 그것이 풍자의 자산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의 글은 아내와 사별하던 1990년을 기점으로 해학과 풍자의 글에서 슬픔과 정한情恨의 글로 바뀐다고 평자들은 말합니다. 이미 여러 해 동안 투병생활을 하던 아내를 병간호하며 삶과 죽음을 관조하는 작품이 바로 그의 세 번째 수필집의 제목이기도 한 <아직도 봄을 기다리며>입니다. 아내를 병간호하는 남편의 고달픔과, 삶의 길고 짧음이 그리 문제되지 않는 것 같은 인생의 달관이 독자에겐 오히려 슬프게 다가옵니다. 그러던 아내가 지병으로 3년 9개월 만에 끝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내가 떠나고 한 달 되는 날 아내와 함께 걷던 산책길을 밟으며 쓴 글이 유명한 <불광천변의 산책로>입니다.

아내를 잃은 슬픔과 외로움을 추수릴 수 없는 마당에야 해학의 작가나 비감의 작가가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그 밖에도 <목련꽃 필 무렵>, <지팡이 애상> 등 해학의 작가가 쓴 것 같지 않은 애상의 작품들도 있습니다. “박규환의 수필에서 해학, 풍자, 정한, 고독은 지류에 지나지 않으며 본류는 슬픔”이라고 말한 이 정림씨의 평은 그래서 나온 듯합니다.    

 

사회 : 노령화 사회의 출현과 함께 문학 쪽에서도 막연히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했는데, 명 강의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정진권 선생님께서 작가의 작품 전체를 종합해서 아울러 말씀해 주시지요.

정진권 : 저는 박 규환 선생을 가까이서 뵌 일이 없습니다. 단 한번 선생이 ‘현대수필대상’을 받고, 그 수상 소감을 말씀하실 때 멀리서 들은 일이 있을 뿐인데, 그 내용은 다 잊었지만 그 말씀이 재미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선생의 수필을 몇 편 읽었고, 따님 박 경주 선생의 책에서 아버지에 대해 쓴 글도 읽었습니다. 또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은 바로는 선생은 선량한 심성, 높은 인품, 자상한 정, 힘들 때도 잃지 않는 유머 등을 두루 갖춘 노교수의 모습으로 늘 내게 다가옵니다.

이 글에는 노인과 관련된 이야기가 세 편 들어 있어요. 한 편씩 살펴보면, 우선 ‘불안한 노인들’ 은 ‘나날이 갖는 노인들의 하고 많은 불안’의 한 사례로서 버스가 그냥 지나가면 어쩌나 하는 무임승차 노인들의 불안을 그린 것입니다. 지은이는 ‘나’와 같은 불안을 느끼는 또 한 사람의 노파를 등장시켜, 무임승차권자가 둘이 되어서 서로 없으면 버스를 탈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질 텐데 생각하는 거죠. 정말로 ‘어느 모로 보나 다정할 수도 있고 반가울 수도 있을 것 같은 황혼 길’의 남녀 노인들인데, 어쩌다 서로 없었으면 하게 되었을까? 불안한 노인, 슬픈 노인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음은 ‘동문서답’입니다. 이 글은 두 아들 내외에게 버림받고 혼자 사는 노인의 외로움을 그린 겁니다. 큰며느리와 작은며느리가 홀시아버지를 모셔봐야 별 볼일 없을 것 같아 집을 나가는 내용인데, 핵가족 시대의 노인네들의 슬픔이 느껴집니다. “밥이란 뜸이 잘 들어야…….” 라고 동문서답을 하면서 이 노인네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 뜸 잘들이던 마나님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외로운 노인, 슬픈 노인의 모습입니다.        

끝으로 ‘파고다 공원’인데, 이 글은 파고다 공원에 모이는 노인들의 이런저런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우선은 너무 많아 공원이 온통 노인수용소 같다는 거죠. 천덕꾸러기란 말이 절로 떠오릅니다. 그들은 그 ‘피처럼 아까운 여생’을 별 뜻 없이 소모합니다. 참 딱한 모습이죠. 서로 간에 이렇다 할 대화도 없으니 외로운 모습이고, 재수가 좋으면 전경들의 방패로 뽑힐 수도 있다니 이런 가여운 모습이 또 어디 있을까요? 지은이는 데모가 더 극성해지면, 이번에는 거꾸로 일당 두둑이 받고 최루탄의 방패막이로의 발탁도 기대할 수 있을 거라니 참으로 불쌍한 노인, 슬픈 노인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행복하게 말년을 보내는 노인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글에 등장하는 노인들은 전혀 아닙니다. 불안한 노인, 외로운 노인, 불쌍한 노인 등 모두 슬픈 노인들입니다. 이 수필은 지은이의 해학과 풍자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해학과 풍자로 하여 슬픈 노인들의 그 ‘슬픔’이 더 짙게 전달되는 듯합니다. 해학과 풍자. 특히 해학은 박 규환 선생의 한 기질이 아닌가 싶어요. 선생은 부인이 돌아갔을 때 ‘덕택에 나는 아내의 부양책임에서 벗어난 자유인’이 됐다고 했습니다. 슬픈 해학이죠. 이렇게 말할 때 선생은 아마 겉으로는 웃고 속으로는 울었을 것입니다.    

 

사회 : 지정토론자들께서 넓고 깊고 활발하며, 완벽에 가깝게 많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인간 박 규환, 작가 박 규환의 초상이 잘 그려진 토론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회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변해명 : 박 경주 선생이 쓴 작품 중에서 <합방>이 있는데, 외딸로 아버지 박규환 선생의 사랑을 많이 받다가 결혼을 해서 시댁에서 의외의 대접을 받는 것 같자, 어깨 너머로 보살펴 주시면서도 내색을 안 하시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어요. 저는 상당히 점잖은 선비적인 모습과 인품의 문제만 생각했는데, <노인삼장>을 다시 읽으니까 노인의 개인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늘어나는 모든 노인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첫째 이야기를 보면서 “이 노인네가 참 고집스럽고 못됐다.”라고 생각했거든요. 버스를 기다리면서 남자분이 도리어 이웃에 있는 할망구하고 스스럼없이 얘기할 수 있는데, 들은 척도 안하고 등을 돌리고 있거든요. 그런 것을 보면 박 선생님이 선비적인 분이시고 말이 적고 소심하며, 내성적인 분이 아니신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글에서는 어디까지나 꼿꼿한 대쪽 같으신 모습이 드러나 보입니다.

둘째 이야기에서는 한국의 모든 노인들이 평생을 바쳐서 키운 자식들이 다 이럴 것이라는, 최근의 버림받는 노인의 ‘현대판 고려장’에 해당되는 이야기를 현실적인 감각으로 이렇게 다른 표현으로 쓴 것이 아닌가 해요.

셋째 이야기는 노인들이 젊었을 때 최선을 다해서 이 나라를 세워놨는데, 이제 노인이 되니까 파고다 공원에 수용소처럼 갖다 놓고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고, 도리어 최루탄 앞에 세우는 것을 상당히 ‘도전적인 입장’에서 이 글을 쓰신 것 같습니다.

김채은 : 저는 40대에 한 세 번 정도 뵈었습니다. 아주 두뇌가 명석하고 아는 게 많고, 천성적으로 사물을 예리하게 관찰하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수필을 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읽으셨는지 제 글을 읽고 평을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두 번째 뵈었을 때는 제가 “이 다음에 선생님의 글은 반드시 노인 문제와 함께 한국문단에서 아마 특별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 드렸더니, 웃으시면서 “그때 가서 좋은 이야기를 해 줘야 돼.” 하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세 번째는 약간 힘들게 보이실 때였는데, 재주가 있고 재미있는 느낌을 주는 분들과 존경심이 드는 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게 아닌 가하고 느꼈지만, 바로 그런 점이 박 규환 선생의 문향을 이루는 바탕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민정 : 저는 박 선생님의 <아직도 봄을 기다리며> <이제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다> 두 권을 다 읽었습니다. 저도 한 번 뵌 적이 있는데, 자그마한 체구에 이렇게 수줍어하시는 분이 어떻게 이런 유머러스한 글을 쓰시나 항상 궁금했었거든요. 그런데 앞의 세 분의 지정토론자의 말을 들으면서 아, 그렇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김영만 : 이 분은 ‘수필 공원’을 중심으로 글을 발표해서 알려졌던 분인데, 본격적으로 수필을 쓰신 것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이 수필 작품은 우리 한국 노인들이 가지고 있는 ‘슬픈 현실’을 형상화 하는데 기교면에서 상당하신 것 같습니다. 그전의 작품 여러 편에서도 느꼈습니다만 이 분 수필의 90%가 ‘노인’에 관한 것이고, 상처를 한 뒤의 슬픔이 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초기에 보였던 위트나 해학, 풍자가 상처한 뒤에 오히려 가려지는 데, 이 분의 기량이 그 뒤에 한 곳으로 치우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한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작품 소재가 한 곳에 치우쳐 있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함께 생각해 볼 만한 문제입니다.

조한숙 : 이 수필을 읽으면서 이 분은 “노인은 노인인데, 나는 노인이 아니다.”라는 시각으로 쓰신 것 같아요. “나같이 꿀릴 것 없는 노인은……”에서 노인을 객관적이고 관조적인 시각, ‘제 3의 눈’으로 보았어요. 노인을 예리한 통찰력과 냉소적으로 썼다고 느꼈습니다. 버스 기사는 바로 사회적인 대우를 나타내고, 노인 소외를 통해 유쾌하지 못하고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유감스러운 점을 썼습니다.

지난 번 영국 기행 중 영국의 노인들을 참 많이 보았는데, 가만히 관찰해 보니 그 분들도 상당히 외로워하더군요. 사회적 보장을 많이 받아도 친구도 없이 혼자서 외롭게 식사하는 모습들을 보며, 세계 어디나 노인 분들이 외롭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김녹희 : 저는 해학과 풍자가 조금 느껴지긴 했지만, 그보다는 ‘노인이 이렇게 불쌍하고 슬프고 초라하구나.’ 싶었습니다. ‘나의 앞날에도 이런 것만 기다리고 있겠구나.’ 생각하면서 많이 우울했어요.

특히 “되도록 말은 절약하기로……결국 잃어야 할 대화이기에 미리 예행하는 것일까.”라는 구절이 가슴에 와 닿았고, “앞으로 더 나아질 것 같지도 않고……공원에 앉아 탈 없이 보내는 것이 목적이다.”라는 데 나이 많은 사람은 다 이런 것이 아닐까 했어요. 그 동안에는 제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제는 기쁜 일이 뭐가 더 있겠나. 이제는 나이가 들어가니까 제 몸만 생각하고, 이 상태를 유지하는 거 아닌 가 했었습니다. 박 선생님이 노인은 무인도인데 그냥 존재할 뿐 사명이 없기 때문에 슬프고 외로운 것이라고 했는데, 저는 오늘 그 해답을 얻었습니다. 노인이 존재 가치와 사명을 찾을 때 희망과 발견의 생활을 얻지 않을까 하는….   

박영자 : 저는 초기에 박 선생님을 뵈었는데, 그 분의 ‘인간미’에 녹아들었습니다. 영국의 찰스 램의 경우도 글보다는 그의 인간성―결혼도 하지 않고 끝까지 여동생을 돌보는 그의 아름다운 인간성이 좋았거든요.

선생님의 글에는 대개 기다림에 관한 게 많아요. 한때는 너무 진부하고, 슬프고, 넋두리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조금 수필의 맛에 눈을 뜨게 되니까 아, 작품은 바로 이렇게 써야 되는구나. 이 작품의 문장이 길고 출렁거리면서도 하나도 진부하지도 않고 노래를 하는 것 같은데, 이유가 뭘까? 그건 사물을 다각적으로 나의 눈에서 보고, 너의 눈에서 보고, 제 3자의 눈에서 보면서 그것을 한 번도 이렇게 해야 된다 저렇게 해야 된다는 말이 한마디도 들어가 있지 않은 데에 있는 것 같아요. 노래하듯이 써 내려가면서 사회를 비평하지도 않으면서 쓰신 박 선생님을 존경하게 됩니다.  

김채은 : “나같이 꿀릴 것이 없는 노인은…….”을 그대로 잘못 들으면 어떨지 모르지만, 잘난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존심이 강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일반적인 노인들의 비참함을 보이기 위해 쓴 글입니다.

조한숙 : 그렇지요. 자존심이 강한 걸 나타낸 거죠.

백임현 : 저는 견해가 좀 다른데요. 노인이라는 것 때문에 모든 노인이 이 사회에서 일괄적으로 취급당하는 것을 그린 것이라고 봅니다. 내가 토큰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라, 늙어서 노인이 되면 이렇게 일괄적으로 당한다는 것을 나타낸 거라고 봅니다.  

 

사회 : 그러면 마지막으로 회장님께서 총평을 해 주시지요.

허세욱 : 저는 이 분을 뵌 일이 없고 글만 읽었는데, 대체로 이 선생님의 상배한 이후의 작품을 많이 읽었어요. 그런데 그때 작품은 비교적 단조로워요. 하나는 ‘상실의 고독’과 ‘노인의 애상’의 두 가지 소재와 주제로 나눌 수 있는데 좀 단조롭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리고 나도 늙어서 저렇게 슬프게 말할까 하는 반감도 있었어요. 좀 의젓하게 늙어야겠는데.

제 입장을 밝히면 저는 한평생 중국 문학을 했지만 노신魯迅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유머는 참 좋은데 풍자나 냉소의 단계, 서양 사람들이 이걸 satire(풍자)라고 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폭이 보이질 않아서요. 늙으면 인간의 폭이 좀 보여야 하거든요. 그래서 공자가 논어에서 “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善. (새가 죽으려 할 때에는 그 울음소리가 구슬프고, 사람이 죽으려 할 때는 그 말이 선하다)”라고 하는데 참 좋은 얘기이죠. 포용도 하고 용서도 하구요.

이 글은 우선 ‘구성’이 좋습니다. 주제는 완전히 ‘노인 문제’인데 그 무대가 셋으로 나뉜 게 좋아요. 하나는 거리에서, 그 다음은 가정에서, 마지막은 정치가 밀물하는 파고다 공원에서입니다.

성공한 수필을 보면 늘 끝까지 묘사나 서술이나 기록으로 시종始終을 하는데, 감동이 몇 배나 가거든요. 그런데 이 분의 이렇게 좋은 구성과 좋은 주제에 간혹 그런 관념적인 해석이 나와요. 가령, “황혼 길의 늙은 남녀가 타율적인 경로가 빚은 선린의 정을 이끌게 했음은 아무래도 유쾌한 일일 수 없다.”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매우 칼럼이 돼버렸거든요. 그리고 “버스는 우리 앞에 서고……어찌 버스 타는 일뿐이리오.”라며 분노를 재삼 터뜨렸어요. 그냥 그 앞에서 멈췄으면 노인의 심리묘사가 얼마나 예술적으로 잘 묘사가 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 다음은 냉소에 가까운 얘기인데 가령, “밭두렁에 개똥처럼….” 같은 것은 아프죠. 그냥 ‘천덕꾸러기’로 했으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역시 좋은 글은 묘사나 서술로 끝까지 몰고 가야지요, 굳이 비평이나 냉소 같은 것을 넣음으로써 글을 칼럼화 시키거나 마지막에 강조를 넣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세 분의 지정토론자께서 본격적인 자기 분야 이외의 것을 천착을 하신 것은 아주 금상첨화였습니다.

 

사회 : 오늘 여러 가지로 심층 있게 합평을 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면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