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길 교수의 철학에세이③|

 

편 가르기에 골몰할 때인가

 

김태길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는 말은 강도 높은 비난의 뜻을 담고 있다. 의리義理의 덕을 숭상하는 우리나라의 정서를 배경에 깔고 있는 이 속담은, ‘인간 쓰레기’에 버금가는 욕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 편이오?” 이 말도 의리 없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자주 사용된다. ‘편’은 이미 갈려져 있는 상태이며, ‘당신은 당연히 내 편을 들어야 마땅하다’는 전제도 깔려 있다.

개혁의 의지가 확고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즉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 한편이 되어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에는 분명히 일리가 있다. 개혁의 의지가 없는 사람과 함께 개혁을 도모한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 우리는 그 ‘개혁’의 핵심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누가 과연 확고한 개혁의 의지를 가진 사람인가도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개혁’의 핵심은 불합리한 현실을 합리적 방향으로 돌리고, 불공정한 사회를 공정한 사회로 바꾸는 데서 찾아야 마땅하다. 따라서 개혁의 의지가 확고한 사람으로 평가되기 위해서는 일당一黨 또는 ‘나’ 개인의 이익보다도 나라와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숭상하는 도덕적 의지가 확고해야 한다. 자신과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을 위하는 마음이 나라 전체를 위하는 마음보다 앞서는 사람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개혁의 주역으로는 부적합하다.   

여기서 우리는 “성현이나 군자가 아닌 이상, 나와 내가 속해있는 집단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공통된 심리가 아니냐” 하는 반문을 예상할 수 있다. 인간의 심리가 본래 자기중심적 구조를 가졌다는 사실을 망각한다면, 우리들의 주장은 오로지 공허할 뿐이라는 상식을 지적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현 또는 군자가 아니더라도 나라 전체를 ‘나’ 또는 ‘나의 집단’보다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원대한 안목으로 크게 계산할 때, 나라 전체를 먼저 생각하는 편이 나 자신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는 대답을 얻을 경우가 많은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현실이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한국은 지금 위기도 될 수 있고 기회도 될 수 있는 흥망의 역사적 기로에 있다고 보는 것이, 생각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견해가 아닐까 한다.

잠시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바라보라. 우리나라 주변에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가 진을 치고 기회를 노리고 있으며, 더 먼 곳에는 미국과 유럽의 열강이 팽팽하게 도사리고 있다. 그들은 모두 우리의 우방이 될 수도 있지만, 경쟁국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고 보아야 한다. 약육강식의 역사가 끝나는 날이 언젠가는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설마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눈앞에 보이는 자질구레한 이해관계를 계산하며, 그 날 그 날을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놓여 있는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볼 때, 세계사적 좌표座標 위에 나타난 한국의 그림은 결코 낙관을 허용할 정도로 안이한 것이 아니다. ‘설마’나 우연에 일임하기에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절박한 편이며, 우리가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들 개개인과 우리들의 후손의 운명이 결정된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알기 쉽게 말하면, ‘나’ 자신과 나의 가까운 자손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우리는 나라부터 살리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끼리 편을 가르고 눈앞의 이익을 위하여 흙탕물을 튀기며 싸우는 것은, 결코 나라를 살리는 길이 아니다.

정치나 경제, 학문과 예술, 언론과 교육 등 각 분야에서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일수록, 즉 사회적 지위가 높아서 영향력이 강한 사람일수록, 공선 사후公先 私後의 원칙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말로만 나라를 위할것 아니라 실천으로써 나라에 봉사해야 한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일수록 마음이 너그러워야 하거니와,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은 편 가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조무래기들은 모이면 편을 가른다. 그러나 어른스러운 부모는 편을 가르지 않는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아들만을 귀여워하는 부모는 어른스러운 부모가 아니며, 공부 잘 하는 아이만 예뻐하는 부모도 어른스러운 부모가 아니다. 어리석은 부모는 자식들의 편 가름을 조장하고, 슬기로운 부모는 융합을 조장한다.

한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어른스러워야 하며, 누구보다도 너그러워야 한다. 어른스럽고 너그러운 대통령은 결코 주민을 쪼개어 편을 가르지 않는다. 후보 자리에 있었을 때는 그에게도 내편과 네 편이 있었다. 그러나 일단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뒤에는 편 가르기의 사슬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 자기에게 투표한 사람들의 호의를 오래도록 고맙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의 개인적 미덕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감사의 심정이 국민의 편 가르기로 이어진다면, 그는 아쉽게도 실패한 대통령으로서 역사에 남을 것이다.

국민 측에서도 대통령에 대하여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대선大選 당시에 내가 지지하지 않은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더라도 그를 ‘우리’의 대통령으로서 아껴주어야 한다는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투표에서는 비록 내가 지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일단 대통령으로서 당선되면, 그는 우리가 대국적 입장에서 지켜주어야 할 우리들의 대통령이다. 국민들 가운데에서도 언론과 학계 또는 종교계에 종사하는 지도적 계층의 인사들은, 특히 이 점에서 성숙한 시민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