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론 통신

 

정호경

 

“내 고향 특산물인, 싱싱하고 맛이 좋은 멜론이 하도 탐스럽고 맛이 있어 보여 조금 사서 택배로 보내면서 선생님 댁으로 전화를 했더니 받지를 않아 서울 가셨나 하고 휴대폰으로 전화합니다.”

 

“서울 간 김에 친구들도 만나고 이런저런 일도 보고 하다 보니 시일이 걸려 보내 주신 멜론이 아무도 없는 집에 가서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앞집 아주머니가 저녁 무렵 직장에서 돌아와 보니 우리 집 현관 앞에 웬 짐이 놓여 있기에 수취인 주소와 이름을 확인한 다음 자기 집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고 휴대폰으로 알려 줘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어제 서울에서 여수로 내려와 집에 들어서자 앞집에서 그 과일 박스를 받아 열어 보니 시들지 않고 싱싱한 그대로였습니다. 천릿길을 다섯 시간 동안이나 버스에 흔들리며 오느라 배가 고파 당장 하나를 깎아 먹어 봤더니 아직 덜 익었는지 단맛이 속살에까지 배어들지 않아서 무 씹는 맛이었습니다.”

 

나는 즉시 황지님에게 과일 선물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화로 하려다가 잔잔하고 얌전한 문장으로 정겹게 써서 전하려고 이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짤막한 서너 줄의 이런 답신이 왔다.

 

“그러시다면 바로 잡숫지 말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사나흘 뒤에 끄집어내어 깎아 잡수세요. 저도 그렇게 하니까 달콤하고 맛이 좋았습니다. 참외는 처음부터 달지만, 이 멜론은 그런 과정을 거쳐 서서히 맛을 내는 과일이라고 합니다.”

 

며칠 뒤 나는 두 번째 편지를 보냈다.

 

“황지님의 말대로 멜론을 며칠 동안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깎아 먹어 보니 살이 익어 사각사각하면서 달고 맛이 있었습니다. 꼭지를 떠나면서 바로 단물을 쏟아내는 성질 급한 수박과는 다른 과일인 모양이지요. 그래서 저는 맛본 대로 꾸미지 않고 솔직하게 말한 것뿐입니다. 오랜 동안의 수필 쓰던 버릇인가 봐요. 하지만, 보낸 사람은 일껏 선심 쓰고서도 괜히 마음을 상하지 않았나 싶어 걱정이 됐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더구나 심약한 여자 분에게 예의도 모르고 내가 너무 철없는 소리를 했구나 싶어 보낸 이메일을 취소하려고 얼른 열어 보니 다른 때는 보통 3, 4일을 쉽게 넘기더니 이번에는 웬일로 하루 만에  ‘읽음’ 도장이 꽝 찍혀 있었다.

아직 익지 않은 멜론 맛을 무 씹는 맛에 비유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나는 황지님의 상했을지도 모를 마음을 풀어 드리기 위해 얼른 말을 돌려 엉뚱한 이런 내용의 편지를 또 보냈다.

 

“글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며칠을 두고 생각하며 두 번 세 번 지우고 고치면서 잊어버리고 묵혀 두었다가 두 달이나 석 달 혹은 1년 뒤에 다시 끄집어내어 읽어 보면 그것이 농익어 구수한 냄새를 풍기면서 맛이 들어 있지 않습디까.

매사가 다 그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폭 삭아 농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고요. 그래서 저는 이번에 보내 주신, 덜 익은 멜론을 먹으면서 뜻 밖에 글쓰기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참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황지님이 아니라 덜 익은 멜론에 대해서 말입니다.

다음에는 이번과는 달리 잘 익은 멜론을 시험 삼아 한 번 더 보내 보세요.  먼 거리를 트럭에 실려 흔들리며 오는 동안 살이 물러서 어떤 맛을 내게 될지 궁금해서 그럽니다. 하지만, 물가가 껑충 뛰어 오른 요즘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안 들은 것으로 해 주세요. 개뿔의 값어치도 없는 연구보다 우선 먹고 사는 일이 더 급하니까요.”

 

제법 유식한 말에 싱거운 농담까지 섞은 편지를 띄워 보냈더니 곧 답신이 왔다.

 

“내일 새벽에 친구들과 함께 몽골 구경하러 떠나기로 했으니 1주일 뒤 돌아와서 이번에는 잘 익은 놈을 한 박스 사서 보내겠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보내는 멜론 값은 보내 주셔야 합니다. 좋은 글쓰기의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서라고 하셨지만, 이는 선생님의 속 들여다보이는 잔꾀임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제가 보낸, 덜 익은 멜론 덕분에 수필 한 편을 횡재하셨다니 ‘꿩 먹고 알 먹고’를 하셨네요. 만수무강하십시오.”

 

수필은 시나 소설과는 다르다. 문장이 간결하면서 그 색깔이 무당집 안방  장식처럼 어지럽고 야단스럽지도 않다. 그리고 괜히 공자나 소크라테스를 앞세워 어렵고 유식하게 꾸며 놓고 목에 힘 줄 필요도 없다. 내 글에 내 생각을 말해야 좋은 내 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며칠을 두고 묵힌 멜론과 같이 농익은 맛이 나도록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이번 뜻하지 않은 과일 선물을 통해 새삼 느낀다. 수필 쓰기는 어려우면서도 쉽고, 쉬우면서도 참 어렵다. 괜한 녀석에게 섣불리 달려들었다가 한평생이 고달프기만 하다. 이것도 내 팔자소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