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설움

 

이동렬

 

 

서울에 있는 어느 상담소에서 초등학교 4-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질문지 조사를 따르면 아빠에 불만을 가진 학생들이 75퍼센트에 이른다고 한다. 이것은 엄마에 대한 불만(69퍼센트) 보다 많은 수치이다. 아빠 엄마 둘 중 누구를 더 좋아하느냐는 질문에는 반이 넘는 학생들이 엄마를 더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호기심으로 한국에서 발간되는 수필 전문지 3가지 중에서 지난 2년 동안 아버지에 대해 쓴 수필이 얼마나 되는가 찾아봤더니 고작 6편 밖에 되질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수필은 아버지의 4배가 넘는 28편이 되질 않는가!

내가 읽어 본 아버지에 관한 수필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중국 작가 주자청朱自淸이 쓴 <아버지의 뒷 모습>이라는 번역 수필이다. 너무 감동스러워 2, 3번을 읽었다.

어린이들이 부르는 동요에는 아빠에 관한 노래가 얼마나 될까? 내가 가진 <동요 1200곡 집>을 뒤져 보니 제목이 엄마에 관한 것은 20곡이나 되나 아빠에 관한 것은 단 2곡뿐이었다. 이번에도 엄마의 KO승!

패배에 패배를 거듭하며 이번에는 내 서재에 꽂혀 있는 3권의 대중가요 백과사전들을 뒤져 보았다. 아버지를 주제로 한 노래는 4곡뿐인데 비해 어머니는 12곡이나 되었다. 또 아버지의 참패.

아침에 출근을 해서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만 하다가 해가 지면 돌아오는 불쌍한 아버지-. 생각은 깊으나 표현을 하질 않아서 그렇지 아이들 걱정도 어머니만큼은 하고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데 온 힘을 다한다. 그러나 ‘장구치는 놈 따로 있고 고개 까딱이는 놈 따로 있다’더니 아이들에게서 받는 성적표에서 우등상은 항상 어머니 차지다.

자식 사랑에 있어서야 아버지고 어머니에 무슨 더하고 덜하고가 있겠느냐는 것을 일러주는 소설로 40여 년 전에 읽은 소련의 문호 튜르게네브(I. Turgenev)의 <아버지와 아들>이 생각난다. 거의 다 잊어버리고 지금 생각나는 것은 소설의 마지막 장면, 즉 노 부부가 서로 부축하며 죽은 외아들 바자로브(Bazarov)의 무덤을 찾아가서 갑자기 가슴을 찌르는 듯한 처절한 통곡을 터뜨리던 장면이 생각난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이제 어머니의 시대는 가고 아버지의 시대가 오는 기미가 엿보인다. 요사이 어머니는 지난 세대의 어머니와 다르다. 구멍 난 양말을 꿰매는 어머니도 없고, 음식을 자식들에게 만 먹이고 당신은 거짓 속이 쓰려 못 잡수시겠다는 어머니도 없다. 집에서 먹는 것 보다는 밖에 나가서 맛있는 것을 많이 사주는 엄마가 최고다. 오늘은 계契 모임, 내일은 동창회, 글피는 이민 가는 친구와 냉면 먹기로 한 날…. 어머니의 일년 365일이 바쁘다. 체중을 줄이기 위해 헬스 클럽에도 가고 눈썹 밑 잔주름 제거를 위한 성형 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계도 하나 들었다. 요새 와서 손 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는 어머니는 시대착오적인 어머니가 되고 있는 인상이다.

아이들 얼굴만 서로 마주치면 ‘공부해라’ ‘공부’ ‘공부’란 말을 염불처럼 되뇌는 어머니. 그래서 아이들 중에는 소위 ‘방어적 과過 성취 현상’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 방어적 과 성취 현상이란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지마는 그 노력의 이유가 공포감이나 열등감에 대한 자기의 불안을 이겨나가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비록 큰 업적을 남긴다 해도 행복감을 느끼기는 어려운 사람들이 된다.

나는 앞으로 ‘능력본위’를 신주처럼 신봉하는 이 명박 정권에서 아버지 평가제도를 실시하고야 말 것 같다. 대학의 강의 평가 같이 가정에서도 자식들로부터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평가를 따로 따로 실시해서 평가 성적이 수준 이하인 사람은 마치 부동산 투기 의혹 누명을 쓴 사람처럼 장관이나 국무총리 자리에는 못 오르게 할 것 같다. 아버지는 피곤하다.

 

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현재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 명예교수.

현대 수필문학상(1998년).

저서 : 《꽃피고 세월가면》, 《바람 부는 들판에 서서》 외 4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