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

 

박종숙

 

오래전부터 학부형들에게 문학에 대한 이야기 들려주고 싶어 하던 이 교장은 어느 날 날짜를 잡았다고 연락을 해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꿉친구라는 점에서 쾌히 승낙을 하고보니 그와 가까웠던 두 친구와 함께 길을 떠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새로 출판한 내 수필집을 학부모와 교직원들에게 나누어줄 요량으로 자동차 뒷 꽁무니에다 싣고 이른 아침부터 물어물어 정선을 향했다. 그곳에서 나는 훌륭한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친구의 의젓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수필을 쓴다는 내 말을 듣고도 금방 그 자리에서 “이분은 시인입니다” 하고 소개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의 황당함이란……, 지금도 수필과 시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싶어 그것을 설명할 기회가 온다면 어설픈 상식으로라도 불모지에 수필을 심겠다고 다짐해 왔었다. 강원도의 오지라고 믿었던 정선 사북초등학교에서 그런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학부형 중 한 사람만이라도 문학에 관심을 쏟게 된다면 먼 길을 찾은 보람이 있는 셈이다.

이 교장은 강의가 끝나자 근처에 있는 카지노장에서 고급성찬을 베풀어 주었다. 그곳은 지금도 주변 여러 곳에서 리조트 빌딩이 올라가고 임부들이 정원을 손질하느라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밤이면 루미나래의 화려한 경관이 둘려진 곳에서 오색 분수가 춤추는 광경을 볼 수 있으니 폐광촌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만난 셈이다. 사북 주민들의 90%가 그곳에서 생업을 꾸려가고 있을 만큼 대단한 수입원이 된다니 낙심해있던 한숨은 언제 그랬느냐 싶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게임장안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인파가 북적거렸다. 돈 놓고 돈을 먹는 사람들이 구경꾼들 앞에서 100만 단위의 지폐를 아무렇지도 않게 건넨다. 우리는 그 놀라운 세계를 훔쳐보며 사방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정신이 멍먹해 졌었다. 머신기계에다 지폐를 넣어준 친구에게 본전을 빼줄 수 있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도망치듯 카지노장을 나와 화암동굴로 향했었다. 동굴 내부는 그새 많이 바뀌어져 있었다. 채광작업을 하던 탄광촌의 모습을 재현해 놓아 다른 동굴과 차별화를 보여주었다. 지하 10m까지 이어진 까마득한 계단을 조심성 있게 밟아 내려가면 금광맥을 캐던 장비와 시설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여러 가지 종유석과 석순도 자라고 있다. 그곳에서 나를 요지부동하게 만든 것은 바로 석화였다.

빙화처럼 수정 같이 맑은 꽃, 바다 속 산호처럼 어두운 동굴 안에서 생명의 불꽃을 튀기며 피어난 꽃! 고화되지 않은 퇴적물에 새로운 물질이 얽히면서 탄생된다는 석화를 본 나는 경이로움에 두 눈이 동그래졌었다. 캄캄한 바위틈에서 투명한 꽃을 피워낸 그 아름다움이 정선 아우라지 땅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카지노 문화와 조금도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세상을 창조해 나간다는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다. 최초에 달나라 여행을 꿈꾸었던 아폴로의 발사나 맞춤형 인간을 만든 게놈지도, 또는 복제양의 출현도 과학에 대한 도전이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사례들은 많지만 정선 오지에 들어선 카지노가 사북지역에 문화의 꽃을 피웠다면 화암동굴에 피어난 석화는 생명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사물에 애정을 보내지 않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것도 눈에 들어오지를 않는다고 한다. 그동안 여러 번 동굴 답사를 했건만 석화를 만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놀라움, 그것도 햇빛 한번 바라볼 수 없는 돌무지에서 마음을 소통하고 애정의 물결을 흘려보낸 기적을 보았다고나 할까. 서로 다른 퇴적물이 결합하여 새로운 암석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꽃이 핀다는 석화는 신의 섭리를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하물며 사람들이 살고 있는 우리 사회는 어떤가. 뜻이 다르고 목적하는 방향이 다르다고 이질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네가 영원히 죽어야 내가 산다는 논리로 가득 차 있으니 한심하지 않는가. 어쩌다 우리는 바위만도 못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곳곳에 널려있는 이기심을 본다. 전국의 오락 마니아들을 불러들여 수많은 인파를 북적이게 만든 카지노가 지역경제의 주원이 되었다면 동굴 속의 석화도 생명이 없는 물질에 생명의 꽃을 피운 도전이었던 것이다.

우리를 안내해 주던 이 교장은 귀빈을 맞은 듯 소꿉친구들에게 정선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보여주려 애썼다. 해가 질 무렵 스키장으로 해서 아우라지 민속촌을 돌아 마을을 바라보며 정선 읍내로 내려온 우리는 콧등치기로 저녁을 먹고 어두운 산굽이를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오래된 친구는 잘 익은 술과 같다고 했던가. 친구 덕에 호강을 하고 벽촌에다 수필이랑 우정의 씨앗을 듬뿍 심고 돌아온 나는 진정 수필 불모지에 생명의 꽃망울을 터질 수 있게 만든다면 석화처럼 수필의 꽃도 활짝 피울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었다. 이 교장 같기만 한다면 소외된 환경에서도 정을 나누는 석화가 필 수 있듯이…….

 

 

《수필문학》으로 등단.

현재 춘천문인협회 회장.

수필집 《호수지기》, 수필선집 《노을이 타는 강》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