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덕

 

 

갓 배달된 조간신문을 느긋하게 펼쳐든다. 오롯이 내차지이다. 예전엔 꿈도 못 꾸던 즐거움이 아닌가. 남편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를 섭렵하고, 아이들은 휴대전화기를 통해 원하는 정보를 받아 본다. 아직도 아날로그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신문 쟁탈전을 벌이지 않아도 되는 이즈음이 참 좋다.

오늘 신문에선 서울대생들의 도서대출 기사가 흥미롭다. 지난해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여된 책은 《공중그네》라는 일본소설이라는 것. ‘오쿠다 히데오’ 라는 작가가 쓴 책인데 ‘아오키상’ 수상작으로 국내에서도 이미 60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나도 읽은 적이 있다. 작년 여름 병원 신세를 지고 있을 때 조카딸이 병문안 오며 들고 왔었다. 동맥을 천공해서 지혈용 압박 틀에 묶여 있어야 했는데 그 순간에도 끼득끼득 웃으며 일독했을 만큼 마음을 끌었던 책이다. 웃기가 죽기보다 싫은 사람이 아니면 다 읽을 때까지 손에서 놓지 못할 것 같은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름이 ‘이라부’라는 한 괴짜 뚱보 정신과 의사의 환자 치료기이다.

그는 무겁고 중후한 분위기를 뿜을 것 같은 외모와는 다르게 정신 연령이 다섯 살 아이와 흡사하다. 정신과 의사라는 사람이 지적 분위기와는 담을 쌓았으며 의학용어는 도대체 쓸 줄을 모른다. 환자 앞에서 꼭 저능아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뾰족한 물건에 공포를 느끼는 야쿠자 환자에게 주삿바늘을 들이대는가 하면, 장난치면 절대로 안되는 자리일수록 더 장난이 치고 싶어지는 증세의 환자에게 함께 장난을 치자고 부추긴다. 누가 환자인지 누가 의사인지 병을 고치겠다는 건지 더 악화시키겠다는 건지 도무지 헷갈린다. 헤어질 때면 응석어린 말투로 “또 내일 와”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환자들의 변화다. 이런 상식에서 벗어난 의사의 언행과 말투에 자신도 모르게 "네, 내일 뵙죠." 약속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엔 ‘웃기는 놈’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던 환자들은 이라부에게 점점 끌리게 되며 신기하게도 병이 호전되어 갔다.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 공중그네를 타는 서커스 단원은 직접 찾아가서 외근이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그래서 더 매력적인 의사 이라부를 만나 실컷 웃는 동안 엔돌핀이 생긴 덕분인지 나도 경과가 좋아져서 예정보다 빨리 퇴원을 하게 되었다.

그 아래 기사는 다가오는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할 우리나라 양궁 대표팀에 관한 기사다. 우리 대표팀은 한창 건설되고 있는 베이징의 양궁장을 답사하고 일찌감치 조감도와 배치도를 확보해 두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매년 올림픽이 열릴 시점에 맞추어 그곳을 방문하여 경기장 주변의 날씨 상태, 풍향과 풍속 등을 면밀히 관찰해 데이터를 축적해 오고 있다 한다. 전 세계 양궁협회의 공식의제가 ‘어떻게 하면 한국선수 전부를 4강에 못 오르게 하는가?’ 라 하니 우리나라 양궁실력은 명실상부 세계 최고라 할 수 있겠다. 과녁의 정, ‘텐’ 점 위치에 부착된 카메라 렌즈를 세 번이나 맞추어서 ‘퍼펙트 텐’이란 말을 만들어 낸 것도 우리선수들이지 않은가.

양궁에서 과녁의 한가운데를 골드(Gold)라고 한다. 여기를 맞추면 ‘텐(ten)’ 즉 10점 만점을 받는다. 이 만점을 얻기 위해 궁사들은 보통 사람들은 엄두도 못 낼 강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담력을 키우기 위해 어린 선수들이 뱀을 목에 두르고 다니는가 하면, 심박 수 220의 한계치에 하루에도 세 번이나 다다르게 하는 강훈련도 한다. 가장 혹독한 훈련은 침묵과 고독 훈련. 기온이 높은 여름날을 택해 하루 12시간씩 5일간을 혼자 걷게 하는데, 5일째 되는 날을 맞으면 궁사들은 내면의 모든 감정들이 탈진해 거의 무념의 경지에까지 이른다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제어를 가능케 하는 훈련인 셈이다.

이런 훈련들이 무사히 끝나야 궁사들은 비로소 활을 잡고 텐을 향하여 살을 날리는데 놀랍게도 그 승패 여부는 오조준에 달려 있다 한다. 무작정의 정조준은 텐을 맞출 수가 없다. 화살을 과녁에서 멀리 벗어나게 할 뿐이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라는 변수를 살펴 그만큼의 오조준을 해야 텐에 명중할 수 있단다. 말하자면 궁사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표적이 아니라 표적 주변의 움직임인 것이다.

신문을 덮으며 생각하니 의사 이라부의 치료법과 궁사들의 명궁 법이 서로 닮아있다. 이라부는 불안증에 떠는 환자들을 치유하기 위하여 배운 대로의 정공법을 벗어 버렸다. 권위와 규범을 던져 버리고 텐의 방향이 아닌 엉뚱한 방향에서 환자에게 접근한다. 야쿠자인 척하며 환자의 맞수를 만나기도 하고, 공중그네에 매번 실패하는 서커스단원을 위해서는 100킬로그램의 육중한 몸으로 공중그네를 타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환자들은 진심으로 자기를 이해하는, 자신과 친근하고 정직하게 소통하는 한 인간을 발견하게 되고 정신에 살이 오르면서 병이 치유되는 것이다. 텐을 얻기 위한 궁사들의 오조준을 지혜의 산물이라고 하면 의사 이라부의 엉뚱함도 역발상의 지혜이다. 고정관념의 틀만 벗어 버리면 외려 더 지혜로운 치료법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세상을 과녁 삼아 시위를 당기며 텐을 얻고자 한다. 아니 텐이 되고자 발버둥 친다. 허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이든가. 오조준을 정조준 해야 텐을 맞추는 일은 경지에 이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라 안의 수재들이 모였다는 서울대에서 의사 이라부를 찾는 학생이 그토록 많았다는 것도 ‘텐’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또 한 가지 노력이 아니었을까. 세상살이의 달인이 있다면 한 수 묻고 싶다.  어느 때 어떤 방향으로 살을 쏘아야 텐을 맞출 수 있느냐고. 세상의 과녁에서 몇 걸음이나 비켜나 살아야 텐을 얻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