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수고

 

박현정

 

 

아마추어 합주 모임의 정기 연주회를 공원 안에 있는 야외무대에서 하기로 일정을 정했는데, 연주회를 며칠 앞두고 그 날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다. 연주회 날 비가 온다는데 어쩌느냐고 단원들이 한 번씩 염려의 말을 내게 건넨다. 나는 그 해 총무를 맡은 입장이어서 며칠 전부터 일기 예보가 맞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한 번씩 걱정이 지나간다.

정기 연주회를 야외에서 하는 것은 관객이 드문 탓이다. 실내의 공간을 빌려서 하면 정말 잘 알고 애정을 지닌 이가 아니면 오는 경우가 드물어 연주회 분위기가 더 썰렁한 것을 경험한 모임에서 되도록 야외 공간에서 오가는 사람의 마음을 붙잡아보려는 심사이다. 아무래도 야외에서 해야 모르는 이들에게 모임을 알리는 효과도 있고 한 사람이라도 관객으로 더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야외활동하기 좋은 때에 연주회 일정을 잡게 되는데, 이번에도 가을의 막바지에 애써 정한 날 비가 온다는 예보를 들은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모여 기악으로 음악 연습을 하고 일 년에 한 번씩 정기 연주회를 갖는다. 그것은 남보다는 단원들을 위하는 측면이 있다. 누군가는 관객도 별로 없는데 복지관에 가서 봉사 연주할 때에 정기 연주회를 같이 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일 년 동안 공부했으면 우리를 자축하는 자리이기도 한데 그럴 수는 없다는 말에 모두 수긍했다.

처음 연주회를 할 때는 처음이라는 설렘과 기대 속에 각자의 가족들을 초대했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나고 보니 음악이 일상이 되어 연주회가 뭐 새로울 것도, 남다른 것도 아닌 것으로 가족들의 관심도 멀어지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자니 관심 있는 이웃들을 초대하게 되는데 사람들이 바쁘기도 하고, 제 나름의 관심사가 아니면 쉽게 반응이 오지 않는다.

지난해 동인지를 만들기 전에 회원들이 낸 전체 원고를 집에서 혼자 읽고 있는데 마음에 한 가닥 슬픔이 파고든다. 사람들은 정성을 다해 쓰고, 잡지에 발표한 후 다시 비용을 들여 책을 만드는데 이 수고와 가치는 누가 얼마나 알아줄까 하는 생각이 든 탓이다. 무심한 세상에서도 이렇게 써야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하는 막연하고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연주회를 준비하면서도 그런 비슷한 기분에 잠시 아득해진다.

그러나 남이 알아주는 것보다 자기만의 가치가 있고 하지 않을 수 없는 뭔가 있기에 사람들은 글을 쓰고 음악을 할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황폐해지지 않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며, 마음과 생활을 가꾸며 지켜야 하는 자존심 같은 것인가. 손에 잡히지도 보이지도 않는 무엇을 위해 애쓰는 동안 간간이 찾아오는 공허감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아마 그것은 허상의 세계에 마음 하나를 내주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감수해야 할 대가인지도 모른다.

역지사지의 입장으로 돌아보면 나는 타인의 수고에 일일이 답하고 살아가는가. 누군가의 성취를 보고 그의 뒤에서 이루어졌을 숱한 노력은 간과하고 겉으로 보이는 매끈한 모습에만 부러움과 시샘을 보낸 적은 없는가.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수고한 사람들의 혜택 속에 살아가면서도 공기처럼 모든 것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세상에 부족한 것은 기적이 아니라 감탄이라는 말처럼 관심 없다는 이유로 무심히 지나쳐버린 일들은 얼마나 많을까. 그래서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 함께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눌 그 사람이 소중한 것이다. 또 어떤 세상을 헤맨 후에 그런 이들을 만날 것인가. 나도 타인도 그렇게 남들의 수고와 나의 수고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리라. 각자는 자기의 세상에서 자신의 몫을 감당하면서 자신을 위한 일이 남에게 기쁨이 되기도 하고, 남을 위한 일이 뜻밖에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하면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요일 오후, 예정된 연주회가 시작된다. 날씨는 아직 괜찮다. 한 번씩 흐린 구름이 몰려오는가 싶지만 비는 오지 않는다. 원형으로 된 야외의 객석에 관심 있거나 심심한 사람들이 머물고 연주는 진행된다. 한 곡의 연주를 마치면 박수 소리 속에 환호하는 이도 있고 떠나는 이도 있다. 연주회 후반 무렵 예보되었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야외무대에 지붕이 있어 악기가 비에 젖는 일은 없지만 지붕과 노천 사이에 서서 지휘하는 지휘자의 어깨 위로 비가 소리 없이 내려앉는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휘하고 우리도 날씨와 상관없이 약속된 연주를 한다. 야외무대의 객석 뒤에 서있는 나무들도 비에 젖고, 자리에 앉은 사람들 위로 크고 작은 갖가지 색깔의 우산이 펼쳐진다.

연주회는 끝났다. 바람이 더 강해진 듯하면서 비가 내린다. 연주회를 위해 준비한 음향 기기들과 피아노며 의자 같은 것들을 가져가기 위해 도와주는 분들이 빗속을 다니며 분주하다. 단원들은 시작할 때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이라고, 그래도 잘 마무리되어서 좋다고 웃는 얼굴로 이야기하며 제각기 악기를 싸며 안도한다. 그리고 서로 뭔가 아쉬운 듯 잠시 머뭇거리며 서 있다가 다음에 만날 날을 한번 확인하고는 다시 일상을 향해 빗속의 풍경 속으로 걸어간다.  

 

 

《계간수필》로 등단(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