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박은서

 

 

꽃집에서 배달이 왔다. 직사각형의 꽤 큰 상자 하나. 쪼르르 달려 나가 상자를 건네받은 딸아이는 약간 긴장한 표정이다. 리본을 풀어 상자를 여니 ‘i ♡ you’모양에 따라 장미가 촘촘하게 박혀있다. 순간 상자 속에 꽁꽁 갇혀있던 장미향이 얼굴에 쏴아 번졌다. 꽃 주변은 온통 색색의 사탕으로 장식되어 눈을 어지럽혔다.

어젯밤, 늦게 귀가한 딸아이가 방문을 노크했다.

“엄마, 자?”침대에 걸터앉은 아이는 남자친구가 주소를 물었다며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다음 날이 화이트 데이라며, 남자친구가 여자 친구에게 사탕을 선물하는 날이란다. 아이는 아무래도 선물을 보내려고 그러는 것 같다면서 연신 웃었다. 여고를 졸업한 후 처음 맞는 화이트 데이라 기대가 큰가보았다. 아이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재재거렸다.

늦잠을 즐겨 자던 아이가 일찍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었다. 불현듯 전날 밤 아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행여 잘못 짚은 건지도 몰라 적나라하게 내색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눈치가 엿보였다.

마주앉아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흘깃 아이의 표정을 살피니 나름대로 속내를 숨기느라 안간힘을 쓰는 게 역력하다. 식탁을 대충 치우고 찻물을 올린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장미상자가 배달 온 것이었다. 아이는 쑥스러운지 별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능청을 떠는데 나만 정성이 깃든 선물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긴 상자 속에서 앙증맞은 모양으로 향기를 뿜어내고 있는 꽃을 보고 있으니 장미의 합창이 들려오는 듯 했다. 부러움에 들뜬 음성으로 말했다.

“엄마도 이런 선물 한 번 받아봤으면…….”

“정말?”

아이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순간, 기발한 일을 잘 저지르는 아이가 행여 엉뚱한 일을 벌일까봐 걱정이 됐다.  

“이런 선물은 사랑하는 사람한테 받아야 더 감동적이겠지?”

언젠가 딸아이가 생크림 케이크를 사온 적이 있었다. 케이크를 먹으며 나름대로 고마움을 표시한답시고,

“난 생크림 케이크가 제일 맛있더라.”

했다.

그런 일이 있은 얼마 후였다. 벨소리에 현관문을 열었더니 불쑥 케이크 상자를 안겨주는 게 아닌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머리로는 빠르게 짚어보았다. 혹시 가족의 생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게 아닌가하고. 하지만 아무리 날을 꼽아 봐도 생일은 아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생일도 아닌데 웬 거니?”

“엄마 생크림 케이크 좋아하잖아?”

그 순간 무심코 했던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해준 딸이 한없이 고마웠다. 그 후, 특별한 날이거나 까닭모를 우울에 빠져있을 때면 으레 케이크를 사 들고 오는 아이. 그럴 때 아이의 얼굴은 활짝 핀 장미 같았다.

곧이어 아이는 남자친구에게 문자를 날렸다. 연거푸 터지는 신호음을 뒤로한 채 짙은 장미향이 폴폴 풍기던 상자는 딸아이 방으로 옮겨졌다.

 

 

(계명 전 박용화)《계간수필》로 등단(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