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인사

 

권민정

 

 

오늘은 거의 60도 각도이다. 아파트 경비실 앞을 지날 때마다 경비아저씨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는 어머니가 오늘은 더 공손하게 하신다. 어머니와 나란히 걷던 나는 조금 당황한다. 팔순 노인은 인사를 하는데 젊은 나는 그냥 지나쳐서다.

“어머니는 뭘 그렇게 고개까지 숙이며 인사를 해요?”

머쓱해서 나는 한마디 한다.

“고마우니까 하지.”

어머니는 경비를 잘 서주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해 주는 경비원이 고맙다고 하신다.

작년에 팔순을 지난 어머니는 오빠와 같은 아파트 단지 안, 가까운 거리에서 혼자 사신다. 일주일에 한 번 나는 어머니께 간다. 어머니와 밥 한끼 같이 먹고 놀다가 돌아오는데 식사는 주로 외식을 한다. 어머니가 오래 전부터 살던 아파트라 같이 걷다 보면 아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 청소하는 아주머니, 세탁소 주인, 이웃 사람들, 그들과 만날 때마다 어머니의 인사는 늘 공손하다.  

오늘 어머니가 인사하시는 것을 보다가 어릴 때 생각이 났다. 결혼 하기 전 나는 절을 참 많이 했다. 어머니는 당신 자녀들에게 절을 많이 시키셨다. 집에 손님이 오시면 우리 형제는 손님에게 무릎을 끓고 절을 했다. 방학 때 친척집에 가면 어머니는 먼저 어른들께 절부터 드리라고 시키셨다. 며칠 집을 떠날 때나 돌아왔을 때는 먼저 부모님께 절부터 했다. 어머니에게 절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인간이라면 예禮를 지켜야 하며 절은 그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고 어머니는 생각하신 것 같다.

어머니는 당신이 자라면서 부모님께 배운 것을 당신 자녀들에게 가르치셨다. 그러나 나는 내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시대 탓도 있지만 내 마음속에 그런 형식을 무시하는 마음이 더 강해서일 것이다.

나는 결혼 한 후 절을 차츰 잊어버렸다. 절은 설날 아침, 내 생일 날, 부모님 생신 때만 하는 특별한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집에 손님이 오셔도 아이들에게 절을 시키지 않는다. 아이들은 손님에게 잠간 얼굴을 비치고 ‘안녕하세요?’ 하고 고개를 꾸벅 하며 인사를 한다. 아이들이 집을 떠나는 일이 있으면 우리 부부는 아이를 안아주며 ‘잘 다녀와.’ 하고, 다녀오면 ‘잘 다녀왔니?’ 하며 한번 안아주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데, 형식 속에 정신이 깃든 것일까? 어머니보다 내가, 나보다 내 아이들이 어른을 공경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거나 남을 배려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적다. 점점 더 자기중심적으로 되어가는 것 같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은 훌륭하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를 보며 본인에게는 꼭 그것이 좋은 것일까 하고 생각에 잠기게 되는데, 어머니의 역지사지易地思之하시는 마음이 당신을 더 외롭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새색시 때부터 시부모 모시고 한집에서 살았고, 장수하셨던 할머니를 끝까지 봉양을 하셨다. 아침 문안 인사 드리는 것과 밤에 이부자리 살피는 것은 당연한 일과였다. 어쩌면 성가시기까지 한 그 일을 항상 진심으로 할 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여겼고 그 행동 속에 어머니의 마음도 있었다.

어머니는 당신의 시부모를 그렇게 봉양했는데, 정작 자신은 팔순이 지난 지금까지 자식과 함께 살면서 봉양 받는 것을 거부하신다. 신혼 때부터 재미있게 살라며 아들 넷을 다 분가 시켰기에 이제 나이 많아 새삼스레 합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 십 수년 동안 어머니는 혼자 사신다.

“한 집에 살면 너의 올케도, 나도 불편하다.”

어머니가 나에게 늘 하시는 말씀이다.  

여름이 되어 해가 길어져 아직 바깥은 환한데, 어머니는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돌아가라고 나를 재촉하신다. 식구들 저녁 준비하고,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오기 전에 빨리 가라는 것이다. 아이들도 다 컸고, 남편도 저녁 한끼 밖에서 해결하라고 하면 된다. 그러나 사위 저녁밥 때문에 어머니의 염려는 더 커지고, 나는 결국 어머니 재촉에 할 수 없이 집을 나온다. 어머니가 따라 나서신다. 건널목이 있는 길까지 어머니는 따라 나오신다. 그 곳에서 나와 헤어지는 것이다. 신호등을 건너고 돌아보면 어머니는 빨리 가라고 손을 흔드신다. 지하철역 입구까지 걸어가며 몇 번을 돌아보면, 연세 들어 더 작아지신 어머니가 이쪽을 바라보며 그 곳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서 계신다.

잠시 후, 내가 보이지 않으면 어머니는 집을 향해 발길을 돌리실 것이다. 아파트 경비실 앞을 지나며 또 공손하게 인사를 하시는 어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계간수필》로 등단(2004).

파랑새 상담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