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완료

 

연주회와 장신구

 

김효남

 

 

얼마 전 연주자를 위한 무대용 장신구를 협찬할 기회가 있었다. 피아노 독주곡 2개가 연주될 예정이어서 장신구도 목걸이 하나와 브로치 하나를 염두에 두었다. 이 곡들은 일반인의 귀에 생소한 현대적인 작품으로 간결한 것을 좋아하는 나의 장신구 성향과도 맞을 것 같았다. 음악을 들으며 연상되는 것을 장신구에 담는다는 접근이 신선했다. 또 일반 장신구에 담기 어려웠던 실험적이고 대담한 것도 허용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번 연주회의 피아니스트는 나의 고등학교 동창이다. 그 친구는 학교 다닐 때부터 이미 피아노와 깊숙이 친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사춘기의 불완전함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시인의 딸답게 문학적, 예술적 끼로 가득했다. 같은 반이었던 2년 동안 늘 뒷자리 근처에 가까이 앉았지만 그녀와 친했다고 하기도 어려웠고 무심한 관계라고 하기도 애매했다. 분명한 건 서로간에 개성과 자존심이 강했다는 정도일 것이다. 대학 때와 그 후에도 몇 번인가 만났지만 흐지부지되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3년 전, 졸업 30주년이 되어 다시 만났다. 그 때 그 친구에게 막연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무엇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긴 세월을 되짚어 한참을 골똘히 생각해야 했다. 그것은 어린 시절, 짐짓 강해 보이고 때론 저돌적이었던 그녀 안에 숨어있던, 깨지기 쉬운 여린 감수성을 보았음에도 모른 척하고 전혀 챙기지 않은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그러니까 난 친구의 기질과 재능을 마음으로는 아꼈지만, 그 시절, 내 문제만으로도 버거워 방관자로 멀어져 갔던 것이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느꼈던, 그녀는 한 구석 여전히 비슷한 성향을 지닌 채 세월의 공격에 적당히 마모되어 보다 여유로워진 모습으로 건강하게 제 길을 가고 있었다. 내가 아니더라도 그녀를 받쳐주고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주었을 보이지 않는 손길들을 느꼈고 안도하는 마음도 들었다.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이러한 연유로 그 친구의 독주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작은 조력자가 되는 일에 남다른 감회가 있었다.

여러 날 음악을 반복해서 들으며 연상되는 느낌들을 수집했고 몇 가지 아이디어가 잡혔다. 연주 곡의 느낌 외에도 연주장의 공간, 조명, 의상, 장신구의 무게 등 신경 쓸 일이 많았지만 새로운 문제에 도전하고 극복해나가는 즐거움도 있었다. 고심 끝에 목걸이는 알루미늄 선과 은, 크리스털 비즈가 자유롭게 어우러진 모습으로 완성시켰고 브로치는 은과 얇은 황동, 알루미늄을 사용하여 손맛으로 구김을 넣어 마무리하였다.

목걸이 한 점과 브로치 한 점의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어갈 때, 작업실을 방문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느낌을 물었다. 너무 크고 파격적으로 보였는지 놀라기만 할 뿐 대답을 회피하였다. 장신구가 완성된 후, 연주자에게 전달하니 일단 긍정적이었다. 나의 노고를 생각해서 마음에 안 든다고 하기도 어려웠겠지만 직접 착용해야 하는 당사자로서는 좀 당황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코 앞에서 보기 좋은 것과 무대용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내 생각을 꿋꿋하게 밀고 나갔다.

연주회가 있던 날, 사이즈가 큰 장신구를 탄탄하게 달아주기 위해 연주자를 찾았다. 대기실의 시간은 항상 빠르게 가는 법이다. 첫 곡을 위해 준비한 큼직한 목걸이를 재빨리 걸어준 후, 문제가 없는지 한 두 가지 확인하고 서둘러 객석으로 와서 앉았다. 한국에서 초연되는 존 아담스(John Adams)의 프리지안 게이츠(Phrygian Gates)를 위한 목걸이에 부분적으로 사용된 알이 굵은 크리스털 비즈는, 의도했던 대로 연주의 흐름을 절도 있게 따라가면서 예민하고 기품 있게 반짝여주었다. 몹시 집중을 요하는 어려운 곡이었지만 목걸이의 느낌이 편안하여 나도 음악에 귀를 맡길 수 있었다. 이 순간 피아니스트는 연주를 하며 무슨 생각을 할까. 무대는 막막한 바다 같고 연주자는 무인도에 고립된 것처럼 외로워 보인다. 여러 사람에게 둘러싸여 사는 우리의 삶에도 그런 순간이 찾아오는 것처럼. 휴식시간에 다시 대기실로 뛰어가 두 번째 제프스키(Frederic Rzewski)의 단합된 민중은 결코 굴복하지 않으리(The 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라는 곡을 위한 브로치를 달아주었다. 무려 한 시간을 쉬지 않고 격렬하게 연주하는 곡이어서 브로치의 위치나 견고한 부착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다시 객석으로 돌아왔고 연주자가 무대로 나왔다. 곡을 소개하느라 서 있는 동안 왼쪽 어깨에 큼직하게 자리잡은 브로치가 은은하게 빛났다. 과장되게 큰 브로치는 연주자를 돋보이게 할 뿐 아니라 무대를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시작하자 내 마음에 미세한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연주하는 동안 어깨나 팔의 움직임에 방해가 되면 어떡하나, 상체의 심한 흔들림 때문에 혹 장신구가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조마조마함이 줄곧 연주감상을 방해했다.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바라며 시계를 보길 몇 번, 드디어 무사히 연주가 끝났고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나도 안도의 숨을 쉬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아니라 다를까, 브로치의 무게와 두툼한 이물감이 연주에 좀 불편한 느낌을 주었다고 한다. 그것이 내게도 알게 모르게 전해져 연주 도중 계속 오금이 저리도록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브로치의 크기를 10%정도 줄였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해한 곡의 연주만으로도 힘들었을 친구에게 본의 아니게 부담을 주어 미안했다. 친구는 장신구 때문에 음악회가 훨씬 빛났다고 고마워했다. 그녀는 장신구에 담긴 호의를 짐작할 것이다. 힘든 길을 가는 예술가를 지지하고 격려하는 박수갈채 겸 꽃다발이라는 것을. 연주회장을 찾은 청중들과 음악인들은 새롭게 소개되는 감동적인 연주와 두드러지게 현대적인 장신구의 특이한 어우러짐을 재미있어 했다. 무엇보다도 연주자가 다소 버거운 컨셉의 장신구 두 점을 시원하게 소화해주어 흡족했다. 머릿속에 기발한 생각이 스친다 해도 그것을 밖으로 끌어내지 않으면 작품이 되지 않는다. 사람을 챙기고 응원하는 것도 행동에 옮겨야 비로소 의미 있는 일이 됨을 이제서야 장신구 작업을 통해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