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완료

 

엄마의 우산

 

양미숙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왔다. 빨래를 걷으며 지나가는 구름이려니 했다. 후드득후드득 비가 떨어졌다. 지나가는 비려니 하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시계를 보니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어 간다.

가볍게 오는 비라면 요령을 피우며 오겠지 생각했다. 뛰든지, 기다리든지, 남매가 손을 맞잡고 빗속을 뛰어오는 경험도 그리 나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도 했다. 살아가면서 어찌 맑은 날만 있으랴. 비도 맞고, 눈도 맞으며 궂은 날씨를 경험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한데 번개가 번쩍이며 오금이 저리는 듯한 천둥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 듣는 빗방울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좀 전의 느긋함과는 달리 학교에서 돌아올 아이들이 걱정이 되었다. 집에서 가장 큰 우산들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어른인 나도 천둥소리를 들으면 무서워 이불 속으로 숨고 싶은데 아이들이 얼마나 무서울까?  내가 너무 늦어 아이들이 길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발을 동동 구를 아이들이 눈앞에 선했다. 갑자기 퍼붓는 소나기에 뛰는 사람들도 보였다. 나도 뛰다시피 갔지만 마음은 더 앞서 갔다. 길에는 오가던 사람도 차도 뚝 끊겼다. 굵은 빗방울에 세찬 바람, 우산을 쓰나마나 하게 했다. 앞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혹시 이 비를 맞으며 지나가는 아이들을 놓칠세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진작 서두를 것을.

 

중학교 일학년 때의 일이다. 학원을 가야 한다며 시외버스를 타러 갔다. 하얀 블라우스에 파란 스커트, 처음 입은 중학교 하복은 산뜻하고 예뻤다.  나는 중학생이라는 걸 뽐내고 싶어 교복을 반듯하게 잘 다려 입고 집을 나섰다. 먹구름이 몰려와 어둑어둑 했다. 많지 않은 우산 중에 제일 좋은 우산을 챙겨 들었다. 엄마와 아버지는 논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내 예쁜 모습을 봐 주길 바라며 “엄마”하고 불렀다. 잠시 허리를 펴고 서둘러 가라는 손짓만 내게 보내셨다.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한낮인데도 하늘은 먹구름으로 더 어두워졌다.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번갈아 가며 치기 시작했다. 비도 후드득후드득 떨어졌다. 번개가 한곳에서만 치는 것이 아니었다. 이쪽에서 번쩍이면 저쪽에서 뒤따라 번쩍이고 천둥소리가 채 나기도 전에 다른 쪽에서 또 번쩍였다. 동시에 세 곳에서 번개 치는 가운데 싸락눈 쏟아지는 소리로 비가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를 피할 곳도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너무 무서워 서서 버틸 힘이 없었다.

우산을 썼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길가에 쪼그리고 앉았다. 포장되지 않은 도로에서 튕겨 올라오는 물방울에 교복은 흙투성이가 되었다. 도로에 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혼자서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바로 앞을 볼 수가 없이 비가 쏟아졌다. 너무 무서워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내 앞에 검은 고무신이 다가왔다. 엄마였다. 엄마 품에서 한참을 울었다. 말없이 엄마가 안아 주셨다. 내 무서움과 두려움을 다 아신다는 듯이. 엄마 우산 속에 들어가니 무섭지 않았다.

그날의 나처럼 아이들이 빗속에서 울고 있지 않을까 두리번거렸다. 그래도 둘이 함께 있을 거야.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이 다행이었다.  

내가 학교 현관으로 뛰어들어 우산을 접기도 전에 두 아이는 내 품으로 와락  뛰어들었다.  

“엄마, 너무 무서웠어.”

아이들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나는 두 아이를 양팔로 곡 껴안았다. 그리고  들고 간 우산은 펴지도 않은 채 한 우산 속에서 아이들과 걸었다. 여전히 비는 쏟아지고 번개는 쳤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젖은 옷으로 전해지는 체온이 따뜻했다.

나도 내 어머니처럼 내 아이들에게 우산이 되어주고 싶었다. 말없이 지켜보면서 힘을 주는 내 어머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