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회추천

 

까막 고무신

 

이순형

 

잘 아는 화가의 작업실에 가면 고무신만을 소재로 하는 그림과 만난다.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고자 신발에 착안하였다는 그의 발상에 나는 늘 흥미로웠다. 그날도 생강차 한잔에 추위를 녹이며 그의 작업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는 한지韓紙를 짓이겨 여자 고무신 모양을 만들어 화폭 위에 빼곡하게 붙이고 적당히 색깔도 입혀 작품을 만들어 낸다. 어머니의 고무신을 상징하는 여자 고무신이 주로 많고, 가끔 남자 고무신도 있다. 작품 속의 신발은 제한된 화폭 위에 일정한 방향성을 유지하면서도, 때로는 방황하는 자의 발걸음처럼 방향도 없이 나열되어 있어서 보고 있으면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작품 속에서 신발이 갖는 의미는 인생행로人生行路로 느껴진다. 더구나 여자의 하얀 고무신은 단순하면서도 어머니가 갖는 기품이 엿보여 인생행로에서 고난과 방황, 역경을 헤쳐 나갈 때 사랑과 인내, 희생으로 감싸 안고 미래를 향하게 하는 모성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큰 벽에는 세 개의 대형 화폭이 연작連作으로 걸려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산 속에 난 세 갈래 길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손톱만한 작은 신발들이 화면을 꽉 채우고 있고, 매우 드물게 두 손가락을 합한 크기의 큰 신발도 섞여 있다. 자세히 보니 고무신들은 무리를 이루어 일정한 방향으로 몰려가고 있다. 거꾸로 달려가는 신발이 없는 것을 보면서 우리 인간의 미래지향성이나  자연으로의 회귀를 표현하고픈 작가의 마음을 읽는다. 아니면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시간을 그리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 중에서 내 눈은 오른 쪽 화폭에 나란히 있는 검정 남자 고무신 한 켤레에 멈추고, 기억의 안개 속에 어렴풋한 고향 마을의 영상을 이끌어내었다.  

 

가난하던 어린 시절에 신발은 ‘까막 고무신’이었다. 어른들의 신발은 대개 조금 비싼 흰색이고 아이들의 것은 값싼 검정고무신이었다. 고무신을 신고 산길을 다니면 나무 등걸에 걸려 찢어지고는 해서 검은 실로 꿰매 신거나 학교 앞에 있는 가게에서 때워 신었다. 그나마도 방학 때면 고무신이 닳을까봐 모셔두고 아버지가 신다 버린 헌 구두를 끌고 다니며 마을의 골목대장이 되었다. 개학하여 학교에 가면 새 운동화를 신고 온 아이들이 부럽고, 가끔은 새 신을 잃어버렸다고 울며불며 온 반이 시끄러울 적도 있었다.

우리 마을 소년들은 마을 앞에 솟은 산마루를 넘어 굽이굽이 산길을 가야 하는 초등(국민) 학교에 다녔다. 대개 운동화를 신고 다녔지만 건너 마을 산자락에 살던 사내아이는 까막 고무신조차 없어 맨발로 다녔다. 집성촌인 우리 마을에서 성이 다른 것을 보면 다른 곳에서 들어왔을 테지만 그 사연은 알지 못했다. 그 집 부모와 그 아이, 세 살 터울의 여동생이 흙벽돌로 지은, 단칸방에 부엌 딸린 단출한 집에 살았다.

가끔 우리 집에 올 때 그의 어머니는 코를 꿰맨 흰색 고무신을 신었고 소년은 그 날만은 맨발 대신 찢긴 까막 고무신을 신고 왔다. 나는 지금도 그 소년을 생각하면 까막 고무신이 떠오른다. 평생 못 배우고 가난하게 살던 소년의 상징처럼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는 까막 고무신.

이란에서 만든 영화를 본 일이 있는데, 가난한 집 남매가 헌 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다닌다. 그나마 더 신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운동화 한 켤레가 생긴다. 그것을 신고 학교에 가야 했으므로 남매는 오전반과 오후반인 학교 수업 시간에 맞추어 골목길에서 매일 신발을 바꾸어 신는 모습이 빠른 화면으로 지난다. 학교 운동회 날, 달리기 시합에 운동화가 3등 상품으로 걸려 있는 것을 본 오빠는 가냘픈 몸으로 출전하여 죽을 힘을 다해 달리다 보니 1등을 한다. 신발을 얻기 위해 희망을 쫓아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우리를 아프게 했으나 꿈을 이룬 그들의 미소는 해맑기만 했다.   

신발가게에 가면 나의 학창 시절에는 꿈도 못 꾸던 멋지고 튼튼한 운동화가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가끔 신발 가게를 들리면 신발이래야 검정고무신이 고작이고, 운동화라도 신으면 발이 가벼워져 날아가는 줄 알았던 시절에 그나마도 없어 맨발로 학교를 다녔던 소년이 진열장 뒤에서 나타날 것 같은 환상을 본다.   

 

화폭 위의 하얀 고무신은 인생의 저편 기슭을 향해 몰려가고 있는데, 아래쪽에 남자 고무신 한 켤레가 멋없이 끼어 있는 작품이 마치 내 기억 속의 모자母子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지금쯤 그 소년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이란의 남매처럼 찢겨진 까막 고무신으로 미래의 행복을 향해 달려 나가 지금쯤은 빛나는 삶을 살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어떤 역경에서든 밝은 미소로 자식들을 돌보던 그의 어미가 까막 고무신의 소년을 잘 이끌어 화가의 그림처럼 시간은 그를 미래라는 한 방향으로 향하게 하였을 것이니.  

어머니의 하얀 고무신과 역경 속에서 도전을 통해 세상으로 나아가는 검정 고무신, 그리고 나는 화가의 방에서 그의 화폭에 담긴 고무신들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서 어린 날 내 고향 길을 달려 나가던 까막 고무신의 추억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