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회추천

 

뜨개질을 하며

 

유우영

 

쇼윈도 너머, 무지갯빛으로 쌓여 있는 털실들이 보였다. 그리고 몇몇 여인들이 앉아 뜨개질하는 모습도 보였다. 평소 뜨개질에 관심이 많던 나는 그 분위기에 이끌려 문을 밀고 들어서자 내 어머니 나이쯤으로 보이는 곱상한 노인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실을 파는 집이기보다 뜨개질을 가르치는 집인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내가 뜨개질에 관심을 보이자 노인은 기초부터 가르쳐주겠다며 뜨개질 하는 법을 친절하게 설명했다. 나도 다른 여인들처럼 전기장판 위에 앉아 한 코 한 코 떠보았다. 제법 재미있었다. ‘처음엔 연습 삼아 내 목도리부터 뜨고, 다음엔 가족들 목도리도 떠야지.’ 마음은 벌써 완성된 작품 쪽으로 달려갔지만 쉽지 않았다. 더디게 코를 꿰는 내 옆에서 다른 여인이 뜨던 양말에 코가 빠졌다며 꽤 많이 뜬 것을 풀라고 지시하는 노인의 모습은 마치 무서운 선생님 같았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 뜬 것이 아까워서 풀지 못한다면 그 잘못된 부분은 다 뜨고 났을 때 고칠 수 없는 후회의 혹이 될 거요”   

노인은 아들 둘을 두었다고 했다. 중풍 걸린 남편을 간호하면서 잠을 줄여 장사해 자식들의 대학뒷바라지를 했다고. 그 덕에 큰아들은 유학까지 마치고 대학교수가 되었다고 했다. 아들이 공부를 마치고 나면 이층집을 지어 위아래 층에서 함께 사는 게 바람이었던 노인. 그러나 큰아들은 결혼을 하자마자 안사람을 공부시키겠다며 외국으로 훌쩍 떠나버렸다고 한다. 이 말을 하는 노인의 입가엔 쓸쓸한 미소가 물려있었다.

“그때 내가 아들의 코를 꿰었어야 하는 건데… ”

그러다가는 애써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굴곡진 손놀림이 더욱 빨라지더니 가끔씩은 뭔가 마땅치 않은 듯, 코를 그득 꿰고 있던 대바늘을 쑥 뽑고는 털실을 훌훌 풀어 다시 뜨곤 했다.

“잘못 뜬 뜨개실 풀듯이 세월을 풀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가 혼잣말처럼 토해내는 말에, 문득 큰언니를 생각했다.  

젊은 시절, 친정집 가까이서 편물가게를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남편을 잃고 편물가게 수입으로 딸 둘을 대학까지 공부시켰다. 북 실을 걸듯 털실을 걸고 여인네들이 편물기계 앞에 앉아 드르륵 드르륵 손잡이를 움직이는 모습이 신기해보였었다. 일거리가 많을 때면 큰언니는 밤늦도록 편물기와 씨름했는데, 그 익숙한 손놀림으로 만들어내는 편물직조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렇게 한 줄 한 줄 떠올린 스웨터에는 언니의 한숨도 스며들어가 엮였으리라. 남편을 향한 그리움 또한 아슴아슴 포개어졌을 것이다.  

처녀시절 큰언니는 결혼을 미루고 일본에 건너가 공부하기를 원했었다. 아들도 아닌 딸을 바다 건너보내는 일이 그 시절엔 쉽지 않을 터였다.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힌 언니는 품었던 꿈을 접고 집안에서 정해준 배필과 결혼했는데, 갑작스런 형부의 타계로 인생길이 뒤얽히고 말았다.

“코 빼먹었네. 풀어서 다시 떠야겠수!”

내 손놀림을 바라보던 노인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코 하나가 빠졌었나보다. 나는 바늘대 잡은 손을 다시 가다듬었다. 노인은 촘촘하게 손수 엮은 뜨개질을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내 속내를 들킨 것 같아 겸연쩍었다. 얼른 바늘을 뽑았다. 들쑥날쑥 엮인 상념들을 지우듯 잘 못 뜬 자리를 풀었다.

서툴게라도 엮어간다면 언젠가는 제대로 된 완성품 한 편쯤 나오지 않을까하고 스스로 기대해보면서 나는 뜨개질하다 끊어먹은 실을 노인에게 들킬세라 재빨리 매듭을 지어 이었다. 큰언니도 털실과 함께 풀어 엮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내고자 뜨개질로 위로를 삼았으리라. 그런 언니를 지금처럼 이해해 본 일이 없었다. 풀어 다시 뜨고 싶은 삶을 어떻게 넘겼을까?

목도리를 완성하기 위해 며칠을 털실가게를 들락거렸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목도리를 뜨는 모습, 남편의 목도리를 정성들여 뜨는 새댁의 모습, 약혼자의 조끼를 떠주겠다고 온 아가씨도 있었다. 그녀는 크리스마스에 깜짝쇼를 벌이겠단다. 그들 역시 뜨개실을 풀었다 떴다를 반복하였다. 그들은 모두 꿈을 엮고 희망을 뜨고 행복을 엮어나가는 모습들로 보였다.

노인은 손님들에게 뜨개질만 가르쳐주는 게 아니었다. 능숙한 솜씨로 여러 가지 무늬를 만들며 뜨개질을 통해 삶의 이야기를 풀고 여미는 것이었다. 손님들 또한 어설프게 안뜨기와 겉뜨기를 하며 살아가는 고충에 신세한탄까지 스스럼없이 풀어내고 희망을 짜갔다.

밖엔 눈발이 날린다. 눈이 내려쌓인 눈길을 걸으며 화이트 크리스마스에는 내가 뜬 가족의 목도리들로 꾸며볼까 생각해 본다.  

 이제라도 내 삶의 엉킨 실타래가 있다면 마음의 실마리를 풀어 한 코 두 코 다시 엮어 볼 생각이다. 그리고 내 삶을 따뜻하게 할 희망의 날개도 떠가고 싶다.